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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르포-투먼 수월정사]조선족 최초 대규모 사찰 불사 두만강가에 수월스님 보살행 되살린다 ...불교닷컴 0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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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09-08-25 17:31 조회2,7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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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투먼시에 건립 중인 수월정사 현장에서 영담 스님이 창건주 이평림사장과 진행 사항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영담 스님은 도문시장으로부터 일광산화엄사(수월정사)건립추진위원회 해외명예회장 위촉장을 받고 자문을 맡아오고 있다.ⓒ2009 불교닷컴
중국 지린(吉林)성 조선족자치주인 투먼(圖們)시는 관광활성화를 통해 경제를 부흥시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중구 정부는 인근 3개시를 통합해 인구 100만명의 거대 도시로 탈바꿈을 꾀하고 있다. 백두산과 일송정 등 이름만 들어도 민족의 가슴을 설레게하고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유적지는 이 지역을 한국인 관광객의 메카로 인식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투먼시에서 1차로 4만평을 투자하고, 조선족 사업가가 35억원을 들여 수월 스님의 보살행과 항일 항일독립투쟁의 발자취를 되살리기 위해 수월정사를 건립하면서 불교성역화로 변모하고 있다.

수월정사, 4만평 부지에 건립 단청 마무리 중

취재진이 이평림(李平林) 투먼시평림일광산개발유한공사 사장을 다시 만난 것은 지난해 11월 베이징 만남 이후 8개월 만이다.

이 사장이 투먼시민족종교국의 요청으로 화엄사(수월정사) 건립을 결정한 것은 2007년 6월 20일. 만 2년이 지난 오는 10월 불사를 완공한다.

산문(일주문)-천황문-대웅전-법보전 등은 이미 완공돼 단청을 진행 중이다. 천왕문 좌우측으로 북각과 종각이 들어서고, 대웅전 양 옆으로는 관음전과 명부전을 추가로 건립할 계획이다. 예정대로면 10월에 모든 가람 불사가 완공된다.

이어 대웅전에서 500m가량 떨어진 곳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40m높이의 탑이 들어서고 산 정상에 대불을 조성한다는 게 이평림 사장의 복안이다. 북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울 대불은 조선족의 안녕과 남북의 화합을 기원하게 된다. 수월 스님을 기리기 위해 수월관음상도 대웅전 옆에 안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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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먼에 건립 중인 수월정사는 중국식 양식에 한국식 단청을 입힌 독특한 형태다. 단청 책임을 맡은 주광관씨는 "수월 스님의 수행정신을 살리기 위해 한국 전통 문양을 최대한 많이 넣었다"고 밝혔다.사진은 단청 중인 대웅전. ⓒ2009 불교닷컴
단청을 맡은 한국인 주광관씨는 아버지인 주인철씨와 삼촌이 모두 단청을 업으로 삼고 있다. 동국대 불교예술문화학과 석사과정인 주씨는 "중국식 사찰에 한국식 문양을 그려넣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수월스님의 수행정신을 담아내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지난해 9월 단청불사를 시작했고 오는 9월 중순에 완료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곳의 작업인부들은 거의 조선족이다. 단청 작업자들은 한국에서 들어간 14명과 현지에서 선발한 6명 등 모두 20명이다.
1000평 규모의 대웅전 안에는 높이 7m의 본존불을 모시고 뒤에는 13m 높이의 괘불탱화를 건다. 대웅전 내부 양쪽으로 만불을 봉안할 방침이다.

취재진이 수월정사를 찾은 7월 25일 불사가 한창 진행 중임에도 조선족 스님이 신도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법회를 집전하고 있었다. 사찰이 완공되고 이 곳을 거쳐 백두산, 일송정 등 역사문화유적지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몰려들 경우 수월스님의 보살정신을 온전히 담고 있는 수월정사는 지역 최대 사찰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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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월정사가 위치한 일광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 두만강 건너편이 북한이다. 광양역과 집들이 보인다. 왼쪽 끝 부분 두만강이 미국 여기자들이 북에 억류당한 지점이다.ⓒ2009 불교닷컴
북한땅이 손에 잡힐 듯…민족의 애한이 서린 땅

수월정사는 중국 내에 조선족이 세우는 최초의 사찰이라는 점 외에도 북한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수월정사가 위치한 일광산 정상(해발 200m)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면 굽이쳐 흐르는 두만강이 있다. 강 건너편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1970년대 건설한 전철이 두만강을 따라 이어져 있고, 김일성 수령의 사진이 내걸린 광양역이 훤히 보인다. 작곡가 이시우가 사형당한 남편의 소식을 듣고 밤새우는 독립군 아내의 사연을 듣고 두만강가 여관방에서 만든 노래가 '눈물 젖은 두만강'이다. 강 가에 비문도 서 있다.

수월스님과 동시대에 일제의 강압과 수탈에 못이겨 고국을 등지고 두만강을 건너온 간도가 바로 이곳임을 실감케 한다. 일광산 수월정사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다리와 기차가 오가는 철길이 있다. 양측의 삼엄한 경계 속에 통행증을 가진 중국과 북한 주민들이 이 곳을 통해 생필품을 조달하고 있다.

취재진은 투먼시민족종교국의 도움으로 다리의 한가운데에 그어놓은 국경선까지 갈 수 있었다. 중국측 공안요원이 지키고 있었다. 북측에서는 아무도 지키 않았다. 대신 간간이 군인들과 농부들이 밭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공기와 오성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투먼은 두만강 연안에서 유일하게 북한과 철도로 연결되어 북학과 교역이 가장 확발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해마다 2만 명이상이 북한을 출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나진-선봉지역이 경제특구가 되면서 조선족 등 많은 경제인들이 넘나들고 있다. 자진-선봉지역은 투먼에서 150km 떨어져 있다.

지린성 전체는 조선족이 40% 가량 차지하고 있어 한국어가 공용어 중 하나다. 모든 간판에는 한글과 한자를 병기하되, 한글을 먼저 쓰도록 법제화했다. 거리에 나서면 한국의 여느 도시풍경과 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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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광산 아래 두만강가에서 북한 어린이들이 멱을 감고 있다. 광양역 바로 아래이다. 앞 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회색 말뚝은 중국이 탈북자를 방지하기 위해 쳐 놓은 울타리이다.ⓒ2009 불교닷컴
수월스님 토굴터·화암사터 추가 복원 계획도

투먼시는 수월정사가 건립되면 일광산 정상을 기준으로 남과 북에 있는 화암사터와 토굴터를 복원할 계획이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없지만 두 곳의 절터 모두 수월 스님이 마셨던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터가 있다. 투먼시민족종교국에서도 이 두 곳을 폐사지로 보고 있다.

수월정사 건립에 이어 이 두 곳마저 복원된다면 수월스님의 행적을 기리는 성역화사업이 완성된다. 수월정사 불사가 한창 진행 중인 일주문 앞에 초원에는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수월스님이 회막동에서 소를 키웠다는 증언이 사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월정사 일주문에서도 보면 두만강을 기준으로 왼쪽은 중국, 오른쪽은 북한이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선조들이 오른쪽 북한 땅에서 두만강을 건너 현재 이 터로 목숨을 걸고 넘어왔다.

이 곳은 경제와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지만 봉오동전투 등 1920년 초반의 항일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수월 스님이 짚신을 삼아 걸어두고 주먹밥을 제공했던 회막동이 바로 여기였다. 일광산 정상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두만강옆 중국측 마을이 봉오동전투의 불씨를 지핀 곳이다. 이 마을에는 아직도 조선족만 살고 있다. 이 마을에서 3km 가량 두만강을 따라 남으로 내려가면 최근 미국의 두 여기자가 북측에 억류된 곳이다.

그래서 인지 중국 군인들의 경계가 유난했다. 취재진이 북한의 광양항과 두만강에서 헤엄치며 노는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촬영하자 카메라를 빼았으며 사진을 모두 지우라고 재촉했다. 현지인의 해명으로 겨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수월정사가 있는 일광산은 그만큼 북한과 가까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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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 북쪽을 통해 올라가 내려다 본 백두산 천지.하루 1만여명이 찾지만 천지를 볼 수 있는 것은 하루 20-30분에 불과하다.ⓒ2009 불교닷컴
백두산 3시간, 용정 일송정까지 30분 '관광 삼각벨트'

투먼은 옌지에서 30분 거리다. 옌지에는 용정과 일송정이 있다. 투먼에서 승용차로 3시간 가량을 달리면 민족의 성산 백두산이 나타난다. 백두산 북쪽 산문 안에 있는 대종대우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호텔의 해발고도는 1950m이다.

국내 언론에서 중국 정부가 교묘히 대우호텔의 영업을 방해한다고 보도한 적이 있었다. 실제 주차장에서 호텔까지 셔틀버스 외에는 이용할 수 없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 곳에 있는 3개의 호텔들도 같은 처지였다. 한 현지인은, 중국 정부가 산문내 호텔시설들을 이런 식으로 해서 점진적으로 철거해 가는 과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차장에서 4륜구동 짚차를 이용,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불과 20여분 만에 천지 바로 아래 주차장에 닿았다. 요새는 성수기로 하루 1만 명 정도가 이 곳을 통해 천지를 찾는다고 한다. 관광객 대부분은 중국인과 한국인들이었다.

산아래에서 햇볕이 쨍쨍 내려쬐더니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먹구름이 끼웠다. 천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한순간 구름이 걷히면서 천지가 장엄한 자태를 드러냈다. 천지를 둘러싸고 오연한 백두산. 천지의 물빛은 푸르다 못해 검었다.

수월정사와 30분 거리에 옌지 신흥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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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옌지 신흥불당에는 명선 스님이 제공한 수월스님 진영이 봉안돼 있다.ⓒ2009 불교닷컴
조계종이 봉은사 등 3개 사찰이 힘을 모아 건립한 신흥불당은 현재 건립 중인 수월정사와 30분 거리인 옌지에 있다. 비행기 시간에 쫒겨 참배만 할 요량으로 신흥불당을 들렀다.

아담한 현대식 3층 건물에 불교협회, 법당, 조사전 등이 있었다. 일요일임에도 신도나 스님들은 보이지 않았다.

신흥불당은 도심포교당 역할을, 수월정사는 산사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 곳의 불자 뿐아니라 백두산을 비롯한 역사유적지를 탐방하려 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수행처이자 휴식처를 제공하는 역할 분담을 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흥불당은 애초에 수월정사로 명명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입구에는 신흥불당, 불교협회 간판만 있었다. 불당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현관문 위에 앞뒤로 한자와 한글로 수월정사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조사전에는 명선 스님이 제공한 수월 스님 진영이 걸려있었다.

귀국하는 비행기는 조선족과 한국인 관광객들로 만원이었다.

 / 중국 지린성 투먼시 = 이혜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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