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수불스님, 제3회 외국인수행자포럼서 ‘간화선’ 주제로 강연(불교신문 1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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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11-09-05 17:07 조회2,463회 댓글0건페이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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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5일 공주 전통불교문화원에서 열린 제3회 외국인 수행자 포럼에서 안국선원장 수불스님이 간화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나는 스님을 봅니다. (관미스님)
이 순간 꿈속에 살고 있는 것을 깨쳤다면 진실은 무엇입니까. (관미스님)
나도 모릅니다. 진실을 아는 사람은 또 누구입니까. (수불스님)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보고 듣고 만질 수 있습니다. (관미스님)
그래서 그것을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문제를 하나 내 보겠습니다. (수불스님)
폴란드에서 온 비구니 관미스님과 수불스님과의 문답이다. 오늘(8월25일) 공주 전통불교문화원에서 열린 제3회 외국인 수행자 포럼에서 외국인 스님들은 안국선원장 수불스님(불교신문 사장)과 수행에 대해 허물없이 질문을 주고받으며 간화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나갔다.
듣고만 있던 스님들도 여기저기서 질문을 하자 하나 둘 궁금증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통역은 미국 뉴햄프셔대학 교수인 혜민스님이 맡아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 냈다.
이날 스님은 약 두 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간화선’을 설명하기 보다는 외국인 스님들이 궁금해 하는 점들을 듣고 그 자리에서 답을 해 현장 분위기를 뜨겁게 했다. 간화선을 접해 보지 못한 스님들을 배려한 것이다.
관미스님. |
“거울에 내가 비쳐져 있다. 거울에 비쳐진 것은 내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있다고 했다. 무엇이 ‘나’일까. 우리는 그것을 알기 위해 이론적으로 실제적으로 노력해 왔다. 보고 듣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을 마음이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이 한다고 하는 순간 어리석어 진다. 부처님 가르침은 대자대비하다. 모든 강물을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불법은 무자비하다. 진리 이외에는 용납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진리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까. 그것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르겐 라마스님. |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 때 운문스님은 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나 사방으로 일곱 걸음 걷고 한손은 허공, 한손은 땅을 가르쳤다는 것에 대해 ‘나 같으면 때려 죽여 개한테 던져줬을 거다’라고 말했다. 불법을 옹호하는 것인가요, 천벌 받을 소리인가요. 우리는 부처님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하지만 맹신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사람을 위한 사다리나 징검다리를 치워서도 안 된다.”
정오스님. |
“(손가락을 움직이며)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마음이 하는 것도 내가 하는 것도 손가락이 하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은 깨닫고 난 뒤 억지로 갖다 붙인 이름을 마음이라고 했다. (주먹을 쥐고) 이렇게 하다가 (펴다) 죽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하는 것일까. 그것을 모를 뿐이다. 답을 찾으려고 애를 써야 한다. 문제를 외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문제를 한 번 듣고 바로 답을 찾던지 아니면 답을 찾으려고 의심을 해라.”
이어 수불스님은 허심탄회하게 출가동기와 수행 이야기를 들려줘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미 언어와 문화 차이는 장벽이 될 수 없었다.
“출가하는 순간 우리 집에 가는 것 같았고, 스승을 만난 순간에도 그 선지식이 나의 인연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다. 당시 어렸고 그분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위치가 아니어서 마음속으로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에 대한 의심을 7개월 동안 생명을 걸고 한 적이 있다. 그때 큰스님을 만나 문답하고 어떤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시원하고 통쾌했다. 하지만 망상은 더 많이 일어났다. 그것을 없애기 위해 4개월 동안 만행을 떠났다. 그냥 내버려 뒀다. 그때 심정은 마치 나비가 막 허물을 벗고 처음 비행할 때의 설래임이라고 할까. 그때의 즐거움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외국인 스님들에게 ‘화두’를 주고 지속적으로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종교의 역사는 오래지 않다. 인류의 역사에 비해 짧다. 이 짧은 종교의 역사가 인류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정식 진리를 자각할 수 가르침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신화나 주술, 자연숭배 등 모양이 다른 것들이 횡횡했다. 바른 눈을 뜰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하는 가르침이 세상에 등장하고부터는 인류 삶의 질이 엄청나게 바뀌었다.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바뀔 것 같다. 그 속에서 우리 승려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까요. 그것이 오늘의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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