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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부 | 북가주 여래사(Yeo Lai Sah)

200 San Bruno Ave. West, San Bruno, CA 94066 1-650-588-8449

본문

북가주사원연합 회장
국적 :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사 찰 명

여래사(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신행활동

일요법회(50~60명 참석)

삼귀의, 찬불가, 헌공, 참선, 법문, 사홍서원

토요 참선법회

10명 참석

첫째주 일요일 청년회 영어법회

10명 참석

특별 행사

부처님 오신날 약 200명 참석

1특별법회, 관불의식, 기도

송년법회

법회 후 불자들 장기자랑

사찰 소개


1여래사는 1980년에 설조스님께서 창건하여 현재 엘도라도 카운티에 3만평 규모의 선원과 세크라멘토에 1개의 분원, 샌프란시스코에 4백평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설조스님의 상좌인 수원스님이 주지소임을 보고있습니다.
 

주지스님 인사말

 



<SF 중앙일보>10.27에 태어난 여래사 개원 30주년 기념법회(201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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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탕 속에서 연꽃 피어나듯

법난 속에서 법열 씨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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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면 관음성상 봉안법회도 함께

법주사 노현스님 등 200여명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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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묘한 인연이다. 기연도 이런 기연이 없다. 북가주 한인사회 불교마을 1번지 여래사(회주 설조 큰스님, 주지 동호 스님)는 1980년 10월27일, 그러니까 한국불교 1700년사 최악의 수난일로 꼽히는 그날, 전두환 신군부의 총칼 앞에 한국 곳곳 사찰과 암자와 수행자들이 무더기로 유린된 10.27 법난(法難) 그날,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두칸짜리 임대주택에서 첫 향불을 피워올렸다.

법난(法難)의 날 울려퍼진 법열(法悅)의 목탁소리,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필연이었다. 그 중심엔 설조 스님이 있었다. 청년수행자 시절부터 한국불교 바로세우기를 위해 앞장섰던 그는 신군부의 불교계 손보기 정보를 입수하고 D데이 직전 미국으로 피신해 있었다. 피신처 LA에서 그는 구산 방장스님에게 길을 물었다. 답이 내려졌다. “샌프란시스코로 가 전법에 힘쓰라.” 낯선 LA 풍경에 눈을 익힐 겨를도 없이 설조 스님은 더 낯선 SF로 북상했다. 그리고 덕산 거사가 세낸 두칸집에 머물며 여래사의 첫 씨앗을 뿌렸다. 그게 ‘바로 그날’ 혹은 ‘하필 그날’이 됐다. 흙탕물 속에서 맑고 향기롭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여래사는 법난의 피비린내 속에서 그렇게 법열의 꽃을 잉태하기 시작했다.

30년이 흘렀다. 한국불교계를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그때 그 무리는 진작에 힘을 잃었다. 그 무리를 대표했던 전두환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들끓는 민심과 후임 권력핵심의 위세에 기꺾여 몸을 의탁한 곳이 백담사였다는 것 또한 묘한 아이러니였다. 그러는 사이에 Mt. Aukum에 선원을 두고 새크라멘토에 분원을 둘 만큼 무럭무럭 성장한 여래사가 10월31일 개원 30주년 기념법회를 가졌다. 십일면 관음성상 봉안법회를 겸한 큰잔치였다.

예사롭지 않은 탄생과 예사롭지 않은 성장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에서 노현 스님(속리산 법주사 주지), 기연 스님(흑석사 주지), 혜원 스님(나주 운흥사 주지), 치원 스님(서울 영축사 주지), 경원 스님(대전 광제사 주지) 등 설조 큰스님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수행자들이 6,000마일 먼 길을 마다않고 여래사를 찾았다. 30년 전 그 즈음, 북가주 전법을 위해 새로이 길 떠나는 설조 스님을 LA에서 SF까지 운전해준 LA 법왕사 주지 현일 스님도 30년 전 인연을 안고 다시 왔다. 새크라멘토 영화사 주지 동진 스님은 정기법회를 생략하고 대여섯 신도들과 함께 참석했고, 때마침 이날 한국으로 떠난 카멜 삼보사 주지 대석 스님은 SF공항으로 향하기 직전에 운월 스님 등과 함께 여래사에 들러 축하의 예를 올렸다. 오클랜드 보리사 주지 형전 스님은 일요법회를 서둘러 마치고 동참했다. 전후에 다녀간 이들까지 합쳐 이날 행사에는 200여명이 함께했다.

여래사 주지 동호 스님은 인사말씀을 통해 이들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 뒤 “함께 기뻐하면 무량한 공덕을 얻게 된다”는 수희공덕을 곁들여 “바쁘신 가운데 함께 기뻐해 주시기 위해 멀리서 동참을 하여 주셨으니 무량한 수희공덕을 얻으시리라 생각된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법주사 주지 노현 스님은 격려사를 통해 “한국불교의 중심축을 이루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오늘날이 있게 한 교단의 주도적 핵심역할을 해오신 문중의 어른스님이시며 또한 사숙스님이신 큰스님의 원력과 노고에 고개숙여 감사”를 표한 뒤 “한국전통불교의 계승과 미주지역 불교창달에 이바지하는 큰스님의 뜻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점에 대해 송구스럽고 조계종 관련되신 모든 분들과 힘을 합쳐 지원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행사 선약을 취소하고 뜻깊은 여래사 30주년 기념법회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김상언 SF한인회장은 축사를 통해 “참된 가르침은 몸으로 행하는 것이 중요한데 벌써 2500여년 전에 자신과 남을 모두 이롭게 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었다”는 데 대해 경의를 표하며 “(그 가르침과 같이) 자비로운 마음을 나누다보면 맑고 따뜻한 한인커뮤니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한인사회 대표로서의 소망을 덧대었다. 법인 김석전 신도회장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어진 이들의 아픔 살피게 될 수 있기를…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잠시 쉬어가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굳은 신심 가지게 하고…서로 믿고 양보하고 참아내는 덕행을 배우게 하고…그림자가 따르듯이 메아리가 응답하듯이 자비의 가피 베풀어 주소서”라고 발원했다.

법당에 가득 울려퍼진 청법가에 이어 시작된 설조 큰스님의 특별법문은 첫머리부터 자책어린 낮춤이었다. “산인이 이곳에 오게 된 인연은 부끄러운 도피행각의 끝이었습니다. 제 집에 불이 났을 때 급히 그 불을 끄지 않고 혼자서 불에 다칠까봐 멀리 바다건너 도망쳐온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후일 그 일을 10.27 법난이라고들 합니다만 산인은 교단중진의 일원으로 함께 난리를 감내하지 않고 날아와서 편히 먹고자며 눌러앉은 것이 미국생활의 시작이고 이 절의 시작에 보탬이 되었던 것입니다.” 큰스님은 이어 “도피행각을 벌하지 않으신 부처님의 은혜와 허물이 큰 산인을 사문으로 보아주신 이곳 불자들의 아량으로 오늘 이 도량이 이루어졌습니다”라고 또한번 자세를 낮췄다.

그러나 600달러 셋방에서 자체건물을 구입할 때의 일, 용성 조사의 딸을 사칭한 어느 권사의 불교폄훼사건, 고 함석헌 선생의 SF방문 당시 일화, 구산 방장스님으로부터 받은 글 ‘山移月不移’(산이월불이: 산이 움직여도 달은 제자리에 있도다)의 참뜻을 받들어 어렵고 힘들어도 도량을 지켜온 일, 사형수 이철수씨 구명운동, 그리고 세번의 이사 등 줄줄이 이어진 법어는 설조 큰스님의 미국살이가 결코 “편히 먹고자며 눌러앉은 것”이 아니라 “극과 극”이었음을 새삼 실감케 했다. 큰스님은 끝으로 “도량이 꽉 차서 수시로 좌선하고 기도하고 이웃에 봉사하며 밝은 마음으로 늘 행복하시기를 빈다”며 달리는 말에 채찍을 들듯 법구경 말씀으로 법어를 가름했다.

“원수의 하는 일이 어떻다 해도, 적들이 하는 일이 어떻다 해도 거짓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이 내게 짓는 해독보다 못한 것이다. 부모형제가 하는 일이 어떻다 해도, 친척들이 하는 일이 어떻다 해도, 정직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이 내게 짓는 행복보다는 못한 것이다.”

한편 연화합창단은 ‘오호라 꽃잎이여’ 등 찬불가로, 그레이스&카니 이 자매는 우아한 한국전통춤으로, 해나&새라 매고웬 자매는 신나는 아일랜드댄스로 여래사 개원 30주년을 자축했다. 개원법회에 앞서 점안식을 가진 십일면 관음성상은 여래사가 지난해 봄 샌프란시스코에서 샌브루노로 이전한 직후 신도들의 이심전심 소망이 어우러진 십시일반과 영축사 주지 치원 스님의 2만달러 쾌척으로 모셔지게 됐다. <정태수 기자>


?여래사 연혁

▷1980. 10. 27 : 설조 스님, 한국불교개혁에 앞장서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한 불교계 대탄압(10.27 법난) 정보를 입수하고 LA로 피신해 관음사와 고려사에 머물던 중 구산 방장스님으로부터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전법하라는 당부를 받고 SF행, 덕산 거사가 렌트한 24가의 2베드룸에 거주하며 전법 시작.

▷1981.10 : SF 불자들과 한국 유광 스님 도움으로 여래사 기금마련 전시회 개최.

▷1982.10 : 자체성금과 한국 서정각행 불자의 도움으로 펀스턴 애브뉴에 있는 2400sf 주택을 15만8,000달러에 낙찰받음. 구산 방장스님이 점안한 본존불을 모시고 이곳으로 이전. ▷1988.10 : 펀스턴 애뷰뉴 여래사를 42만달러에 매각하고 랜돌프 스트릿에 있는 1만5,000sf 건물을 57만달러에 매입해 이전.

▷2000.4 : 랜돌프가 여래사 건물을 담보로 Mt. Aukum에 선원용 임야(34에이커, 방갈로 6개 포함)를 매입.

▷2002.2 : 새크라멘토 포교를 위해 브래드쇼에 2베드룸 주택이 있는 3.14에이커를 26만5,000달러에 매입.

▷2008.6.12 : Mt. Aukum 선원임야 18에이커 불법점유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막대한 소송비 때문에 기존 융자금 불입이 어려워짐에 따라 랜돌프 건물을 308만달러에 매각, 부채를 청산하고 현 샌브루노 건물을 129만달러에 매입, 2009년 6월 이전법회.

▷2010.10.31 : 여래사 불자들의 십시일반과 서울 영축사 주지 치원 스님의 도움으로 십일면 관음성상을 모시고 개원 30주년 기념법회에 맞춰 점안법회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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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한국일보]


부처님의 자비 광명 온누리에 비추길

산브루노 여래사 개원 30주년 기념·십일면 관음성상 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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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열린 여래사 개원 30주년 및 십일면 관음성상 점안식에서 사찰 스님들과 불자들이 함께 성상 제막 의식을 가졌다. 오른쪽부터 네번째 설조 회주스님.


샌프란시스코지역 한인 사찰 최초로 십일면 관음성상이 세워졌다.

산브루노 여래사(회주 설조·주지 동호스님)는 지난달 31일 개원 30주년 기념 및 십일면 관음성상 점안식을 갖고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지역사회 전역에 비추길 기원했다.

십일면 관음성상은 관세음보살의 머리 위에 11개의 얼굴이 부가된 성상으로, 얼굴들은 ‘자비심 찬양’‘중생구제’‘불도 정진 권장’ 등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여래사 회주 설조스님과 동호 주지스님, 새크라멘토 영화사 동진 주지스님 등 지역 사찰 스님들과 속리산 법주사 노현 주지스님, 흑석사 기연 주지스님, 김상언 SF 한인회장 등을 비롯, 100여명의 신도들이 참석했다.

동호스님은 이 자리에서 “설조스님의 염원과 정성으로 여래사가 개원한지 올해 30주년을 맞았다”며 “30주년을 맞아 모두가 합심해 평화의 상징인 십일면 관음성상을 조성하니 이에 모든 이들이 무량복덕을 가꾸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동호스님은 “안락하고 복된 세상의 주추가 되는 자비도량 건설 성업에 모든 이가 기쁜 마음으로 동참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김상언 SF 한인회장은 축사를 통해 “세상이 각박해지고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몸소 행하는 삶과 자비를 베푸는 삶’을 가르치시는 부처님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듯 하다”며 “여래사가 30년 전부터 늘 그래 왔듯 앞으로도 서로 나누고 자비를 베풀어 밝고 따뜻한 한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는데 앞장 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셋방에서 개원해 지난해 산브루노 법당으로 이전하기까지 여래사의 30년 여정을 돌이켜보는 순서도 마련했다.

여래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산브루노로 이전해 지난 10월7일 이전 법회를 가졌다.

양정연 기자 jyang@koreadaily.com

[샌프란시스코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