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관세음보살, 海路유입으로 여성화됐다”(불교신문 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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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그루 작성일13-10-30 15:12 조회2,313회 댓글0건페이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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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카스터교수 ‘실크로드 인문학’에서 “달마대사도 海路이용”
관세음보살이 여성성으로 바뀐 것은 해상실크로드에 의존한 불교 유입의 근거이며 비구니 교단의 동아시아 전파와 선불교의 전승 역시 불교의 해상 전래 입증의 역사적 근거라는 새 이론이 국제인문축제에서 제기됐다.
경주시 호텔현대에서 개최된 ‘실크로드 위의 인문학’ 국제인문·문화축제에서 미국의 원로불교학자 루이스 R 랭카스터 명예교수(81, UC버클리)는 “혜초스님의 구법 길은 해상실크로드를 따라 가 육로로 돈황으로 돌아왔으며, 한국에 돌아오지 않아 한국에서 해양불교가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당시 불교의 많은 새 요소들이 바다를 통해 남중국에 이르고 한국과 일본과 연결된 상인과 항구를 통해 유입됐다”고 10월29일 말했다.
랭카스터 교수는 특히 달마대사의 전승경로도 해상루트라면서 “달마대사는 카슈미르 태생이지만 중국 남단의 광저우(廣州)를 통해 맨 처음 중국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면서 “달마대사가 육로 대신 인도 연안 지역행 배를 이용한 것이 더 수월한 여행길임을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랭카스터 교수는 “당시 국제 교역은 불교가 주도해 실크로드에서 비단보다는 향신료가 더 중요하고 ‘해상불교’가 비중이 높다”면서 “동아시아 불교의 두 가지 큰 맥이 광저우행 상선을 타고 전파됐다”고 기존 이론의 확대를 제시했다. 이어 그는 ‘비구니 교단의 중국 도입’과 ‘자비의 관세음보살상의 전래’ 두 사건에 대해서도 “비구니의 서품식에 필요한 10명 비구니 중 1명이 모자랐기 때문에 중국 여승들의 서품식에 필요한 여승을 데려오기 위해 해상 무역상이 스리랑카로 파견됐고 광저우로 돌아와 비구니교단이 항구로부터 시작됐다”면서 “뱃사람들이 관음보살을 바다의 신으로 인식하고 이것이 중국 연안에 전파되면서 관음보살을 여신의 화신으로 내세우면서 관음보살의 성(性)이 바뀌게 됐다”고 말하고, 그 근거로 스리랑카의 강하구에 위치한 바다 항구들에서 바다를 접한 관음보살상들이 발견되고 있음도 밝혔다. 또한 선불교도 항구 근접지역을 통해 유입됐으며, 대승불교의 전래 또한 읽고 쓰기가 발달한 항구가 발달의 기점이고 연안경로가 중요하다고 추가 이론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UC버클리에서 ‘전자문화지도’(ECAI)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해상불교지도(Atlas of Maritime Buddhism)’ 프로젝트 추진 중임을 밝힌 교수는 “혜초스님 덕분에 신라 시대에 한반도가 바다를 포함한 대순환로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혜초스님이 여행한 ‘대순환로’ 지역은 고대 불교 상인들이 상권을 이루고 사찰들은 재화를 안전하게 한시적으로 보관할 신뢰의 장소”라고 말했다.
불교미술에서 불상의 옷 주름 형식과 얼굴 모습을 지역과 시대에 따라 비교분석한 임영애 교수(경주대, 중앙아시아학회장)는 “실크로드 미술에서 간다라미술이 서에서 동으로 유입된 것만이 아니라 동에서 서로의 유입도 있어 상호교류로 봐야 한다”면서 실크로드의 중앙아시아는 단순 통과지가 아니라 독특한 양식의 생산지라는 새 개념을 말했다. 중앙아시아 불교 미술의 출발점은 간다라라고 전제한 임 교수는 “5세기 북위의 입상에서 재현돼 당을 거쳐 통일신라에서 유행한 중앙아시아 불교 조각은 특유의 비사실적인 옷 주름이 형성되면서 과장된 신체표현과 밀착된 옷 및 독특한 양각주름 등으로 중앙아시아에서 형성된 독특한 조각 특징을 보인다”면서 “두꺼워진 허벅지와 U자형 옷 주름은 감산사 신라 아미타불입장에서도 나타난 중앙아시아 불교 미술의 독특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 교수는 벽화의 화려한 채색도 중앙아시아 불교 미술이 생산지라면서 그 원인을 “벽화에서 얼굴에 묵선을 많이 사용하여 강한 인상을 준다거나, 눈동자를 약간 위쪽으로 그려 넣어 마치 눈을 치켜뜨고 있는 모습 역시 중앙아시아의 특징적 얼굴 표현”이라면서 “흙으로 만든 소조상은 재질이 약해 돌출부위가 쉽게 손상돼 돌출을 최소화하며 부족한 입체감을 강한 채색으로 대신했다”고 해석했다. 이러한 채색된 얼굴형이 5세기부터 시작돼 7~8세기로 이어진 중앙아시아에서 유행풍이라고 말한 임 교수는 7∼8세기에서는 동아시아 형식이 서쪽으로 영향을 끼치는 상호교류가 실크로드의 특성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첫날(28일) 기조강연을 한 국제적으로 실크로드학 권위자인 린메이춘(林梅村) 베이징대 교수는 발표 후 별도 인터뷰에서 랭카스터 교수의 해상실크로드와 관련, “시기적 문제가 배제됐다”면서 “도자기 종류의 해상실크로드 교역은 확실하지만 한당(漢唐) 시기 육로 실크로드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 교류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고 말하고 “해상 실크로드도 운수품·교역품 한 가지로 제한해서 볼 것이 아니라 동서양의 사람들이 교류하는 문화적 원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조강연에서 4개의 사례를 통해 기원전 1세기까지 실크로드 교류를 추적한 그는 실크로드를 통해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해진 것에 대해 “비단이외에도 로마인들의 사치품 비중이 높아 실크로드 개념에 재정의가 필요하다”면서 “한당 시기에 많이 이용되던 육로 실크로드는 경제적 이윤보다는 당시의 사상·생활과 관련한 문화적 교류를 더 많이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관세음보살상의 여성화론와 관련, “키질 벽화에서 수염이 그려진 관세음보살상이 나왔고, 바다의 여신과의 연결은 시기적으로 더 늦다”면서 “해로의 경우 당시 중국 정부의 엄격한 통제 하에 진행돼 승려들의 유입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페르시아산으로 추정되는 ‘신라 유리병’의 존재와 관련 육로와 해로 유입 양측에 대한 다각적 연구 필요성도 말했다.
특히 그는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가 기원후 79년 화산폭발로 사라지고 남겨진 유적 그림에서 여인이 몸에 두른 천이 실크로드를 통한 중국 비단임을 최초로 확인했다.
또한 “실크로드는 부활이다”라고 표현한 일버 오르타일리 교수(터키 갈라타시라이대학)는 “터키박물관에는 중국 도자기 12000점 일본 도자기 900여점이 소장된 반면 한국 도자기는 전무하다”면서 “실크로드는 12∼13세기 터키의 국부가 증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실크로드 위의 인문학,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경주 호텔현대에서 10월28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지는 국제인문·문화축제는 교육부와 경상북도가 공동주최 한국연구재단(세계인문학포럼)의 주관으로 한·중·일·미국 터키 우즈베키스탄 등의 실크로드 전문가 100여명과 국내 대학 연구자 및 학생 1000여명이 참여했다.
사진1 경주시 호텔현대에서의 ‘실크로드 위의 인문학’ 국제인문·문화축제에서 미국의 원로불교학자 루이스 랭카스터 명예교수(UC버클리)가 10월29일 대순환로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2 기조강연에서 실크로드의 시점을 기원전으로 끌어올린 중국 린메이춘 교수(베이징대)가 10월28일 발표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실크로드의 기원을 말하고 있다.
사진3 ‘실크로드 위의 인문학’ 국제인문·문화축제에서 국내외 관계자들이 개막을 10월28일 축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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