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화 | [세계일화 1호] 알아차림-과학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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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수민 작성일11-07-08 14:13 조회2,146회 댓글0건페이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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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알아차림 명상에 대한 최신 연구의 요약본이 나에게 도착한다. 연구의 양이 근년에 폭발적으로 많아지고 있다. 최근에 수집 자료만 해도 35가지의 새로운 논문을 인용하고 있다. 이 논문들은 심장병이나 경계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효과, 학교의 혁신적이며 새로운 알아차림 교과목, ‘알아차림’에 근거한 스트레스 감소가 뇌구조 상에 미치는 영향 등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과학적 연구가 ‘알아차림’이 물리적으로 안녕이 증진됨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명상수행자에게 일어나는 내면의 변화를 올바르게 평가했다 할 수 있을까? 단순히 심신의 건강효과로서만 제시된다면 뭔가 잃는 것은 없을까? 정말로 보장된 결과만을 내는 무엇으로서 알아차림이라 한다면 핵심 내용을 왜곡하는 위험은 없을까?
내가 처음 ‘알아차림’을 경험한 것은 불교 전통에서였다. 내 삶은 일부분 내면의 가치를 살피지 못했기 때문에 우울하고 불안했다. 빠르게 변하는 쾌락주의의 틀에 갇혀 사려 깊지 못했고 불협화음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거품은 마침내 터졌고 폭발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던져졌다. 내 삶에 깊은 변화가 필요할 땐 이 모든 혼란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몇몇 사람들이 이러한 공포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명상을 배워볼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사실은 영적인 길을 찾아 좌복에 앉았다. 불교에 관한 책들을 집어 들었고 그 가르침이 내 안에 울려 퍼졌다. 4성제의 처음 두 성제인 괴로움과 집착이 내 경험에서 증명되었고, 고통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약속이 매력적이었다. 인격적 창조자인 신이라는 개념에 끌리지 않았지만 존재에 즉각 보이는 것 이상이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단지 믿음만을 요구하지 않고 내 육근을 살피도록 하는 실질적 형태의 탐구라는 개념을 좋아했다.
내 우울증은 사라졌고 알아차림의 수행을 통해 개발된 정신초월 능력이 많은 연구자가 제안하듯 어떤 유연성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나는 더 만족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명상이 심오한 감각을 개발시켰고, 긴장을 이완시키는 것 이상의 수련을 통해 나의 삶을 풍요롭게 했기 때문이다.
불교는 어떤 확실한 힘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더 수행 할수록 경직되었던 생각이 여유로워졌다. 인식에 미묘한 변화가 왔다. 10년 전, 일년 전, 아니 지난주와 다른 경험을 했다. 나의 인식은 지속적인 흐름 속에서 온전한 진실일 수 없음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알아차림은 큰 선물일 수 있다. 정말로 알아차림 선언의 전제는 널리 퍼진 명상수행이 우리 시대의 문제에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진다는 과학적 약속을 통해 수행에 끌리는 사람들은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있음을 찾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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