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세계는 한 송이 꽃” 숭산 선사의 ‘벽안의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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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14-10-28 11:23 조회2,463회 댓글0건페이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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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진수를 전 세계에 전한 숭산 선사는 벽안(碧眼)의 외국인 제자들을 받아들였다. 외국인 제자들은 미국, 호주, 헝가리, 폴란드 등 서양은 물론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양 출신도 다수에 이른다. 비록 숭산 선사는 열반에 들었지만, 외국인 제자들은 세계 각국에서 수행 정진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펴고 있다. 10월18~19일 제10회 세계일화대회를 앞두고 그들의 ‘이력’을 살펴봤다. |
美 호주 헝가리 폴란드
명문대 출신 석학ㆍ인재
“오직 모를 뿐” 가르침에
숭산스님 회상에서 수행
한국불교 전법사 즐비…
숭산 선사의 제자 가운데는 미국의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출가한 경우가 많다. 대봉스님과 대광스님은 각각 미국 켄터키 주립대학과 캔사스 대학에서 교수를 지낸 석학(碩學)이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공부한 현각스님, 하버드대를 졸업한 무상스님, 예일대 지질학과를 졸업한 무량스님, 보스턴대 공과대학을 마친 무심스님 등이 있다.
대봉스님은 1977년 미국 예일대에서 열린 숭산 선사 강연을 듣고 감명 받은 후 로드아일랜드에 있는 프로비던스 선원에서 행자 생활을 하며 수행자의 길에 들었다. 1984년 숭산 선사를 은사로 조계종 승적을 취득했다. 이후 서울 화계사에서 정진했으며, 지금은 계룡산 국제선원 무상사 조실로 있으면서 숭산 선사의 유훈을 계승하고 있다. 교수로 재직하던 1979년 숭산 선사와 인연을 맺고 참선 수행을 시작한 대광스님은 1987년 출가해 프로비던스 선원장으로 활동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서 한국식 사찰 ‘태고사’를 짓고 수행했던 무량스님은 <왜 사는가>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보스턴대를 졸업한 무심스님은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정진했다.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현각스님은 미국을 거쳐 한국에서 정진하다, 2009년부터 독일 뮌헨에 참선센터 불이선원을 개원해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하던 현각스님은 1989년 12월 하순 세계적인 불교학자 마사토시 나카토미 교수가 “세계적인 선승(禪僧)이자, 세계 4대 생불(生佛)이 강의를 하니 꼭 참석해 들으라”는 당부에 따라 숭산 선사의 강의를 듣고 큰 감명을 받는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2년 9월7일 정식으로 출가해 숭산 선사의 제자가 됐다. 현각스님은 1996년 양산 통도사에게 비구계를 수지하고, 2008년에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
이밖에도 무상사 회주 대진스님(미국), 홍콩 수봉선원 주지 향음스님(홍콩), 싱가포르 선원 주지 계문스님(싱가포르), 대원스님(베트남), 오광스님(세르비아), 현문스님(폴란드), 원도스님(헝가리), 원통스님(폴란드), 대성스님(미국), 명안스님(말레이시아), 보행스님(리투아니아), 명화스님(폴란드), 관미스님(폴란드), 범현스님(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정진하는 제자들이 즐비하다.
이처럼 숭산 선사의 가르침은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고, 적지 않은 출가자를 배출했다. 간단명료한 선사의 영어는 법(法)을 전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서양 지식들에게 불교와 가까워지는 동기를 부여했다. 숭산 선사가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당시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82년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는 그의 저서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에서 “(숭산스님의) 명성은 뉴잉글랜드 지역, 특히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권 내에서는 좀 시끌시끌한 것이었다”면서 “하버드대 전체수석을 한 여학생 베키가 ‘당신과 같은 훌륭한 한국의 학인인 ‘쑹싼스님’을 안 뵙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김 교수는 베키의 권유로 숭산스님의 ‘달마토크’를 들었는데, “그(숭산스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동안 나의 식(識)의 작용 속에서 집적해 왔던 객기(客氣)가 얼마나 무상한 것인가를 깨달았던 것”이라면서 “나는 그의 얼굴을 직감하는 순간, 그가 해탈인이었음을 직감했다”고 술회했다.
숭산(崇山) 선사는 1927년 평남 순천에서 4대 독자로 태어났다. 1945년 평양공고를 졸업하고 동국대에 입학했다가, 1947년 마곡사로 출가해 불문(佛門)에 들었다. 1958년 3월 화계사 주지 취임 후 불교정화운동에 앞장섰으며, 불교신문 초대 사장을 지냈다. 선사는 뜻한 바 있어 1966년부터 한국불교를 세계에 전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30년간 미국, 캐나다. 일본, 홍콩, 미국, 캐나다, 폴란드, 영국, 스페인 등 30여 개국에 홍법원 및 선원 120여 곳을 개설했다. 선사는 “오직 모를 뿐” “세계는 한 송이 꽃”이라는 가르침으로 세계에 불교의 향기를 전하다 2004년 11월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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