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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세계불교를 가다② 티베트 불교의 세계화 과정...불교신문 11/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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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11-03-06 14:28 조회2,3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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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의 상징인 포탈라궁.
 
 
경전 관련 출판물만 5000여 종
 
다양한 번역서 통해 세계와 교류
 
‘보리심’ 실천법 구체적인 교육
 
 
티베트라고 불리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티베트는 여전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티베트 문화의 정수,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티베트 불교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망명 정부를 이끄는 정신적 스승 달라이라마를 그 이유로 꼽을 수 있다. 많은 저명인사들은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를 친견하는 것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으로 여긴다. 이번 편에서는 서양인들이 티베트 불교에 열광하는 까닭과 서구전래 역사에 대해 살펴보겠다.
 
달라이라마는 1959년 5000m 이상의 준령과 협곡을 넘어 인도로 망명하게 된다. 당시 그를 따라 인도로 망명한 티베트인은 8만 여 명이나 됐다. 하지만 티베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중국 인민해방군에 의해 처형되는 등 피바다가 됐다. 그 숫자가 무려 8만7000여 명에 다다랐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억압을 피해 조국 티베트를 뒤로 하고 인도와 서유럽.미국.호주 등지로 향하는 티베트인들의 망명의 발걸음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티베트인들의 망명으로 자연스럽게 티베트 불교는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티베트 불교의 선지식들이 세계 각국으로 흩어졌으며, 결과적으로 세계화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맞은 셈이다. 최연철 티벳장경연구소 전임연구원은 달라이라마 망명 이후 그를 중심으로 확장된 국제적 관심과 티베트 불교 학자와 스님들이 주도한 적극적인 포교활동이 곧 티베트 불교를 성장시키는 주요 원동력이 됐다고 지적했다.
 
토머스 레어드가 쓴 <달라이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라는 책에는 전 세계로 뻗어가는 티베트 불교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달라이라마가 17개 협정 무효를 선포하고 망명 정부를 세운 해에 인도는 티베트 난민 3만 명을 받아 줬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인도에 서른다섯 곳, 네팔에 열 곳, 부탄에 일곱 곳의 티베트 난민 재정착 마을이 세워졌다. 네팔로 간 난민들은 카펫 공방을 세웠는데 엄청나게 성장해 1990년대에는 네팔 최고의 외화 수익원이 됐다. 수 십 년이 흐르는 동안 티베트 인들은 네팔과 인도 등지에서 시민권을 취득했고, 몇몇은 스위스, 캐나다, 미국 등지로 이주해 시민권을 받았다. 이들은 티베트 불교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전문가들은 티베트의 파괴가 오히려 티베트 불교의 세계 전파를 가능하게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네팔과 인도로 간 유럽과 미국사람들은 티베트 스님에게 참선을 배우고 불교를 공부했다. 이후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미국, 캐나다 등지에 티베트 불교 센터가 생겨났다. 타이완에서는 젊은 세대가 티베트 불교 센터 200곳을 세우는 일도 발생했다.
 
티베트 불교에 대한 높은 관심은 출판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티베트 불교 관련 출판물을 살펴보더라도 방대한 컨텐츠를 보유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최고의 출판물 판매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아마존(www.amazon.com)’ 검색창에 티베트 불교(Tibetan Buddhism)를 검색하면 관련 출판물이 5000여 종에 이른다. 한국불교(Korean Buddhism)로 검색했을 경우는 300여 종, 일본불교(Japanese Buddhism)는 1800여 종, 중국불교(Chinese Buddhism)는 2000여 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 인사들을 통해서도 티베트 불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리처드 기어는 영화 촬영 시 짬을 내 부처님의 가르침에 머리를 숙이고 ‘직메(두려움 없는 자)라는 티베트 식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티베트 불교 마니아다. 우마 서먼 집안인 서먼 일가는 미국 달라이라마법왕청(TibetHouse)의 실질적인 운영자들이다. 영국의 찰스 황태자도 티베트 문제에 몰두해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최연철 전임연구원은 “티베트 불교는 보리심과 공성이라는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바탕으로 이것을 실천하고 공부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갖고 있다”며 “세계로 뻗어나갈 때 항상 교육과정을 갖고 나갔고 필요한 경전과 서적들은 속속 세계화 됐다”고 밝혔다. 최 연구원은 “한국불교도 세계 불교 속에서 자기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인적자원에 대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갖춰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다영 기자 hong12@ibulgyo.com
 
  
 
티베트 정신적지도자, 달라이라마
 
 
세계적 종교 지도자로 활동
 
트위터 팔로워만 100만 명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 그는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우고 티베트 헌법을 기초하는 한편 40여 년 간 학교.수공예공장.예술학교 등을 설립해 티베트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1935년 티베트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라모 톤둡’으로 불리다가 세살 무렵 달라이라마의 환생으로 지목돼 1940년 정식으로 즉위했다. 달라이라마는 1959년 라싸 민중봉기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웠다. 이후 나라 잃은 티베트민족의 정신적인 지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1994년에는 루스벨트 자유상을, 같은 해 세계안보평화상 등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 불교계를 중심으로 한국방문을 추진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 등을 이유로 정부에서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달라이라마는 지난 2010년 2월 말 트위터에 가입하면서 활동영역을 넓혔다. 팔로워는 어느덧 100만 명을 훌쩍 넘겼다.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을 매일 읽고 싶다면 그의 트위터(http://twitter.com /DalaiLama)를 방문하면 된다. 그의 모습과 육성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youtube. com/DalaiLama)를 이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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