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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화 | [세계일화 30호]불교에서의 시간 여행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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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그루 작성일13-09-06 16:46 조회2,4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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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이 질문에 대한 불교적 대답은 복잡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지닌다. 시간여행이라고 하면 물리적인 것만 생각하기 쉽지만, 정신적 여행도 고려될 수 있는데 불교적 측면에서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시간 여행의 흔한 예로 현재에 나에게 미칠 나쁜 결과를 없애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사건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아직 미처 결혼하지 않은 할아버지를 죽이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키는 우발적 사태를 불러온다. 최종적인 결과는 그 자신, 즉 할아버지의 손자인 자신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파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가 더는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는 과거로 여행할 수 없기 때문인데 이는 현재 살아 있고 여행할 수도 있으면서 동시에 또 살 수도 없고 따라서 시간 여행을 할 수도 없다는 이중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간여행의 이러한 역설은 실재(reality)의 광범위한 복합성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에서 야기된다. 그것은 단선적인 원인과 결과의 파괴에 관해서만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화엄경에 나타난 불교의 교리는 세상이 촘촘하게 서로 연결된 상호의존성의 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각각의 현상이 다른 모든 현상과 일즉다, 다즉일 (一卽多 多卽一, '하나가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은 하나이다)의 방식으로 연결된 것이다. 앞에서 들었던 예를 이에 비추어 다시 살펴보자. 시간 여행자 할아버지의 삶과 죽음은 상상이 가능한 그 이상으로 더 거대한 연결망으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시간여행은 서로 연결된 실제 삶의 구조를 심각하게 왜곡시켜서 단 한 사람의, 단 한 번의 시간여행도 우주 전체에 걸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기존의 모든 것이 파괴되게 된다. 역사책에 기록된 글과 이미지가 이러한 변화에 따라 자동으로 마술처럼,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역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처럼 불교의 교리는 물리적 시간여행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자들에게 또 다른 의미에서의 시간여행은 가능하다. 이 여행은 정신적이며 지나간 삶을 회상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다만 이것은 심리적 능력이기 때문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니고 아무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제약이긴 하다. 과거로의 정신적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불교적 근거는 아미타불 48대원의 다섯 번째 서원이다. 무량수경에 따르면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는 사람들은 모두 과거의 삶을 의식하는 힘을 얻게 된다. 그야말로 무량한 삶의 무량한 모든 것들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상상할 수 없는 힘으로 무한하고 경계 없는, 아미타불과 동등한 복덕을 공유하게 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의지는 정토의 모든 존재가 가장 효율적으로 통찰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정토의 평정한 삶을 누리며 아미타불의 보살핌 아래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서 카르마()의 법칙이 얼마나 실제로, 세세히 적용되는가를 보게 하는 것이다. 정토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망상과 잘못된 상상에 빠지거나 집착에 휘둘리지 않고, 또한 아무 혐오 없이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이다. 이러한 과거로의 돌아감은 보살도를 발전시키게 된다. 카르마의 작용으로 어떻게 고통 받았는가에 대해, 또한 해탈을 향해 자신들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현명한 지식을 얻게 되면서 동시에 자비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보리심이 증장되고 보살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앞서 논의된 대로 엄밀히 적용되는 인과의 법칙 때문에 불교의 시간 여행자는 과거 시간의 사건 속에 참여할 수는 없다. 그는 단지 관찰자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미타불의 위력에 힘입어 우리는 과거의 일시적 채널 속으로 생생히, 고화상도 3D 서라운드 시스템 속으로 세세히 몰입해 들어가게 된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정신적으로 과거 속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그때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할지라도 다시 직면하면서 다시 새롭고 완벽하게 이해하고 과거에는 놓쳤던 교훈들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잊었던 교훈들은 다시 기억할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미래를 위해 나 자신을 바꿔 나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부정적인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윤회의 고리를 끊고 영원한 자유를 얻는 방법이며 다른 사람들을 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방법이다.

Shen shian, The Buddhist Channel. [2013.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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