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토론회에는 안국선원장 수불스님이 발제자로 나섰으며, 한산사 용성선원장 월암스님과 김태완 무심선원장, 이제열 유마선원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신재호 기자
한국불교중흥을 위한 9월 대토론회가 지난 9월28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현대 명상문화와 한국 선의 과제’를 주제로 열린 이날 대토론회에는 3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안국선원장 수불스님은 “간화선 대중화와 세계화는 분명 가능하다”며 “출재가가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특별한 수행공간과 체계적인 연구를 위한 전문연구원을 양성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토론회에는 또 문경 한산사 용성선원장 월암스님, 김태완 무심선원장, 이제열 유마선원장이 토론자로 나서 한국 선의 과제를 살펴봤다.
다음은 수불스님의 발제문과 토론자의 발표문을 정리한 내용이다.
안국선원장 수불스님
현대 명상문화의 유행은 전 세계 보편적인 현상으로 이제 한국에서도 뚜렷한 사회 현상이다. 21세기 포스트모던 지식정보시대가 시작되자, 영성, 웰빙, 명상, 수행에 대한 관심이 확산됐다. 이는 한국불교중흥을 위한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최상승 수행법 간화선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간화선의 대중화와 세계화가 과연 가능한가?’ 분명히 가능하다. 지난 20년 간 250회가 넘는 간화선 집중수행을 통해 약 2만여 명의 재가자들의 수행을 지도하면서, 간화선이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간화선만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간화선이 공부인에게 만족할만한 감동과 이익을 주지 못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간화선에 대한 바른 이해와 수행을 위해서는 보다 정확한 선학적인 근거가 필요하며 동시에 이 바탕 위에서 화두 의심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타파할 수 있도록 안내해줘야 할 것이다.
이 시대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보편적 언어와 개념으로 간화선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수행풍토는 친절하지 못했다. 재가자는 선지식을 친견해 화두공부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혹시 화두공부를 한다고 해도 그 뒤의 자세한 지도와 점검은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간화선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근기를 통섭할 수 있는 특별한 수행지도법이 요청된다. 바쁜 재가자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시일 내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수행법을 대중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일상생활과 수행이 둘이 아님을 스스로 알고 시간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간화선은 조사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수행법의 원리는 동일하다. 수행자는 의심에 걸려야 하고, 그것이 점점 커져서 온몸에 꽉 차면, 시절인연 따라 타파되면서 돈오하게 되는 것이다. 화두는 공안에서 비롯된 의심이다.
공안이 어록이나 공안집에 기록되어 전해오는 1700여 깨달음의 기연들이라면, 화두는 선지식께서 공안을 통해 공부인으로 하여금 의심하도록 한 것을 말한다. 화두가 제대로 들려져서 의심이 일어나면 활구(活句)가 된다. 활구를 들고 공부를 지어간다면 온갖 역순경계를 만나도 더 이상 끄달리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연만 닿는다면 누구에게나 깨달음의 길은 열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올바른 선지식만 만나면, 이 공부의 반은 성취된 것과 다름없다. 간화선 수행의 승패는 전적으로 선지식의 지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간화선은 재가자들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수행법이다. 포교원이 2003년도에 2,000여 명의 신도에게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체계적으로 지도받고 싶은 수행법으로 참선이 59%로 가장 높은 관심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불자는 기도, 염불, 절 등에 밀려서 17%에 불과했다. 2010년 수도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7%로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종단으로서는 이러한 신도들의 높은 수행 욕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불교는 재가신도의 교육과 수행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이 문제는 현재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수행체계 정립과 간화선 수행프로그램 개발은 종단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과제다.
간화선과 화두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토대로 참의심을 불러일으켜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장치해야 할 것이다. 종단 차원에서 대중들이 간화선 수행만 전문으로 할 수 있는 특별한 수행공간을 마련하고, 간화선 지도자 양성과 대중화를 위한 체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전문 연구원을 더 많이 키워내야 한다.
우리 조계종단의 수행체계가 보다 완벽하게 구비될 때, 한국불교 세계화의 실현 가능성도 한층 높아질 것이며, 전 세계인에게 간화선 수행을 통한 정신적 이익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대중들이 박수를 치며 공감하는 모습. 신재호 기자 |
문경 한산사 용성선원장 월암스님
간화선 수행의 현실 진단과 개선방향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첫 번째는 간화정신의 확립, 두 번째는 간화선 실천이다. 먼저 간화정신의 확립을 위해서는 첫 번째 중도정관의 확립이 중요하다.
이것은 간화선 수행뿐만 아니라 어떤 수행법이라도 정법안장에 대한 확고부동안 불법의 대의를 파악하고 그 정견을 확립해야 만이 실천적인 수행이 가능하다.
특히 간화선 수행은 조사선의 뿌리를 둔 입장이기 때문에, 또 조사선은 대승불교의 뜻을 두고 있고 이 또한 초기불교에 근간하기 때문에 전 불교를 아우르는 중도정관을 확립해야만 수행을 할 수 있다. 이런 토대가 없으면 비불교적인 수행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윤리적인 긴장이 수반돼야 만이 가능하다. 계정혜 삼학을 함께 권수하며 수행해야 한다. 계율의 문제는 따로 있고 선정을 닦는 것은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청정한 계율을 바탕으로 계정혜 삼학을 닦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불교인과법에 철저해야 한다. 견성성불 요익중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수행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선종이 교외별전이고 불립문자라면 종지에 들어난 겉으로 모습이나 경전, 교학문제 소홀히 하면 선이 무지선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보조선사께서 말씀하신 것에 기반을 두고, 선교겸수 선교일치적인 입장에서 말과 마음이 달라진다면 이것은 정신이상자가 된다.
철저한 발심과 화두 결택이 필요하다. 철저한 발심이 수반되지 않으면 화두를 든다는 게 쉽지 않다. 중생을 바꿔 부처로 나가는 게 쉬울 수 없다. 공안 상에서 화두를 결택하는 간화선 수행은 발심이 깊으면 깊을수록 수행이 반 이상 돼 나간다.
철저한 발심이 수반돼야 한다. 발심하는 계기를 마련해줘야 한다. 일반 대중에게 발심의 계기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런 구체적인 방법이 부재하다. 화두결택에 있어서는 이 공안 상의 일구를 가져와서 화두참구하지만, 아무리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고 역대 조사의 공안이라고 하더라도, 내 자신이 실존적인 문제에서 의심가지 않으면 화두로서 생명이 없다.
나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으면, 화두로서 성립되지 않는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과연 우주와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존재의 실상에 대한 문제, 실존적인 의심으로 다가와야만 화두가 될 수 있다. 지금처럼 “화두주세요” 하면 “이뭣고 해봐라”는 식은 처음 토대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화두결택이 중요하다.
선지식의 지도도 중요하다. 1:1 맞춤교육이 간화선이다. 조실, 방장스님이 선당에 나가 직접적인 지도를 한다. 그리고 입실문신을 해서 수행자와 선지식의 대화통로가 이어져 있다. 그게 선문답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건 1600년 전 이야기다. 오늘 우리들이랑 무슨 상관이냐. 이 시대 살아 있고 이 시대 대중에게 핵심적인 문제로 나가올 수 있는 간화선 되려면 오늘날 간화선이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스님들의 철저한 지도가 필요하다.
조계종의 체제, 포교원장 스님의 포교원칙도 간화선이면 간화선, 조사선이면 조사선에서 방향이 정해져 전 행정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선풍을 진작할 수 있다.
또 선원마다 특성화가 이뤄져야 한다. 현재 선원들은 천편일률적이다. 좌선형식주의에 빠져서는 간화선 특유의 활발발한 특성을 살릴 수 없다. 대중화 세계화도 어렵다. 몇몇 수행 전문가만이 간화선을 한다면 세계화, 대중화 될 수 없다. 이 시대 언어로 세계인에게 먹힐 수 있는 간화수행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실질적인 선지식의 역할이 제고돼야 한다. 어른 스님들에게 죄송하지만, 실질적인 수행 현장에서 지도가 가능해야 한다. 간화선 대중화와 수행화는 요원하다.
김태완 무심선원장
첫 번째 어떻게 보다 많은 대중에게 선 공부를 시킬 것인가, 즉 선의 주변 확대 문제이다. 이는 선을 중심에 둔 조계종 종지에 충실한 교육만 제대로 되면 가능하리라 본다. 현재 조계종 교육을 보면, 선이 기초교육 속에 포함되지만, 선을 위주로 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대한 제 의견은, 조계종에 소속된 출재가 수행자들은 종지에 따라 선을 공부하고 견성성불하는 걸 목표로 삼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두 번째는 출재가 어록과 전등록을 읽어 선에 대한 기초 소양을 갖도록 해야 한다.
저변확대는 보다 많은 사람이 선에 대해 관심 갖는 것인데, 조계종 내 출재가의 기본교육과정에 선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효과적인 선체험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도하는 선지식의 안목과 지도력이 중요하다. 수행자가 깨달음을 효과적으로 얻는 데는 지도하는 선지식의 역할이 가장 크다. 안목과 능력갖춘 선지식 믿고 따른다면 어렵지 않게 선에 입문할 수 있다.
또 선은 달마스님이 전해주고 육조문하에서 전해지는 조사선, 간화선이라고 얘기하는 데 조사선과 간화선 속에서 공부를 해 깨달음에 우리가 이른다고 하면, 이런 체험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조건에서 일어나는 지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선체험이라는 것은 금강봉, 율극봉, 의단, 은산철벽이라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벽에 부딪혔다가 시절인연에 도래하면 한 순간에 체험이 온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야 잘못된 공부 쪽으로 빠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기본교육과정에서 선어록이나 전등록을 보면, 조사선이나 간화선사들이 어떻게 깨닫게 됐는지 인연 얘기가 많다. 앞뒤가 꽉 막혀 있다가 한마디 말끝에, 방이나 할 끝에 문득 소식을 보는 얘기들이 나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선어록, 전등록 읽는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선체험 뒤에 법안을 갖추는 공부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교와 선을 나눠보듯이, 선의 생명은 체험이다. 교는 많은 문자를 통해 이치를 이해할 수 있지만, 선은 체험이 없으면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체험이고, 그 체험을 우리가 어떻게 얻느냐가 중요한 일이다.
이런 점도 있다. 불교를 공부하지 않고, 우리가 사회에서 명상이나 마음 쪽에 관심 있어서 책도 보고 말씀도 들으면서 체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보면, 일부에서는 선체험과 동일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체험만 가지고 불교의 선과 여타 다른 불교와 관계없이 체험을 얻은 사람과 명확하지 않다.
불법과 명상, 차별은 선체험 뒤의 공부에 있다. 선체험 뒤 우리가 경전을 보거나 공안을 보거나 조사의 어록을 보면서 법성을 보는 눈을 갖춘다.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불교의 가장 큰 장점은 체험 뒤의 공부를 아주 안내를 잘한다. 명상에서는 체험 뒤의 공부가 철두철미하지 않다.
선체험 뒤에 법안을 갖추는 공부를 해야 한다. 선지식의 지도가 필요하고 스스로 경전이나 조사어록을 보면서 자기 부족한 부분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스로가 뭐가 부족한 지는 제일 잘 안다. 육체의 병도 마찬가지다. 상처가 100% 낫지 않으면 불쾌하다.
그런 것처럼 마음공부도 마찬가지다. 스스로가 알 수 있다. 잘 모른다고 해도 경전이나 조사어록을 보면, 납득 안가는 부분에서 한계를 느낀다. 자신이 만족스러워질 때 법을 보는 눈을 갖춘다.
경전과 어록에 있는 모든 언어는 방편의 언어다. 약 그 자체는 건강하고 실질적으로 관계가 없다. 방편의 언어에 사로잡혀 견해를 갖거나 개념을 내세우거나 하는 것이 가장 큰 장애다. 체험 뒤 가장 큰 장애는 견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방편의 언어에 집착하지 않는 공부가 돼야 비로소 명상과 불교의 차이가 생기지 않을까.
이제열 유마선원장
수많은 선지식들이 대중법회를 통해 간화선의 위대함을 말하고 간화선을 통해 중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과 지도법을 말씀하셨는데, 그게 수불스님의 지도방법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간화선 대중화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간화선을 어떻게 대중화시킬 것이냐는 과제보다 선행돼야 할 문제가, 세계뿐만 아니라 한국 안에서 명상문화에 대한 종단적 고찰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실제 있어서는 불교보다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연구 결과는 대단히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모 단체가 20년 전에 해인사 대중선방을 방문했는데, 40 여명이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한 명상수행단체가 해인사 뒤에서 엄청나게 큰 규모로 명상센터를 구축하고 사람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 산속에 400~500 명이 인산인해를 이룰 때 1600년 동안 한국의 정신적 모체가 되던 불교의 위대성은 어디가고, 법보종찰 해인사 뒷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 종단에서 먼저 심각하게 연구하고, 그 뒤 어떻게 정법을 선양하고, 거기에서 간화선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며 간화선을 갖고 부처님 정법을 드날릴 수 있고, 영성에 목말라 있고,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만 비례해서 고통 받고 있는 인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시켜줄 수 있는지 방향이 바꿔져야 한다.
간화선이 위대하다고 하지만, 과연 간화선은 위대한가. 그건 간화선 안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간화선 안에서는 간화선 밖에 모른다. 그것을 냉철하게, 한국불교 간화선을 둘러싸고 불교에서 설해지고 있는, 행해지고 있는 수행방편에 대해 객관적인 검증이 있어야 한다.
큰 스님의 고명을 거론해 죄송하지만, 해운정사 조실인 진제스님을 20년 전에 뵙고 여쭤봤다. 요즘 남방에서 들어오는 위빠사나 수행이 부처님께서 직접 실천한 수행이라고 해서 최고의 길이라고 한다. 큰 스님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쭸더니, 그 수행은 소승이기 때문에 확철대오 못한다, 그것은 소승이라 아라한 밖에 못된다며 화두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 뒤로 미얀마에 있는 우쟈나카라는 선사를 모시고 법문을 들었다. 한국의 간화선을 어떻데 생각하냐고 물었는데, 내가 직접적으로 수행하고 실천해보지 않아 뭐라 말할 수 없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설하셨고 나는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직선 면에서는 우쟈나카 선사 대답이 더 타당하다고 봤다.
수불스님은 일반수행을 하위 개념으로 두고 간화선을 상위개념으로 뒀다. 그런데 이런 시각이 과연 올바른가. 그런데 이것은 수불스님 뿐만 아니라 간화선 수좌들이 일반적인 시각일 수 있다. 여타수행법이 과연 간화선만 못한 경지에 이르는 수행법인가. 이는 검증된 사실이 아니다.
이를 대중화시킨다면, 티베트 남방불교, 일본의 갖가지 등 불교 안에서 다른 수행법들이 우리들이야 말로 완벽하고 경지가 부처님 깨달음에 들어간다고 하면, 무엇으로서 제압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객관적 비판을 하지 않았다. 정확한 검증이 종단 자체에서 이뤄져야 한다. 객관적으로 인정할만하다는 검증시스템이 도입되고, 간화선 대중화와 세계화의 모체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