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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혜국스님과 함께하는 중국 선종사찰 순례- 신라 구법승들의 자취를 찾아서②(불교신문 1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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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14-05-25 17:15 조회2,4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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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순례가 더 특별했던 것은 중국으로 구법의 길을 떠났던 신라 스님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신라 구법승들의 정신은 중국 대륙을 제압하고도 남을 기세였다. 구법승들은 중국 불교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스님들은 대부분 열악한 조건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바닷길을 택했다. ‘떠날 때 100명이었으나 돌아온 자는 한 명도 없다’는 혜초스님의 기록이 당시 상황을 조금이나마 짐작케 한다. 스님들이 한반도의 서해안에서 중국의 동해에 이르는 바닷길로 대장정에 오른 까닭은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였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죽음도 불사하고 걸었을 그 길을 다시 순례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순례의 첫 시작은 3조 승찬대사의 삼조사 참배였다. 사진은 스님들이 삼조탑을 향해 오르는 장면.

도신스님의 4대 제자로 이름을 떨친 신라의 법랑스님도 그 중의 한 명이다. 사조사 비로탑 안에 도신스님과 함께 입상으로 함께 모셔져 있다. 도대체 무엇이 스님을 먼 중국 땅으로 이끌었을까. 마음속 깊이 새겨진 나라는 존재, 우주의 본질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을까.

그 고귀한 정신을 보여준 스님의 입상 앞에서 진심을 다해 합장했다. 안타깝게도 스님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단속사신행선사비’에 신라 36대 혜공왕 15년(779)에 법랑스님 문하에 있던 신행스님이 법을 전해 받았다는 언급이 있을 뿐 그 밖의 사실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이후 신행스님은 다시 중국으로 유학해 선을 배워 신라에 전파한다.

순례단은 이번 순례기간 동안 신라 구법스님들의 사상이 녹아있는 도량을 참배할 때마다 추모다례재를 거행하고 새로운 구법의 의지를 다졌다. 지도법사 혜국스님도 “우리 선조 스님들의 도량을 순례하는 것은 어떤 불사를 하는 것보다 마음의 보물을 얻는 공덕이 있다”고 말했다.

진여선사 백장사 서은사 등

신라 스님들 구도 현장서

추모다례재로 정신 되새겨

중국 禪불교의 부활 위해

간화선 원형 계승하고 있는

한국불교가 역할 해야 할 때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백장청규의 발상지 백장사 역시 신라 스님들의 구법 도량이었다. 이곳에서 주지를 지낸 안 선사(禪師)가 대표적인 분이다. 스님 또한 여러 구법승과 마찬가지로 중국인들의 간청에 의해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입적했다.

안 선사는 진성여왕의 즉위 전후에 당나라에 들어가 장시성 푸저우에서 광인선사를 은사로 득도한 뒤 백장산에서 자신의 법을 열었다. 안 선사가 법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은 <전등록> ‘홍주 백장 안 화상’ 편에 전해지고 있다.

조동종의 개조인 동산양개의 제자 운거도응스님의 선문에서 수학한 이엄선사도 빼놓을 수 없다. 순례단은 장시성의 진여선사에서 운거스님 문하의 1500여명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는 이엄스님의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사조사에 모셔진 신라 법랑스님의 입상.

이엄스님은 중국에서 6년간 시봉한 도응선사로부터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니, 사람이 능히 도를 펼 수 있는 것이다. 동산(東山)의 선지가 타인에게 있지 않느니라. 법의 중흥을 오직 내가 너에게 주니, 나의 도는 동이(東夷)에 있다”는 말과 함께 심인(心印)을 받았다.

‘생명은 한계가 있으니 어찌 나라고 다함이 없을 것인가. 마땅히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을 남기고 입적한 신라의 원랑대통 선사의 자취는 장시성의 서은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중국 대륙에 산재한 신라 스님들의 자취를 찾아보는 순례는 난창 우민사를 마지막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경내 동불전 마당에는 조계종 종조인 도의국사구법기념비가 서 있다.

우민사는 신라 고승인 도의스님이 육조 혜능스님의 계보를 잇는 당나라 시대 서당 지장스님을 만나 법을 전수 받은 곳으로 당시에는 홍주 개원사로 불렸던 곳이다. 조계종은 지난 2008년 이곳에 도의국사 입당구법기념비도 세웠다. 스님들은 추모다례재를 봉안하며 그 뜻을 기렸다.

중국은 1966년부터 1977년까지 문화혁명에 의해 사찰이 대대적으로 파괴되고 선맥도 단절된 상황이다. 현재 중국불교는 국가적 지원 속에 무섭게 성장하고 있지만, 관광을 목적으로 복원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간화선의 정신을 원형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한국불교가 이제 중국 선 정신의 복원을 위해 그 역할을 해야 할 때다.

   
신라 구법승들의 정신을 떠올리며 법문을 듣는 모습.

■ 지도법사 혜국스님 일문일답

간화선은 모든 수행의 뿌리

직접 체험해보면 알게 될 것

말과 글 끊어진 세계는 고요

생각 일어나기 이전의 근본

- 선방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생 간화선 수행을 해왔는데 어떻게 보는가.

“간화선은 모든 수행의 뿌리다. 간화선을 제대로 체험해 본 사람은 다른 생각을 낼 수가 없다.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근본 자리로 돌아가는 수행이다. 어떤 수행이든 열심히 하다보면 뿌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위빠사나 수행이 있어서는 안 될 수행법은 아니다. 염불도 있고 절 수행도 있듯이 열심히 해서 마음만 깨닫는다면 이상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 간화선이라고 하면 말과 글이 끊어진 세계라는 표현을 한다. 언어와 글은 없어선 안 될 도구인데, 처음 이 표현을 접했을 때 암흑이 떠올랐다.

“말과 글이 끊어진 자리는 암흑이 아니라 고요다. 고요를 맛 본 사람은 안다. 지구상에 나온 모든 글과 말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일체 감정이 딱 끊어진 자리에서는 글이 나오지 않는다. 말길이 끊어지면 지금 말하는 것 자체가 허물을 쌓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인간, 다람쥐 등 모든 만물은 똑같은 법신에 의해 움직이는 완전한 평등의 세계다. 생각이 완전히 정화된 이 자리는 완전한 평화다.”

-스님이 생각하는 간화선의 특징은.

“우리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을 끊어내려 해도 끊어낼 수가 없다. 눈(眼)이 있으면서 눈을 보려고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준 게 간화선이다.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믿음을 갖고 제대로 체험하면 간화선은 결코 어려운 수행법이 아니다. 남의 답을 자기 답처럼 생각하는 세상이 되버려서 어렵다고들 한다. 내가 실제로 체험해보지 않은 것은 내 인생이 아니다.”

- 간화선 대중화를 위해 해야 할 노력은.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인생의 가장 큰 발견은 자기 내면을 다스리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묻지마 폭행, 왕따, 자살 문제 등 이런 사회문제는 물질문명으로 해결될 수 없다. 사람들이 내면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간화선의 대중화다. 바깥에서는 결코 행복을 찾을 수 없다.”

- 가장 기억에 남는 도량은.

“백장사는 전에 비해 확연히 달라졌다. 수년전 왔을 때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이번에 도량이 정비된 모습을 보니 삶과 수행을 하나로 하는 백장청규의 정신이 깨어나고 있었다.”

- 사회 각 부분에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불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는 가르침이 있다. 나 혼자 열심히 잘 살아서는 행복할 수 없다. 남도 나와 같이 행복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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