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긴급좌담/ 무엇이 불교상담인가(불교신문 1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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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15-02-06 19:44 조회2,023회 댓글0건페이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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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불교상담사 선업스님과 서울불교대학원대학에서 불교상담학의 토대를 구축하고 있는 윤희조 교수가 지난 20일 만나 불교상담의 정체를 모색했다
마음이 우울하다는 사람들은 보통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나는 무가치하다’, ‘세상은 원래 불행한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이런 ‘망상’이 생기는 원인은 천차만별이다.
남편의 바람기로 말미암은 부부간 불신과 가정의 붕괴, 조직생활서 발생한 동료간 충돌과 사회적 부적응, 자녀와 갈등 산후우울증 등등.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교상담은 이같은 일련의 문제를 꿰뚫고 “불교적 핵심인 무아적 감수성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말하면 “걸림없이 살기”에 이르는 과정이다.
지난 20일 불교상담심리사 전문가인 선업스님(뫔행복치유센터 원장)과 윤희조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상담학 교수는 ‘불교상담’의 맥락과 지향점을 주제로 긴급좌담을 나눴다.
선업스님과 윤 교수 둘 다 “불교상담은 아직 제대로 터를 잡지 못했다”는데 공감했고, “말로만 불교상담이 아니라 이제부터 초기진단부터 치유단계를 거쳐 효과검증까지 총체적인 불교상담 시스템이 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상담과 명상상담이 혼재하는데, 이들 둘은 같은가 다른가. 선업스님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선업스님=불교상담이 ‘부처님 가르침’에 입각한 상담이라면, 명상상담은 ‘부처님의 수행법’에 기초한 상담이다. 명상상담의 시장규모는 종교를 초월해 확장되고 있다. 타종교에서 명상을 자신들의 성서와 어설프게 접목시켜 명상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한다.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만든 ‘명상’은 불교에서 출발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불교 내부에서는 불교상담사 자격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일반에 나가서는 명상상담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도 있다.
윤희조 교수=스님은 상담의 초기 진단과정에 있어 ‘명상’을 불교상담의 대표주자로 끄집어 내셨다. 불교 안에서 다양한 측면 중에 명상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풀어내려는 시도 같다. 하지만 불교교리가 갖고 있는 치유적 능력도 뛰어나다.
탐진치, 삼계, 육도, 번뇌 등으로 진단하고 삼학이나 신구의로 치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자 외에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편이 명상이라고 보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스님=불교든 명상이든 핵심은 ‘관찰’이다.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영어로 말하는 명상(meditation)에도 ‘재다’ ‘치료하다’와 같은 뜻이 담겨 있다. 고집멸도(苦集滅道)와 유사한 맥락이다.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청정케하는 실천과정 역시 불교상담이자 또한 명상상담이다.
윤 교수=불교학자들이 보기에 명상은 오히려 상담과정 가운데 치유 쪽에 가깝다. 치유에 앞선 진단의 단계에서는 고통의 근원 등을 교리적 측면으로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선업스님
‘부처님 수행법’ 입각
불교ㆍ명상 접목시켜
불교상담 체계 구축해야
스님=그렇지 않다. 명상상담에서 ‘진단없이 치유없다’는 말을 자주 쓴다. 불교상담이 간과하는 것이 오히려 심리현상이다. 몸과 마음현상을 제대로 측정하고 진단하는 남방불교계의 여러가지 수행법이 대중화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기독교에서도 명상상담을 가져다가 쓰고 있다. 위빠사나에 심취된 목사들도 많다. 그들의 명상상담은 삼매를 중심으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경지다. 명상의 원래 취지와 어긋난 것이다.
윤 교수=스님이 말하는 명상상담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스님=명상방식에 관한 오해도 풀고,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바꾸는 것 역시 명상임을 알아야 한다. 걸으면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반복해도 인지에 변화가 온다. 좌선만이 아니라, 행주좌와 어묵동정 모두 명상임을 알아야 한다. 신구의를 다 엮어서 조정하는 것이 불교상담의 핵심이다. 이를 실천하는 방식이 바로 명상상담이 된다.
윤 교수=불교의 실천과 이론을 다 포섭해서 명상이라고 하니까, 명상의 의미를 그렇게까지 확대하는가 라는 생각도 든다. 명상을 우리(불교)가 ‘독식’해도 되는가 해서….
스님=학자의 입장에서 조작적 정의란 말이 여기서 나온다.(스님은 현재 경기대 ‘명상상담’ 관련 박사과정에 있다.) 기도나 예배, 장로와 같은 불교용어들이 조작적 정의에 밀려 기독교 언어로 돼버렸다. 명상도 마찬가지다. 우리 불교계 안에서 살리지 못하면 결국 밀려난다. 일반 상담시장을 향해 스님과 불교학자들이 뭉쳐서 명상상담의 주도권 쥐고 불교상담의 정체성을 키워나가야 한다.
윤희조 교수
상담 초기 진단과정부터
명확한 과학화ㆍ계량화
무아적 감수성 ‘지향’
윤 교수=명상상담은 어찌됐든 그동안 불교상담에서 간과했던 ‘진단’에 눈을 떴다는 차별성을 갖고 출발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지금도 적지않은 스님들이 불교적 상담치유에 유념하고 있지만 불교적 진단프로그램을 제대로 구축하지는 못했다.
스님=서구의 애니어그램이나 심리도식치료법 등을 빌어쓰고 있을 뿐, 독자적인 진단기법들이 아직 체계화되지 못했다. 외부의 것을 불교와 접목시킨 것이 1세대의 공로라면, 이제 불교상담의 진단 심화과정을 구체화시키는 것은 우리들 몫이다. 다시말하면 몸과 마음을 도구로 한 불교적 심리진단을 토대로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윤 교수=스님이 설명하신 명상상담이란 결국 일반화 대중화된 불교상담의 또다른 날개인 것 같다. 명상이 불교의 한 파트가 아니라 불교 전체를 커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더 많은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불교상담이 되기 위해서 불교상담을 명상상담이란 이름으로 대중화시키고 그것으로 진단과 치료의 양 측면을 잡겠다는 의미다.
스님=평상시 명상상담은 ‘마음알기→마음바루기(바르게 하기)→걸림없이 살기’의 3단계 순으로 설명한다. 진단과 치유를 거쳐 삶에서 현실적응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나 단계를 아는 것이 제대로 된 진단인데, 이를 소홀히 하고 힐링한답시고 정서만 흔드는 ‘마음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다. 기분도 좋아지고 잠시 행복에 젖을 수 있지만 치유라고 보긴 힘들다.
윤 교수=결국 불교적 상담이란 심리평가, 진단의 과정에서 발생한 고(苦)와 집(執)에 대한 과학적 평가와 수치화도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불자상담사와 불교상담사는 엄연히 다르다. 불자로서 상담기법만 익힌 불자상담사가 불교적 진단기법으로 상담하지 못한다면 불교상담이 아니다.
스트레스 해소, 우울감소, 인격장애 감소 등 이상심리를 약화시키는 것이 지금 현재 외부에서 들여온 마음챙김 관련 상담목표치인데, 불교상담은 여기에 일반인용 예방용 깨침용 프로그램까지 망라되어 있다. 상담(相談)을 너머 정담(情談), 법담(法談)까지 이름지어봤다. 아직 학문적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서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선업스님은 “간화선 역시 인지행동치료에 빼놓을 수 없는 유용한 상담치유법”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나는 무가치하다’는 것을 ‘이뭣고’로 풀면 온갖 잡념이 일념으로 바뀜으로써 인지적 왜곡이 다 사라진다. 인지행동치료에서 선(禪)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윤 교수는 “불교상담학이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정신적 물질적 고뇌에 명확한 진단과 명쾌한 치유를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려면 지금부터 이 분야에 정진하고 있는 제자들과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고심해야 할 것 같다”면서 “불교상담의 학문적 체계구축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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