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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현대 사회에 불교는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불교신문 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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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그루 작성일13-07-23 15:34 조회2,4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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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온 런던대 교수ㆍ황순일 동국대 교수 ‘대화’

세계적인 불교생명윤리학자 데이온 키온 영국 런던대 교수와 황순일 동국대 교수가 지난 10일 만나 ‘현대의학에 대한 불교적 생명윤리의 대답’이란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현대의학의 발전에 따라 발생하는 각종 윤리문제에 불교가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하는지 심도 깊은 의견이 오갔다. 동국대 인터내셔널 서머스쿨에서 ‘불교와 현대사회’란 주제로 강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데미언 키온 교수와 황순일 교수의 대화를 요약했다. <편집자>

황순일 교수 = 불교가 보편적인 진리로 거듭나기 위해선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불교 고유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에 불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키온 교수 = 현대인들이 각자 다른 종교와 입장에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에는 공동으로 부딪히고 있다. 불교와 현대사회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불교 역시 각각의 문제에 대답해야 한다. 환경 문제나 온난화가 대표적인 문제이다. 현대는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소비사회이다. 앞으로 미래 세대가 살아남을지 고민해야 할 정도이다. 과학의 발전이 혜택을 주지만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 원전이나 고령화 문제 등을 불교적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황순일 = 생명과학의 발전에 따라 줄기세포를 통한 생명복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생명과학은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생명을 실험의 대상화 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불교는 용인할 수 있는가.

키온 = 생명윤리의 한계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수정란을 이용한 연구자가 있었다. 수정란으로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것으로 불교의 윤회에 빗대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수정란은 가만히 두면 온전한 생명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으로 장기를 만드는 것은 살인으로, 불교에선 용납할 수 없다. 그렇다고 생명과학의 전체 영역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2007년 일본에서 오래된 체세포를 변형해 장기를 만드는 방법이 나왔는데, 이 정도는 불교 입장에서 용인할 수 있다.

황순일 = 날로 확장되는 식육문화는 동물학대, 비인도적인 동물 사육과 도축 등의 윤리문제를 불러온다. 식육문화에 대한 불교적 접근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키온 = 육식은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하다. 모든 사람이 육식을 하지 않으면 지구상에서 기아가 사라질 수 있다. 채식은 불살생계를 지키는 것으로 다른 생명을 괴롭히지 않으니 경제적, 신체적, 도덕적 측면에서 아주 좋은 수단이다. 채식을 위해 농사를 지을 때 쟁기질을 하면 땅 속에 있는 미생물이나 동물이 죽으니 육식과 차이가 없다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농사를 하면서 죽이는 것은 의도를 갖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황순일 = 세계적으로 뇌사나 안락사가 이슈화됐다. 불교에서는 어디까지를 죽음으로 볼 수 있는지와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위한 안락사를 어떻게 보는가?

키온 = 현대의학에서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확하게 판단 내릴 수 없다. 1980년대 장기이식이 활성화되면서 새로 나온 개념인 뇌사는 되돌릴 수 없는 뇌기능 정지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을 판단하는 것이 어렵고 상당한 문제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부처님이 열반하기 직전에 명상에 든 모습을 보고 숨을 거두었다는 제자가 있었다. 이 사실을 보면 불교인 자체도 사람이 진짜 죽었는지 아니면 명상에 들은 것인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
죽음은 한 번에 죽는 게 아니라, 과정으로 이뤄진다. 점차적으로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존엄사와 부끄러움을 혼동한다. 당당하게 살다 병이 들어 아프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을 존엄사로 착각한다. 인간의 존엄은 사회적 지위에서 오는 게 아니다. 누구나 불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사회에서 잘 나가든 안 나가든 아프든 그렇지 않든 다 불성이 있다. 존엄사는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안락사를 불교에서 허용한다고 생각하는데, 불교 율장에서 보면 아픈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나와 있다. 한 제자가 아주 아픈 사람에 대해 죽는 게 났다고 하자 부처님은 잘못됐다면서 그를 승단에서 축출했다. 기본적으로 태어날 때 수명대로 살아가는 것이 기본적인 불교 방식이다. (죽음으로 가는)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은 불교에서는 권장되지 않는다.

황순일 = 생명에 인위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가?

키온 =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기존의 삶을 단축시키는 것은 절대 안 된다. 두 번째는 병에 걸렸을 때 의학을 통한 것은 일종의 생명연장이지만 가능하다. 세 번째는 더 이상 건강하게 만들 수 없는데 억지로 살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황순일 = 경제는 발전하는 데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간다. 경제적 윤택이 삶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는지, 그리고 자살에 대해 불교는 어떤 설명을 해야 하는가.

키온 = 한국이나 일본의 젊은이들이 자살을 많이 한다. 너무 심각한 경쟁사회이고, 부모나 가족이 젊은이들에게 기대치가 너무 큰 것이 요인이다. 젊은이들이 살아있는 삶의 가치를 사회적 성공에 두고 그러지 못하면 가족이 침몰하는 듯한 강압적 분위기가 크다. 삶의 더 높은 가치를 둘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짧은 감각적인 기쁨에 도취해 있다. 불교적으로 보면 그것은 영원하지 않고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허상을 쫒아 다니고 있다. 그러다 자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알콜이나 마약에 빠진다.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개개인이 생활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쉽게 고쳐지겠는가.
2012년 존 거든(영국 케임브리지대)이 노벨상을 받았다.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기 위해 연구실을 찾았는데 한쪽 벽에 그의 고등학교 성적표가 붙어 있었다. 성적표에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존 거든을 평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너는 아주 멍청한 학생이고 공부도 못하고 시험도 못 치니 절대 과학자가 될 수 없다.” 이것만 봐도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똑같은 기준이나 규격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젊어서 못하다 늙어서 잘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반대의 삶도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근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부모들이 알아야 한다.

황순일 = 한국사회는 인문학의 위기이다. 영국과 유럽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키온 = 인문학의 위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유럽이나 영국도 마찬가지다. 한발 물러나 생각하면 과학이나 기술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최근에 경제가 점차 좋아지면서 인문학의 중요성이 조금씩 대두되고 있다. 한국은 아주 짧은 기간에 급속하게 경제적으로 발전했다. 그런 국가일수록 자신들의 과거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경우가 있다. 인문학이 한국과 같은 곳에서 무시되고 파괴되면 다시 돌릴 수 없다. 그렇기에, 불교학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동국대가 이를 잘 계승해야 한다.

황순일 = 인문학이 소홀한 것이 사회전반의 문제가 더 증폭되는 원인이 아닌가?

키온 = 그런 측면이 사실 많다. 과학이나 기술을 하는 사람들은 결과를 내놓는 게 중요하지, 인간적 도덕적 종교적인지 살피지 못한다. 인문학을 경시하는 풍조는 사회 경쟁이나 모든 사람들의 소비 형태를 일정 정도 증폭시킨다. 인문학적 각성을 통해 불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태도를 만들어 줘야 한다.

황순일 = 그런 상황에서 불교내지 한국불교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역할은 무엇인가?

키온 = 기본적으로 불교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행복의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기대치를 낮추면 행복해진다. 전체보다는 개개인을 바꿀 수 있는 토대를 한국불교가 만들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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