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불서 영역 전문가 충남대 박영의 명예교수...법보신문 10.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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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10-05-07 18:23 조회3,370회 댓글0건페이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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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왔다. 지난 밤 눈을 붙인 이후 3시간 남짓 흘렀을까. 하지만 전혀 피로하지 않았다. 짧은 잠이 오히려 개운했다. 멀지 않은 곳의 작은 암자를 찾았다. 흰머리가 아침 햇살에 반짝거렸다. 체구는 자그마했지만 가지런히 모은 두 손에는 강단이 느껴졌다. 그는 불전 앞에 온 몸을 낮추었다. 마치 청수 공양을 올리는 어린 동자처럼.
혼자만의 예불을 올리고 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오전 9시. 자료가 수북한 책상에 앉았다. 낡은 영문 서적에도 붉은 색, 푸른 색 첨가 글이 깨알 같이 덧붙여져 있다.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 이 시각부터 앉으면 언제 일어설지 모를 일이다.
대전 충남대 영문과 박영의(79, 효산) 명예교수. 그는 팔순을 바라보는 노장의 나이에도 한국 불서를 영문화 하는데 진력하고 있는 불서 영역 전문가다. 그의 이름이 낯설다면 대한불교조계종에서 발간한 『경허집』을 영역한 장본인이 바로 그라는 사실을 미리 밝혀 둔다. 어렵기로 소문난 『경허집』이 영문판으로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의 공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계종 ‘경허집’ 영역 장본인
조계종에서 진행한 전통사찰 총서 영역 작업의 담당자 중 유일한 한국인 또한 박 교수다. 그가 맡은 분야는 역대 고승 26명의 선시를 영어로 옮긴 일. 쉽지 않은 작업이라 웬만한 영어 전문가도 선뜻 손을 대지 못했던 일이 그에게는 망설임 없는 실천이었다. 청화 스님의 법문집
『The Most Joyful Study』도 그의 주요 영역 작품 중 한 권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불서 영역을 하는 틈틈이 작업했던 『(가칭)실용 한-영 불교용어 사전』을 올해 중 완간할 예정이다. 총 4300개 단어에 대한 한문과 한글, 영어 해설이 포함된 이 책의 분량은 천 페이지가 넘을 만큼 방대하다. 6년에 이르는 그의 노고가 고스란히 집약될 작업이다. 물론 한영 불교사전은 기존에 나와 있는 책도 있고 현재 다른 전문인들이 편찬 중인 책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가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붙인 책의 부제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사전’이다. 그가 국제포교사회 부산울산경남지부에서 마련한 특강을 위해 부산 홍법사를 찾았을 때 역시 사전의 교정본을 들고 있었다.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일은 불교를 모르는 외국인들이 쉽게 한국 불교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단어를 다시 어렵게 설명한들 전문가들만의 언어로 그치기 쉬워요. 불교학자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전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전을 만들고 싶었어요. 단어 하나까지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해될 수 있는 표현들을 고민하고 찾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만든 사전에는 노자, 장자는 물론 셰익스피어까지 등장한다. 그 위인들은 외국인에게 부처님보다 더 편안하게 느껴지며 동시에 불교와 서양을 이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렇게 경허집 영역부터 한-영 불교사전 만들기까지 원력에 원력을 더하는 그의 한국 불교에 대한 애정은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어릴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평생 영어를 업으로 삼을 만큼 영어는 자신 있지요. 하지만 불교는 몰랐어요. 집안은 독실한 개신교였고요. 그런데 20년 전, 우연히 ‘선불교를 세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일본의 유명한 선사 스즈키 다이세즈께서 중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셨단 얘기를 들었어요. 그 말에 자극을 받아 한국불교 세계화에 앞장서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역대 고승 26명 선시도 옮겨
박영의 교수가 영역한 불서와 올해 발간할 불교사전 교정본. |
그는 그날부터 한국불교를 영어로 옮긴 글들을 모조리 찾아 읽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종류도 거의 없는데다 옮겨진 책들마저 그의 눈에는 허점이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영어는 전문가일지언정 불교에 대해서 까막눈에 가까웠던 그는 자신이 이런저런 얘기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에 영어 오기들이 자꾸 어른거렸다. 안타까움으로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30년 동안의 대학교수 생활, 퇴직을 앞둔 시기에 그는 결심했다. 한국불교를 정확히 영어로 옮겨 세계에 알리겠다고 말이다.
그는 불교 공부부터 시작했다. 손에 잡히는 불서는 다 읽었다. 특히 부처님의 설산 고행, 스님들의 용맹정진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지난날 영어 하나를 위해 미국에서 외롭고 가난하게 공부를 했던 유학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샌드위치 하나로 하루를 견디며 혹독하게 자신을 연마했던 시간들. 군대 시절도 떠올랐다. 주한미군의 변호 통역을 담당한 그는 군사재판만 셀 수 없이 참여했다. 한 찰나도 놓칠 수 없는 법정에서 영어를 알아듣고 구사하기 위해 그의 모든 세포는 긴장을 멈추지 못했었다. 물론 그 시간 덕분에 음성학, 영문학에서 국내 최고의 실력을 자부하게 됐지만 무엇인가 허전했던 삶. 그에게 붓다의 가르침은 그 시간들을 쓰다듬는 자비의 손길이 됐다. 스님들의 일화와 법어는 접하면 접할수록 더 깊은 불자의 길로 안내했다.
지난 2006년 가을, 조계종 포교원 담당자로부터 간절한 부탁이 들어왔다.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인 『경허집』영역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경허 스님의 법문과 선시 255편을 모은 경허집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탓에 스님들도 쉽게 손을 대지 못한 채 3년이 흘렀다는 내용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4개월에 불과했다.
“거절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었어요. 책을 받은 그날부터 눈만 뜨면 책상에 앉고 잠들기 전까지 붙들었습니다. 그렇게 법문과 선시, 두 권으로 영역을 끝내고 나니 딱 3개월하고 2주가 걸렸더군요.”
쉬운 한-영 불교사전 발간이 목표
『경허집』번역으로 그는 자신감을 얻었다. 청화 스님의 법어와 반야심경, 금강경 등 경전류, 발심수행장, 수심결, 선가귀감, 신심명 등 불교의 가르침이 담긴 주요 글도 차근차근 영역하며 『마음찾기』 시리즈를 발간해 나갔다.
“365일 영역 풀가동”이라는 그의 표현처럼 한 시도 쉬지 않고 영어 법륜을 굴린 그. 환갑이 지나면 한 시간에 책 한 권 읽기 어렵다는 말은 그에게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았다. 그렇게 5년을 보냈다.
“이번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20권의 불서를 영역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제 13권정도 마무리 됐어요. 앞으로는 호국불교의 실천가이신 서산대사, 사명대사의 글을 영어로 옮길 겁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스님들의 주옥같은 게송을 영어로 읽으며 환희심을 느끼는 모습을 상상하면 쉴 틈이 없습니다. 이것이 한국불자의 긍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진정한 궁사들은 ‘내가 과녁을 맞췄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 ‘과녁이 나의 화살을 받아 주었다’고 말한다. 박영의 교수. 누군가는 그가 평생 영어를 공부했기 때문에 불서 영역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불교라는 바다가 평생 영어라는 화두를 쥐고 흘러 온 ‘박영의’라는 강줄기를 받아 준 것이라고.
부산=주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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