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부 | 우란분절 백중법회 -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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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지움 작성일11-08-18 04:59 조회1,32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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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절을 맞아 남가주 전역에서 많은 불자님들이 태고사를 찾았습니다.
백중날의 의미
1 목련존자의 효성
백중날이 조상을 생각하고 조상의 명복을 기도하는 날로서 이와 관련하여 신통제일의 목련존자가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 승천시킨다는 얘기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목련존자가 신통술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아보았더니 아귀지옥에 거꾸로 매달려 고생하고 있었다. 자식된 효심으로 바루<발우(鉢盂)> 가득하게 음식을 드렸더니 어머니의 업보가 어찌나 불길같이 뜨거웠던지 그릇속의 음식이 금새 불로 변하여 없어지고 만다. 애닲은 목련은 세존을 찾아가 애원한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여름 안거(安居)가 끝나는 칠월 보름, 부처님의 제자들이 안거 기간에 보고.듣고, 의심 했던 바를 서로 이르고 탓하며 점검하고 참회하는 자자(自恣)의 날에 공양을 베풀면 부모만이 아니라, 7대(代)의 조상들이 지옥고를 면하여 천당에 태어나고 복락을 누리게 되리라고 일러 주었다는 것이다. 바로 우란분(UIIambana)경에서의 얘기다.
일찌기 이 경전이 우리나라와 중국으로 전해졌고 조상을 숭상하고 효도를 앞세우는 우리의 문화 체질에 영합하여 초파일, 성도절, 열반절과 함께 우란분절 또는 백중기도라는 이름으로 연중 4대법회의 하나로 받들어져 왔다.
생각하면 출가라고 하는 종교적인 인생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숨겨지고, 대신에 반(反)출가적이라 할 효도와 관련된 우란분절이 4대 명절의 하나로 되었다는 사실은 불교역사가 겪어야 했던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뿐만아니라 이는 지장신앙, 시왕(十王)신앙 또는 영혼을 인도한다는 인로왕(引路王)보살에 대한 신앙등과 맥락을 함께 하면서 일상적인 49제나 예수제(預修斉)와 더불어 민간신앙이 대종을 형성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만을 추구한다는 현대인이 생각해 볼 때 터무니 없는 듯한 목련구모(救母)의 얘기에서 비롯된 백중절의 관행이 긴천년 세월 동안이나 우리의 의식세계를 지배해 왔다는 사실이 어쩌면 믿어지지 않는 기이한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놀라눈 사실은 백중기도라고 하는 관행이 지니는 상징적인 가치관념은 그래도 우리 세대의 노인들에게 까지는 기억되고 있음에 반하여 『자자의 날에 공양을 베풀라.』고 한 성인의 참말씀은 그 의미가 진작부터 잊혀져 온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백중날에 도량에 모인 선남선녀에게 자자가 무언지를 물어 보아 그 대답을 듣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2 퇴락해가는 경로사상
오늘의 우리 교계는 백중기도의 내용물을 분실한 셈이다. 그러니 알맹이 없는 껍질만의 백중절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 나게 마련이고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 분명하다.
뿐만아니라 지난 60년대 이래로 우리의 의식 가운데서 파괴되고 있는것 중의 하나가 경로요, 경조(敬祖)사상이 아니든가.
오랜 역사 속에서 축적되어 온 지연(地緣)과 혈연(血緣)을 중심으로 구성된 생활 환경을 떠나서, 도시로 공단으로 이주하여 산업시대의 새로운 시민으로 출범한 입장에서는, 인정(人情)사회의 감각이나 윤리나 가치관이란 이미 버리고 온 옛 강산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들의 생활과 의식이 동네 노인이나 집안어른을 잊은지 오래이고 조상이라고 해도 만리 밖의 후진국에서 온 손님보다도 더 생경스럽고 아니 와도 좋을 그런 존재가 된게 아닐런지. 이런 상황에서 백중절이 무언지 기억될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하여 근 반세기를 대사회적 교육부재로 흘려버린 교계의 일원으로서는 따로 할 말이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여기에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남의 나라 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세계를 구제할 유일한 체제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그 어떤 다른 주의나 주장도 아니다. 오로지 한국문화권에서와 같은 대가족체계를 발전적으로 유도하는 길 뿐이다.
대가족제도에 의한 인성<人間性>교육과 자유스럽고 조화로운 인간관계의 형성과, 이로서 기대 가능한 모든 인간적 가치의 재생이 시급을 요하는 현대이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이든 어른 공경의 풍토가 곧 조상숭배로 이어질 것이고, 조상숭배가 일단은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마저도 가장 실감나고 구체성있고 인간적인 정이 가는 해답이다.
이집트 사람들이 육신의 부활을 신앙하여 미이라를 만들었고, 인도인들이 영혼의 부활을 믿어 윤회나 생천(生天)을 말하고, 구미인들이 하늘나라로 이어지는 생명의 영광을 말한 것은 무슨 뜻인가.
어떻게 보면 죽음에 이어지는 생명의 연장에 관한 인간의 사유들은 인류가 식물의 생명성에서 터득한 고결한 수확이라고도 하겠다.
3 인류 최고의 수확
신화(神話)에서는 농경인들이 경험적으로 곡물의 재생에서 조짐을 얻어, 인간이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해답으로서 윤회나 부활이나 영생이나 또는 약간은 질을 달리한다고 믿어지는 해탈과 같은 것을 상정하여 믿음으로서 만족할 수 있었노라고 하는 경우마저 본다.
말하자면 한 생명의 종말은 결코 그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생이나 구원에 대한 약속으로 이해되고, 단절이나 어둠이기 보다는 영원한 과정이요, 밝음인 것으로 믿음으로서, 죽음이라고 하는 생명 가치의 절대적 파괴를 초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야말로 인류의 조상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거두어들인 최고의 수확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현실로서의 생활도 재생으로 예견되는 보다 큰 가치의 창조를 위한 것이라는 의의와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모든 종교가 마찬가지이다. 어느 종교나 인간과 세계의 종말과 그 후의 상황을 말한다. 그리고는 반드시 현실의 인간문제로 되돌아오는 것이 종교적인 이론 체계이다.
우란분경에서도 목련의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하여 지옥과 천당을 말하고는 부처님의 입을 빌어 자자와 공양이라는 현실문제로 돌아온 것이다. 이는 창조적인 현실의 가치를 죽음 이후라는 먼 미래의 가치와 연계시키는 방편을 동원함으로서 현실을 강조함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란분경의 내용 가운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목련의 어머니가 생천한다는 것과 같은 윤회의 문제도 그중의 하나이다. 흔히 말하는 육도 윤회설로서의 지옥에도 환생하고 극락으로 왕생도 한다는 내용이지만, 분명히 윤회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체게가 아니라, 현재에 빠져 있고 앞으로 벗어나야 할 반가치적 상황이다. 따라서 그것이 생천이든 왕생이든간에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을 현실로 돌리기 위한 방편설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주의 창조나 종말에 대해 묻는 만동자에게 들려준 독화살의 비유설법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창조나 종말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을 유보하듯이, 독화살의 유래나 그것을 맞고 난 뒤의 결과라는 것도 2차적인 문제로 돌린다. 당장의 관심은 독화살을 뽑고 건전한 생명을 보존해야 하는 현장상황일 뿐이다.
백중날은 우리가 조상을 잊지 않고, 우리가 또한 조상이 될 것임을 생각하며 오늘을, 가족으로서의 인간성과 가장 자유롭고 조화로운 가족과 같은 인간관계의 확장을 위한 자자와 공양을 행하는 날이다.
그것은 생각만으로도, 신심만으로도 성취되지 않는다. 신심은 종교적인 행위를 돕고 행위는 신심을 도와 성취케 한다.
태고사 유딩불자 예삐^^; 태고사 가는 길 중간쯤에 있는 쉼터에서 포즈를...뷰가 괜찮은 장소 입니다.
주지스님이신 범휴 스님께서 직접...............
법회와 공양이 끝난 후 일부 불자들은 범휴스님으로 부터 백중절의 의미 등에 대해 추가로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멀리 하와이에서 오신 노보살님(왼쪽), 대로보살님 (중간)..
종각...법회가 끝나면 주변에 걸터앉아 토론도 하고..이런저런 불자들 간 소통의 장..아고라가 되었습니다.
지움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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