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아이들 절망보다 더 슬픈 건 없죠” 로터스월드 이사장 성관 스님...법보신문 10/07/05
페이지 정보
작성자관리자 작성일10-07-07 15:37 조회2,769회 댓글0건페이지주소
관련링크
본문
지금까지 가장 보람된 일은 BWC 아동센터 개원이라고 말하는 성관 스님은 “언젠가 이곳의 아이들이 캄보디아를 위해 또 인류를 위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환히 웃었다
1996년 성지순례 계기
굶는 아이들 돕기 발원
2006년 앙코르 인근
BWC 아동센터 건립해
스님은 바람을 닮아 있었다. 찌는 폭염 아래에서도 미소는 잡티 하나 없이 맑았다. 학교에서 차례차례 돌아오는 교복차림의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귀여움. 이를 지켜보던 스님의 미소가 조금씩 입가에 번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조롱박처럼 주렁주렁 걸린다. 더운 열기 속에 시원한 가을바람의 상쾌함이 살랑인다.
3만6000㎡(1만 2000평)의 넓은 터에 푸른 잔디밭 운동장과 교실, 숙소, 식당, 화장실과 샤워실, 호수 옆으로 들어선 자원봉사자 게스트 하우스. 세계문화유산 앙코르와트 길목에 위치한 BWC(Beautiful World of Cambodia, 아름다운 세상 캄보디아) 아동센터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로터스월드 이사장 성관 스님은 이곳에서 5년째 부모가 없거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 76명을 데려와 달콤한 꿈을 선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 일 중에 가장 보람된 일을 꼽으라면 단연 캄보디아에 BWC 아동센터를 개원한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흙바닥에서 배를 곯았던 아이들이 걱정 없이 무럭무럭 크는 모습을 보면 자다가도 절로 웃음이 나지요. 부처님의 시은을 조금은 갚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BWC 아동센터가 아니더라도 성관 스님은 한국에서 이미 포교와 복지 분야에서 향기로운 많은 업적을 남기고 있다. 24년 전 조그만 포교당이었던 수원사는 스님의 주지 부임 이후 1000평 규모의 문화회관을 갖춘 수원 대표 사찰로 성장했고, 수원 서호노인복지관을 비롯해, 국내 최대 규모인 영통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위기에 몰린 청주종합사회복지관을 불과 2~3년 만에 지역을 대표하는 복지관으로 키워냈다.
특히 청주복지관의 성공신화는 스님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준 한편의 드라마였다. 홍보지 10만장을 뿌리고 작은 전셋집을 얻어 불(佛)자 하나를 걸고 교리강좌를 열었는데, 매주 빠지지 않고 강의하는 스님의 열정에 신도는 7명에서 50명, 100명으로 늘었고, 덕분에 복지관이 활기를 찾은 것은 물론 무심천변에 청수사란 절이 들어서는 놀라운 업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스님의 마음은 항상 캄보디아를 향해 있었다. 1996년 세계문화유산 ‘앙코르와트’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처참한 삶이 옹이처럼 가슴 한편에 박혀 때때로 시큰거렸기 때문이다.
“1996년 도반들과 함께 ‘앙코르와트’를 보고 돌아서는데 처참한 몰골의 아이들이 ‘원 달러’를 외치며 달려들었습니다. 기어오는 애들도 있고, 신체 일부가 없는 애들도 있었지요.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다짐했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이 아이들을 위해 삶을 회향하겠다고.”
그로부터 7년, 시절인연은 우연히 도래했다. 남양주 지역 중소기업인 20~30명과 함께 캄보디아 현지를 방문, 정치인과 군 장성들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됐다. 그 인연으로 최신형 컴퓨터 120대를 보냈는데, 이것이 현지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덕분에 캄보디아 부총리를 만날 수 있었다. 스님은 그 자리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다”며 “아이들을 위한 구호 사업을 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불자였던 부총리는 스님의 간곡한 뜻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후 BWC 아동센터 설립의 든든한 힘이 돼 주었다.
그러나 센터가 설립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신산(辛酸)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호 사업에 대한 캄보디아 정부의 허락은 받아냈지만 센터 설립을 위한 부지 마련이 쉽지 않았다. 적합한 땅도 없을 뿐더러 마음에 드는 땅을 만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그러나 이것이 또한 희유한 가피의 시작이었다. 부지를 찾지 못해 실의에 빠져 있던 어느 날 독실한 불자였던 한국 대사가 씨엠립 주지사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리고 한줄기 빛처럼 왕코르와트 가는 길목에 유일한 중앙정부의 땅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것도 시내에서 가까운 그야말로 최적의 장소였다.
스님은 캄보디아 정부 설득에 나섰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외국 NGO단체에 땅을 무상으로 임대해 줄 리 만무한데다 소유도 여러 부서로 나눠져 있었다. 설득에 설득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인욕의 시간이 시나브로 흐르고 마침내 2004년 캄보디아와 한국 정부를 대표해 캄보디아 부총리와 한국 대사가 서명한 국가 간 계약 형식의 MOU가 체결됐다. 3만6000㎡의 부지를 확보한 것이다. 30년을 쓰고 20년을 연장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희유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MOU를 체결한 이듬해 바로 공사가 시작됐다. 느려도 바르게 하려는 생각으로 한국의 전문 건축가와 설계사를 초빙해 현지 건설사와 함께 일을 진행했다. 캄보디아 전통은 살리되 튼튼하고 더위에 강한 최적의 건축물을 짓고 싶었다.
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기술자를 데려 온 것이 현지의 건설회사와 마찰을 일으켰다. 특히 레미콘이 들어오던 날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기계에 맡긴다며 공사 현장을 막고 인부들이 시위를 했다. 차가 부서지는 테러가 일어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빈민가 어린이 76명 선발
최상의 교육서비스 제공
지역주민 구호활동도 전개
이젠 화장실 설립 나설 때
성관 스님과 BWC 아동센터 학생들. |
스님은 현장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설득했다. 우리의 중동 건설 경험도 이야기했다.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의 설계·감리회사의 감독 아래 수차례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과정을 겪으며 오늘날 한국이 건설강국이 될 수 있었다며 한국의 전문가들과 일하는 것을 좋은 경험으로, 선진 기술을 축적하는 기회로 삼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현지인들도 조금씩 가슴을 열기 시작했다. 언어의 장벽도, 문화의 간격도 진실과 열정 앞에 빗장이 조금씩 헐거워졌다. 결국 논과 밭, 풀로 우거졌던 허허벌판에 예쁘장한 건물이 마술처럼 하나씩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2006년 11월, 그림처럼 아름다운 삶의 공간이 완성됐다.
“센터가 완공되던 날, 96년 이후 매일 송곳처럼 양심을 건드리던 아이들의 그 간절한 눈빛의 가시가 비로소 걷히는 듯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피구나. 그저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지요.”
보금자리가 마련되자 센터 주변의 부모 없는 아이들을 선발했다. 부모가 없다기보다 방치된 아이들이었다. 스님은 단순한 구호가 아닌,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 기둥으로 길러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캄보디아의 빈민가를 돌며 가난하지만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들을 추천받아 데려왔다. 그렇게 76명이 아이들이 센터에 들어왔다.
최적의 환경에서 최상의 숙소와 환경, 양질의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도 아이들에게 드리운 암울한 과거의 그림자는 쉽게 걷히지 않았다. 워낙에 못 먹었던 애들이라 고기 중심의 식단을 짜도 툭하면 병에 걸렸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들어가는 병원비가 운영비를 능가할 지경이었다. 스님은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국에서 종합 비타민제를 대량으로 구입해 먹였다. 그렇게 1년,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병에 걸려 골골대던 아이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골격도 또래 캄보디아 애들에 비해 몰라보게 커졌다.
아이들은 센터 인근의 학교에 다니고 있다. 모두들 상위 그룹에 속해있다. 전교 1등하는 아이들도 여럿이다. 위생적인 숙소와 강의실, 다양한 문화 공간과 넓은 운동장, 그리고 스님의 사랑이 키워낸 결실이다. 그렇지만 매일 양치질을 시키고 세수를 하고 목욕을 시키는 과정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씻는 것 자체를 해보지 않은 아이들은 이 일을 무척이나 힘들어 했다. 씻지 않은 손으로 직접 밥을 떠먹는 것도 예사였다. 덕분에 수저와 젓가락 사용을 가르치는 것 또한 인욕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등교한 아이들은 방과 후 센터에서 영어, 한글, 컴퓨터, 수학, 미술, 음악, 태권도 등 한 차원 높은 수업을 받고 있다. 선생님들 또한 일반 선생님들의 10배 가량 많은 월급을 주고 모신 캄보디아 최고의 선생님들. 홍익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선생님을 비롯해 입소문을 듣고 센터를 찾아 자원봉사 형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국 선생님들도 이곳의 자랑이다.
“방학 때 집에 가는 아이들이 가끔 있는데 며칠 있지를 못해요. 생활수준이 달라져 함께 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집에 다녀오고 나면 아이들이 생각이 많아 달라져 있어요. 크면 스님처럼 이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제법 여문 말을 하는 아이들도 있지요.”
BWC 아동센터는 아이들 뿐 아니라 지역민들을 위한 다양한 구호 활동도 벌이고 있다.
매년 3차례에 걸쳐 논산 건양대학교와 서울 김 안과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데 1년에 대략 3000~5000여명의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특히 백내장 수술만도 250여건에 이른다. 이런 까닭에 김 안과에서 의료봉사를 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멀리 수도 프롬펜에서까지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센터 내에 수술을 위한 무균실을 따로 마련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또 경희대 불자회 소속 의료진의 수고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장에서의 의료봉사는 물론 중증환자의 경우 한국으로 데려와 직접 치료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대략 6명 정도의 중증환자들이 한국에서의 수술과 치료로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감동적인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32세의 가정주부가 암에 걸려 수술과 함께 항암치료를 위해 6개월간 한국에 보냈는데 정작 해당 가족들이 부인을 돌려 달라고 항의하는 바람에 한참을 피해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치료받다 죽은 것 아닌가 오해를 했던 것이지요.”
센터의 활동이 지역 주민의 자랑으로, 또 교민들의 자랑으로 입소문을 타자, 한국에서도 대학생, 기업, 공무원 등 다양한 계층에서 자원봉사를 자청하며 센터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센터의 활동이 커지는 만큼 유혹도 적지 않다.
캄보디아의 한국인 가이드들을 중심으로 관광 일정에 센터를 포함시키는 대신 일정 부분의 대가를 요구하는 문의들이 쇄도하고 있는 것. 그러나 스님은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있다. NGO단체가 도덕성을 잃어버리면 구호 대상이 돈벌이로 전락하기 쉽다는 생각 때문이다.
5년 전 센터에 처음 들어왔던 아이들이 이제 중학생이 됐다. 수학여행을 겸해서 수도 프롬펜과 아이들이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바다를 데리고 갔다. 넓은 세상을 보고 온 아이들의 눈빛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누구보다 공부를 열심 하는 것은 물론이다. 아이들은 가끔씩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때마다 스님은 약속한다. “만약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한국에 있는 대학에 보내주겠다고.”
스님은 캄보디아 모국어는 물론 영어와 한글을 익혀 세계무대에 우뚝 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앞으로 20~30년 세월이 흐르면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이 나라의 큰 일꾼이 될 겁니다. 공무원도 있을 것이고, 기업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며, 아마도 고향에서 BWC 아동센터와 같은 것을 운영하는 아이들도 여럿 될 겁니다. 그때쯤 제가 애들을 찾아가면 우리 할아버지 오셨다고 반기게 되겠지요. 그날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절절해지지요.”
스님은 앞으로 「법보신문」과 함께 매달 인근 학교에 화장실과 우물을 만들어 줄 계획이다. 화장실이 없어 노천에서 뒤처리를 하는 바람에 말라리아와 설사 같은 수인성 전염병으로 아프거나 생마저 놓아버리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두고 보자니 가슴이 아파 스님이 먼저 죽을 것만 같다.
씨엠립=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성관 스님은
1972년 용주사에서 사미계를, 1976년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했다. 동국대 승가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교육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조계종 총무원 문화사회부장을 시작으로 호법부장, 총무부장, 중앙종회의원 등 종단 소임을 두루 거쳤다. 현재 수원사 주지, 로터스월드 이사장, 동국대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로터스월드 BWC 아동센터가 일군 성과 | |
1만명 치료…캄보디아 희망 76명 육성
기사등록일 [2010년 07월 05일 13:25 월요일] | |
|
댓글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