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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국보 보유한 中尊寺 등 2600여개 사찰 산재(불교신문 1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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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11-03-16 17:20 조회1,9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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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과 쓰나미로 일본 열도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사진은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천년고찰 瑞巖寺 ‘무사’
 
주민 300여명 대피 중
 
 
사상 최악의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동북지방을 강타한 가운데 전대미문의 피해상황이 전해지고 있다. 대지진이 발생한 일본 동북지방은 즈이간지(瑞巖寺)와 주우손지(中尊寺) 등 2600여개 사찰이 있어 불교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동국대에서 한국불교를 공부한바 있는 사토 일본 동양대 강사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와 이메일 인터뷰에서“일본 언론을 통해 사찰 피해 상황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면서 일본 사찰의 피해 상황을 전했다.
 
이어 사토 강사는 “미야기현(宮城縣)에 있는 즈이간지가 쓰나미가 발생한 바다 가까이에 있지만, 벽에 금이 간 정도”라면서 “주민들의 대피소로 이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즈이간지 대피소에는 마을 주민 300명이 피난해 있는 상태이다. 사토 강사는 “주우손지에 대한 보도는 없고, (일본 국내) 인터넷을 통해서도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지진 발생이후 일본 불교계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상세히 전했다. 사토 강사는 “일본 국내의 천태종, 진언종, 정토종, 조동종, 정토진종, 임제종, 일련정종 등 각 종파에서는 애도문 발표, 교단 차원의 대책본부 설치, 모금 활동 등을 공통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토진종의 경우 대지진 발생 이후 3회에 걸쳐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피해상황을 파악하는 한편 대응방안에 대한 의견을 공모하고 있다. 일부 종단에서는 피해지역 사찰을 대피소로 제공하거나 구호물자를 운반하기도 했으며, 진여원(眞如苑)의 경우 구호 기금 1억 엔을 모금하기로 결정했다.
피해가 큰 지역 중 하나인 이와테현(岩手)은 산지와 해안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특히 쓰나미로 인해 해안가 마을의 피해가 심각한 곳이기도 하다. 리쿠젠카가카시(陸前高田市)는 쓰나미가 덮쳐 5000가구가 이미 수몰됐고, 전체 주민 2만3000 여명 가운데 1만 7000여명이 안전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등 인명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피해상황 파악조차 못해
 
각 종파별 모금운동 전개
 
 
이와테현의 대표적인 사찰인 주우손지(中尊寺)는 관산(關山)에 꼭대기에 위치해 있어 쓰나미에 의한 파괴는 모면했을 것으로 보인다. 주우손지는 일본 천태종의 2조로 <입당구법순례행기> 저자인 엔닌스님이 850년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사격이 확대된 것은 11세기 후반 후지와라 기요히라(藤原衡)에 의해서다. 후지와라가의 초대당주인 기요히라는 11세기 후반 도호쿠지방 오슈(州)에서 두 차례 일어난 전란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 증오와 복수로는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주우손지에 주우손지에 적이나 아군, 인간과 짐승 모두 죽은 자를 위로할 것을 명했다고 한다. 이 무렵 40여 개의 전각과 수많은 탑이 조성됐고 400여 스님들이 이곳에 주석했다고 한다.
 
기요하라가 세운 대표적인 전각이 곤지키도(金色堂)이다. 1124년 건립된 곤지키도는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이기도 하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봉안하고 서방의 극락정토를 표현한 법당 내부는 금 장식과 함께 빛의 방향에 따라 녹색이나 자주색으로 빛나는 나전, 동남아시아에서 전래된 자단 아프리카 코끼리 상아로 장엄돼 화려하다. 1962년부터 1968년 사이 대규모 보존 복원작업이 이뤄져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4대에 걸친 후지와라 가문 당주의 미이라화 된 유해가 수미단에 안치돼 있다고 한다.
 
일본 미야기현에 위치한 즈이간지(瑞巖寺)는 오슈지방 제일의 선종 사찰로 17세기 일본의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곳으로 이름나 있다. 바다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즈이간지는 다행히 이번 쓰나미의 피해에서 벗어났다. 즈이간지는 임제종의 명찰로 9세기에 창건됐다. 828년 지가쿠 대사가 창건했으며 현재 사찰은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가 1604년에 착공해 5년 간에 걸쳐 재건한 것이다.
 
건축 당시 전국의 명공 100여 명이 절을 짓게 했으며 자재는 마노산에서 들여왔다고 전해진다. 본당과 부속건물인 오나리 현관문 그리고 당나라 문양의 고리와 회랑은 국보로 지정돼 있으며, 오나리문과 중문 등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또 경내 세이류텐(靑龍殿)에는 십일면천수관음좌상 등 각종 보물이 전시돼 있다. 문을 넘어 본당으로 연결되는 참배길은 수령 삼백년 이상의 삼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매년 관광객들의 방문이 잦다. 센다이 시내로부터 국도 45선을 따라 약 25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마쓰시마카이간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걸린다.
 
다이린지(大林寺)는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 수감된 당시 그를 최후까지 지켜보았던 일본 헌병출신 치바 도시치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센다이로부터 약 70km떨어져 있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당일 치바에게 유묵,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을 써 주었다. 안 의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치바 도시치는 군대에서 제대한 뒤 고향에서 철도원으로 일하면서도 평생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모시고 안 의사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사토 일본 동양대 강사는 “대지진 발생이후 24시간 피해뉴스 보도 체제로 바뀌었다. 피해자수가 시시각각 늘고 있으며, 방사능 오염 가능성으로 일본인들이 절망에 빠지고 있다”면서 “이웃나라인 한국의 구조대가 제일 먼저 달려왔다는 뉴스에 많은 일본인들이 고마워하고 있다. 또한 한국 불교계의 구호 활동 움직임에도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수 어현경 홍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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