미국동부 | 동곡당 일타 대종사 열반 19주기 추모법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멋진스님 작성일18-11-12 06:26 조회1,415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동곡당 일타 대종사 열반 19주기 추모법회
저 하늘에 뜬 밝은 해가 진심을 드러내니
만리에서 불어오는 푸른 바람 오랜 거문고를 타네
생사열반이 원래부터 꿈이려니
산은 높고 바다는 넓어 서로 침범하지 않네
一天白日露眞心
萬里淸風彈古琴
生死涅槃會是夢
山高海闊不相侵
-일타 큰스님 열반송-
『1993년 가을.
해인사 초입의 홍류동 계곡에도 가을이 찾아와 물들고 있었다. 붉고 노란 낙엽들이 홍류동 계곡으로 우수수 떨어져 계곡물마저 단풍이 들어가고 있었다. 가야산의 나무들이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나목으로 되돌아가는 가을이었다. 일타도 가야산의 나목처럼 생의 군더더기를 정리했다. 수행자로서 거추장스러운 직책과 소임을 미련 없이 벗었다.
은해사 주지 소임을 통일 운동하는 상좌 법타에게 넘기었고, 자격을 갖춘 예비 승려들에게 구족계를 주는 조계종 단일계단 전계대화상의 직위도 사임했다.
그런 다음, 자신이 태어날 나라로 점지한 미국으로 떠났다. 상좌 혜관에게 지족암을 맡기고 불편한 몸이었지만 보스턴 시로 찾아갔다. 보스턴 시에 자리 잡은 문수사에서 상좌 도범이 일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타는 미국인들 얼굴 생김새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장신에다가 석가모니부처님처럼 또렷한 이목구비가 마음에 들었다. 수행이 뒷받침만 된다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는 외모가 분명했다.
“스님, 이곳은 불교의 세가 아주 약합니다. 온갖 물자가 풍부하여 살기는 좋을지 모르나 불교신도가 적어 아직은 수행하기가 불편한 곳입니다.”
그래도 일타의 원력은 확고했다.
“미국에서 태어나더라도 수행은 다시 한국에 와서 하면 되는 것이고, 나는 부처를 이루어 미국으로 돌아가 달마가 중국으로 들어와 불국토를 만들었던 것처럼 나는 미국의 중생들을 제도할 것이다.”
그러니 일타의 미국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더구나 미국 동부에 있는 보스턴 시 주변에는 미국의 수재들이 모여 학문을 연마하는 하바드대학교나 예일대학교 등등 소위 일류대학교가 산재해 있었다. 서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동부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지성적이고 귀족적인 풍모를 띄고 있었다. 명상센터도 많았고 젊은 대학생들이 그곳에 모여 명상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고 있었다. 한국불교보다 티베트불교와 대만불교가 한 발 먼저 들어와 포교하고 있었지만 일타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시절인연이 되면 한국의 선불교가 그들에게 삶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스턴 시내를 안내하던 문수사 신도가 말했다.
“큰스님께서 미국에서 미국사람으로 태어나실 거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입적할 때 평소의 원력을 놓치지 않고 깨어 있기만 하면 가능해요. 일념이 만년이지요. 일념으로 깨어 있기만 하면 원하는 대로 환생할 수 있어요.”
문수사 신도가 의아해 하자 일타가 말했다.
“향가 ‘보현십원가’를 지은 균여대사께서도 스님이 원력을 세운 대로 다른 나라에서 환생하셨지요.”』
- 정찬주의 일타스님 일대기 ‘인연’ 중에서.
동곡당(東谷堂) 일타(日陀) 대종사(大宗師)는 문수사 신도님 대부분께 오계(五戒)와 보살계(菩薩戒) 및 법명(法名)을 주신 계사(戒師)이셨으며, 또한 문수사 회주이신 도범(道梵)스님의 은사(恩師)스님 이십니다. 이번 11월 마지막 째주 일요일은 일타 대종사의 19주기 추모일입니다. 신도님들의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
동곡당 일타 대종사 19주기 추모 법회
불기 2562년 무술년 11월 25일 일요일 문수사 대법당
문수사 주지 혜각 합장
댓글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