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화 | [세계일화 9호] 마음으로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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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우민호 작성일12-07-04 15:42 조회2,069회 댓글0건페이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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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공간의 느낌은 무엇보다도 몸의 움직임과 몸 움직임의 가능성과 연결되어 있다. 반면에 시간의 느낌은 마음의 움직임과 마음의 움직임을 자각하는 것에 연결되어 있다. 공간은 밖으로 드러난 외화된 시간이다. 시간은 내화된 공간으로 공간운동이 지속성의 느낌으로 변형된 것이다.
공간느낌은 몸과 함께 시작되나 이 단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점점 변해서 몸과 관계없는 정신적 기능이 되고, 결국엔 불교에서 4선 8정이라고 하는 공간의 무한함을 체험하는 데까지 이른다. 이것은 한낱 개념이 아니다. 무한함은 개념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체험 되어질 수 있다.
공간과 시간의 관계에서 볼 때 움직임 또한 생명 자체의 근원적 모습이자 특성이다. 움직임에 의한 변화는 우연이아니라 법칙에 근거한다. 변화는 주기적인 움직임을 따라 일어난다. 계절과 하루의 시간 등이 그 예다. 변화는 시간 속 영원성을 상징 하면서, 이 시간 속 영원성을 더 높은 공간 차원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이 안에서 실체와 사건은 감각에는 인식되지 않지만 동시에 존재한다. 실체와 사건은 현실에 아직 이르지 않은 미래 사건과 현상의 보이지 않는 요소로써 잠재상태에 있다.
시간은 단지 스쳐 지나가는 자신의 존재만을 체험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와 비존재, 창조와 파괴 너머의 생명과 정신의 근원적 본성을 체험한다. 움직임으로써의 시간은 자신에 관한 것이든 혹은 자신 내면이나 바깥의 무엇이든 역설적이다. 덜 움직일수록 시간을 더 많이 자각하게 된다. 반대로 더 많이 움직일수록 시간을 덜 자각한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활동적이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짐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존재의 자연적 리듬에 맞춰 완벽한 조화 속에 사는 사람은 시간을 더 이상 경험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시간이 사라진다.
차원이라는 것은 어떤 방향으로 확장하거나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바깥으로 움직인다면 3차원적인 면에서 그렇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원을 만들어 내거나 내포하고 있는 움직임은 시간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불완전하거나 진행 중일 때 완전한 전체로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느낌은 불완전한 느낌의 시간이다. 최고로 깨어 있는 순간 곧 직관적으로 보는 것 혹은 완전한 깨침에는 시간이 없다.
깨친 자에게는 시간이 없다. 과거나 기억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는 시간의 모습으로 존재하기를 멈춘다. 새로운 공간의 질서 속에서 실체와 사건은 단편적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전체 속에서, 현재 이 순간에서 경험된다. 부처님은 깨닫는 순간 셀 수 없는 전생을 전 우주를 포괄할 정도의 광대한 시야로 살폈다.
과거를 우리 자신의 진정한 차원이라고 인정하고 그 속에서 깨달음이라는 대 자유에 도달할 때까지 꿈꿀 수 있을 때만이 우리는 우주적인 바른 견해로써 자신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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