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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계룡산 무상사 동안거 해제 현장 ...불교신문 10.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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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10-02-25 18:13 조회3,5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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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무상사 국제선원에선 이번 동안거 11명의 스님을 포함해 80여명의 불자들이 정진했다.

 

 3개월간 닫혀있던 선방의 빗장이 풀렸다. 동안거 해제를 사흘 앞둔 2월25일 계룡산 무상사를 찾았다. 해외포교 선구자 숭산스님의 외국인 제자들이 머무는 절이다. 외국인 수행자 교과안거 때 간혹 들렀다. 결제든 해제든 산사의 풍광은 변함이 없다. 어제 울던 새가 오늘 운다. 목마르고 애타는 건 언제나 마음이다. 비가 내렸다. 마음에 내리는 비가 몸을 적실 순 없는데, 아프긴 더 아프다.  

  2000년 3월 창건된 무상사는 그해 하안거부터 납자들을 받았다. 올해 동안거엔 11명의 스님이 방부를 들였다. 70명 가까운 재가불자들이 함께 정진한다는 점이 이채롭다. 미국과 독일, 러시아에서 벨로루시와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까지. 인종시장을 떠올릴 만큼 다양한 국적이다. 얼굴을 맞댔거나 혹은 한두 다리 건너, 숭산스님에게서 감화를 받아 이역만리 한국으로 출가한 사람들이다. 입적한 지 6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선연한 스님의 위광을 실감했다.

  안거 중 일상은 여느 선원과 비슷하다. 좌선(坐禪)과 행선(行禪)의 반복. 각자의 소임을 정한 용상방도 적어 걸어뒀다. 다만 성도재일에는 밤을 새운다. 국제선원이란 특성에 걸맞게 영어법문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영어를 비롯해 중국어, 러시아어로 번역한 공안집을 비치해 놓은 게 두드러진 차이다. 이른바 ‘공안 인터뷰’라고 부르는 법거량도 활발하다. 선문답을 주고받다가 별안간 울고 화내는 사람을 다독이고 띄워주는 형식이다. 심리치료를 닮았다. 수행자들은 조실 스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가슴 속에 은닉한 울분과 비애를 게워내고 번뇌를 씻는다.
 

무상사 조실 대봉스님(왼쪽)과 주지 대진스님.

  무상사 조실 대봉스님과 주지 대진스님이 가장 구참(舊參)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으로 동향이다. 각각 코네티컷 트리니티 대학과 보스턴대학을 졸업한 인재라는 점도, 전 세게를 돌며 은사의 가르침을 설파한 점도 같다. 대봉스님은 1977년, 대진스님은 1979년에 숭산스님을 만났다. “미쳤다는 것은 무엇이며,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만일 당신이 무언가에 많이 집착하면 많이 미친 것이요, 조금 집착하면 조금 미친 것이다. 그리고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미치지 않은 것이다.”대봉스님은 “이 한 마디로 수년간 심리학을 공부하고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풀었다”고 말했다. 숭산스님의 교지(敎旨)는 ‘오직 모를 뿐’으로 집약된다. ‘생각은 고통을 만들어낸다. 잡다한 생각 따윈 쓰레기통에 던져버려라.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떨쳐낸 본래 마음자리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라.’ 오직 모르니 ‘오직 할 뿐’이다. ‘어떻게 지금 이 순간 중생의 잠을 깨워 이 세상을 도울 것인가에 몰입하라.’

  결제와 해제의 의미에 대해 묻자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는 대봉스님의 대답. 아무리 별미라도 자꾸 먹으면 질린다. 귀가 닳도록 들어 식상할 만도 싶은 선어(禪語)에 달달한 ‘팁’이 얹힌다. “그리고, 배고픈 자에겐 먹을 것을 주고, 고통 받는 자에겐 실질적인 보탬을 준다.”스님은 1992년 스승에게서 전법게를 받았다. 깨달았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인가의 배경과 내막에 관한 ‘정치적인’ 질문은 한칼에 쳐냈다. “고무신도 흰색이고 운동화도 흰색이다.” 1997년 역시 지도법사의 자격을 얻은 대진스님이 해석을 거들었다. “고무신이든 운동화든 얼마나 발을 잘 보호하느냐는 기능과 역할에 의미가 있는 거지,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본질(本質)은 실존(實存)에 의해 드러난다는 결론이다. 깨달아야 잘 사는 게 아니다. 잘 살아야 깨닫는다.

계룡=장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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