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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설정스님과 함께하는 그리스 터키 문명기행 (上)(불교신문 1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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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15-05-29 11:28 조회1,5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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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종교사회인 한국에서 종교간 평화가 사회적 과제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게다가 몇해 전부터 개신교의 땅밟기와 같은 행위가 문제가 되면서 종교의 공존에 대한 고민들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계종 스님들이 그리스정교회를 국교로 하는 그리스와 국민의 98%가 이슬람교인 터키로 문명기행을 떠나 주목된다.

조계종 교육원(원장 현응스님)의 올해 첫 해외순례 연수프로그램인 ‘설정스님과 함께 하는 그리스, 터키 문명기행’이 그것이다. 지난 6일부터 15일까지 그리스와 터키지역을 돌아본 스님들은 이웃종교의 모습과 생활상을 엿보며 견문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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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갇혔던 감옥이 있는 필로파포스 언덕에 올라 소크라테스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던 것처럼 법담을 나누는 스님들.

지난 6일 인천공항을 출발한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과 40 여명의 스님들은 12시간 비행 끝에 이스탄불에 도착해 다시 그리스 아테네로 향했다. 현지시각 7일 오전8시경 아테네에 도착한 스님들은 아테네 시내 국회의사당 입구에 마련된 무명용사의 비를 찾았다.

커다란 벽에 부조로 쓰러진 용사의 모습이 조각돼 있고 그 아래로 그리스인들이 참전했던 곳이 새겨져 있는데 루비콘, 키프로스 외에 한국도 있다. ‘KOPEA(그리스어로 코레아라고 읽는다)’가 바로 한국을 뜻하는데, 6.25전쟁 때 그리스인들도 참전했음을 말해준다. 기록에 의하면 6.25전쟁 때 파병된 그리스군 가운데 약 200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스님들은 유명을 달리한 그리스군들을 추모했다.

오후에는 아크로폴리스를 찾았다. 이곳에는 세계문화유산1호 파르테논신전과 디오니소스원형극장, 아크네신전 등이 남아 있다. 파르테논신전은 아테네 여신을 위해 기원전 5세기경 건립됐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거치면서 사원으로 사용되다 1687년 전쟁 시 신전 안 화약고가 폭발해 파괴됐다. 그나마 남아 있던 조각들도 오스만터키 때 해외로 팔려나가고, 지금은 기둥만 남은 상태다.

아테네 ‘무명용사의 비’ 방문

6·25 때 전사한 그리스군 추모

그리스 건축 조각술 보여주는

파르테논신전 아크네신전서

헬레니즘 문화 정수 발견

‘공중에 매달린’ 메테오라

그리스정교회 수도원 방문

이민족의 침입과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웅장한 파르테논신전, 대리석으로 6명의 여인을 사실적으로 조각한 아크네신전 등은 그리스인의 뛰어난 건축과 조각술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이와 함께 스님들은 가장 오래된 원형극장인 디오니소스원형극장과 음악을 듣는 ‘오디오’의 어원이 된 오데온 극장 등을 둘러보며 화려했던 그리스문화를 짐작했다.

정치 경제 언어 문화 종교 철학 예술 등 그리스문화가 세계문명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유럽인들이 생각한 최고의 미학은 그리스시대로의 회귀일 정도였다. 그리스문화는 중동을 거쳐 인도불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3세가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인도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간다라지방 등 인도북부에 헬레니즘 문화가 유입됐다. 인도 쿠샨왕조 때 탄생한 간다라미술이 그것이다.

쿠샨왕조는 월지(月氏)의 다섯 부족 가운데 귀상(貴霜)족에 의해 건립됐다. 유목민이었던 이들은 몽골서 중앙아시아로 이전하면서 박트리아를 점령하고 이 지역의 그리스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문자를 사용한 것 외에도 그리스의 조각기법을 불교조각에 도입했다. 이전까지 법륜이나 탑, 보리수, 불족적 등으로 표현되던 부처님은 쿠샨왕조에 들어 의인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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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파포스 언덕서 진행된 입재식.

이들은 그리스로마의 신상을 조각하던 기법을 차용해 불상을 조성했다. 웨이브가 있는 긴 머리카락에 코는 우뚝하고 눈언저리가 깊이 파인 그리스인 같은 얼굴의 불상이 등장한 것이다. 간다라미술은 서역을 통해 중국으로 전달됐고 우리나라 석굴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그 속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지만, 사람의 눈과 입으로 전해졌을 문화의 전파력과 영향력에 스님들은 새삼 놀라워했다.

이어 아크로폴리스가 한 눈에 보이는 필로파포스 언덕에 올라 간단한 입재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설정스님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무지가 죄악이라고 말한바 있다”며 “이성과 지성이 함양되지 않으면 지식이 향상된 현대사회에서 불교가 발붙일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세운 원인 부처님 뜻을 펼쳐나가려면 한국불교도 지성과 양심이 성장해야 한다”며 함께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아테네 시내를 돌아본 후 중부 메테오라로 향한 스님들은 8일 오전7시 그리스정교회 수도원을 둘러봤다. 그리스는 국민의 98%가 그리스정교회 신도로,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치러지는 의식은 모두 교회에서 이뤄진다. 우리나라에서 그 흔한 결혼식장을 그리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스정교회에서는 매장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화장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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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라 니콜라우스수도원을 방문한 스님들이 세라핌 수도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곧 바로 이름을 짓지 않고, 생후 10개월 무렵 세례를 받고, 이름을 지어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생일보다는 교회서 세례받고 이름을 받는 날을 더 축하한다. 이곳에선 개인의 신앙생활은 자유지만,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인을 대상으로 포교나 선교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리스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종교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할 정도다.

이날 찾아간 메테오라는 그리스정교회의 성지 가운데 한 곳이다. 메테오라는 ‘공중에 매달린’이란 뜻을 가진 곳으로 내해가 융기해 크고 작은 바위 우뚝 솟아나 산을 이룬 곳이다. 수도사들이 이곳에서 은둔하기 시작한 것은 11세기부터인데 바위에 난 구멍마다 들어가 생활하다가 수도사들이 늘어나면서 수도원이 차츰 건립된다.

14세기 초 성아타나시우스가 처음 건립됐고, 30~40개가 밀집돼 있을 정도로 많은 수도사들이 메테오라에서 지냈다. 그러나 오스만터키의 공격을 받으면서 차츰 줄어들어 지금은 6개만 남아 있다.

스님들이 이날 방문한 곳은 니콜라우스수도원이다. 1410년 지어진 이곳 역시 깎아지른 바위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3명의 수사만이 남아 있는데, 이날 스님들을 맞이한 수사는 올해 85세인 세라핌 수사다. 세라핌 수사는 40여 년간 아토스산 수도원에서 생활하다 니콜라우스수도원으로 온지는 1년가량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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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끝자락에 위치한 메테오라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선 스님들.

설정스님이 “스님들이 산에서 수행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근본목적은 다를 것이다. 수사들은 무엇을 위해 수도원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냐”고 묻자 세라핌 수사는 “그리스도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바친 것”이라며 수도원 생활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의 스님들과 처음으로 대면한 수사는 40여 년간 은둔한 탓인지, 이웃종교에 대한 이해보다는 본인이 믿는 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짧은 대화후 수도원을 나선 설정스님은 “불교는 자력신앙이 크지만, 이들의 타력”이라며 “유일신을 믿는 이들의 단점이라고 하면 아집 편견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런 신앙의 차이점을 가진 집단과 종교자유와 평화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또 스님은 다종교 사회에서 종교간 평화의 어려움을 우려하며 “결국 신앙이라는 것도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행복과 평화를 위해 생겨난 것인데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종교로서 의미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남해 용문사 지각스님은 “이웃종교와 소통하려는 모습이 없는 수사를 보니 안타깝다”며 “내 신앙은 내 스스로 기도하고 정진하는 것이다. 자신이 믿는 신앙만 최고라고 생각하고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종교인이라면 깨기 위해서 수행하는 건데 꽉 막혀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날 그리스정교회 수도원 수사와의 만남에서 스님들은 종교간 화합과 이웃종교에 대한 배려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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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국회의사당에 마련된 무명용사의 비에 새겨진 참전국명에는 한국(그리스어로 KOPEA)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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