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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다문화 가정을 찾아서 “힘겨운 타국생활 ‘부처님 가피’ 큰 힘”...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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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09-01-05 16:17 조회2,4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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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채순영 씨(사진 오른쪽)가 지난해 12월17일 교육에 앞서 누엔김터 씨 가족과 대화를 나눴다.

결혼이주여성 14만 시대. 결혼이주여성의 정착을 도와 ‘세계일화(世界一花)’를 실천하고 있는 불교계 기관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김천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센터장 진오스님)는 방문교육을, 죽향쉼터(시설장 이정순)는 가정폭력피해여성을 보호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두 기관을 통해 다문화 시대에 해결해야할 과제의 실마리를 풀어봤다.

누엔김터씨와 채순영씨의 인연 /


#1“선생님, 아기가 아파요. 남편은 시아버지 다리 아파서 대구 병원에 갔어요. 아기 열이 너무 많이 나요. 빨리 와주세요.” 누엔김터(베트남, 22)씨가 지난해 12월1일 오전 채순영(김천시 부곡동, 46)씨를 다급하게 찾았다. 생후 7개월 된 아들 동윤이가 급성 발열로 병원에 가야했던 것. 한국에는 남편과 아들 밖에 없는데 소아마비인 시어머니가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1분1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생각난 사람은 방문지도사 채순영 씨. 채 씨는 전화를 받자마자 만사를 제쳐두고 집에서 40여 분 거리의 누엔김터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도착하지마자 아들과 그녀를 데리고 시내 병원으로 갔다. 채 씨 덕분에 동윤이는 무사히 치료를 마쳤다.



불심으로 맺은 선생님과의 만남 있어

낯선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 행복해요



지난해 12월17일의 마지막 방문교육을 앞두고 누엔김터가 채 씨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5개월의 교육기간 동안 누엔김터에게 채 씨는 친정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한국어 교육으로 시작된 인연이었지만 누엔김터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였다. 누엔김터는 “어려운 날들도 있었지만 선생님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고 고마운 마음 뿐”이라고 전했다.

채 씨는 김천시 아포읍 예리의 누엔김터 집을 매주 2회 방문했다. 교육은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2시간씩 1:1로 진행돼 왔다. 책상 위에 놓인 너덜너덜한 교재가 그간의 학습과정을 알려줬다. 누엔김터가 ‘한국어 교재 중급’을 펼치고 장문의 지문을 술술 읽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시집 온지 1년 7개월 된 누엔김터는 남편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능숙한 말솜씨를 자랑했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아 서로 답답해서 오해 아닌 오해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선생님 덕분에 우리 사이가 더 돈독해 졌어요.” 남편인 권성수(38)씨도 채 씨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채순영 씨의 방문 교육이 비단 한국어 교육뿐이었다면 누엔김터가 친어머니처럼 따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둘 사이에는 ‘불교’ 라는 튼튼한 고리가 있었다. 채 씨 덕택에 한국 사찰에 자연스럽게 발을 들인 누엔김터는 신행생활을 이어가며 고국의 향수를 달랜다.

“여기 와서 다행히 한국 사찰을 알게 돼 남편과 가끔 직지사에 가요. 베트남에 있을 때는 자주 절에 다녔습니다. 직지사에서 고국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렸어요. 기도를 하며 가족의 건강을 빌었답니다.” 누엔김터는 이어 “한국생활이 더 안정되면 절에 자주 나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채 씨는 또한 부부싸움을 한 날이면 토라져 있는 누엔김터를 달래고 얘기를 들어주며 중재를 하기도 했다. 밀린 하소연을 들어주느라 한국어 수업을 못한 적도 있다. 하지만 채 씨는 “교육도 교육이지만 이야기 할 상대가 마땅치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 여성들이 많다”면서 “들어주는 것도 큰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외에도 채 씨는 관공서 업무를 비롯해 시장보기 등 한국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곁에서 도왔다.

헤어질 시간이 다되자 누엔김터는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채 씨도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고 남편과 함께 놀러 오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채순영 씨는 못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고 교육을 마쳤다.

이주노동자쉼터 마하붓다센터 봉사활동의 인연으로 지도사까지 하게 된 채순영 씨는 “불자들일수록 불교국가에서 시집온 여성들을 도와줘야 한다”면서 “집에서는 남편이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채 씨는 “서로의 문화와 풍습 차이로 진통을 겪고 있는 가정이 꽤 있다”면서 “결혼 전 기본적으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도록 사전교육을 꼭 받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천=홍다영 기자 hong12@ibulgyo.com
 

    

이주여성위한 ‘죽향쉼터’


#2여성가족부가 지난 2007년 국제결혼가족 실태조사를 한 결과 16% 정도가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해 12월19일 이주여성들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가정폭력피해 이주여성을 보호하는 ‘죽향쉼터’를 찾아 재활에 주력하고 있는 현장을 취재했다.


고향서 모셔온 부처님과 대화 나누면

가정폭력에 힘겨운 내 마음 편안해져



구미시 ○○동의 한적한 주택 2층. 베트남에서 온 여성들이 거실 한 곳에 마련된 불단에서 향을 사르고 있다. 무릎을 꿇고 손을 가지런히 모으더니 절을 한다. 10여 분간 아무 움직임 없이 뭔가를 빈다. 기도를 마친 얼굴에는 평온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들의 안정된 모습 뒤에는 가정폭력이라는 슬픔이 있었다. 언뜻 평범한 가정주부들로 보인다. 이곳 여성들은 상습적인 폭력으로 긴급전화나 구조대를 거쳐 이곳 ‘죽향쉼터’로 입소했다. 처음 왔을 때만해도 얼굴과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그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깊었다.

여성들이 밝은 모습을 되찾기까지 죽향쉼터의 도움이 컸다. 지난해 9월에 개원한 쉼터는 피해이주여성을 중.장기적으로 보호하면서 숙식을 제공하고 의료지원, 법률지원, 자존감회복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곳이다. 자녀를 포함해 22명의 여성이 거쳐 갔으며 현재는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에서 온 여성 8명과 자녀 3명이 거주하고 있다.

<사진> 가정폭력피해 결혼이주여성들이 ‘죽향쉼터’에서 부처님께 기도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마음의 병이 깊은 여성들을 위해 이곳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상담’과 ‘화병치유’이다. 가정 폭력 상담 20년 경력을 가진 이정순 소장은 쉼터에서 24시간을 함께하며 수차례 그녀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적절한 해답을 마련한다.

“마음이 편안하세요?” 한국말이 아직 서투른 응웬 트이 투이(가명 베트남, 22) 씨는 금세 한국말이 나오지 않자 가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 먹먹했던 가슴을 추스르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속이 타들어 갈 것 같았어요. 지금은 한결 편안해요. 그림도 그리고 얘기도 들어주고 병원에도 갔어요. 지금은 마음껏 웃을 수 있어요.”

하지만 여성들은 한국말이 서툴기 때문에 표현해 낼 수 없는 아픔을 부처님 전에다 쏟아내기도 한다. 거실 2층에 마련된 불단은 시설 법인 대표인 진오스님의 배려로 마련됐다. 한 눈에 불상이 동남아 등지에서 가져 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진오스님은 피해여성들을 위해 지난해 방문한 베트남과 스리랑카 등지에서 불상과 불교용품들을 들여왔다. 여성들은 고국이 그리울 때마다 불단 앞에서 기도를 한다. 지난 10월 죽향에 온 보파(가명 캄보디아, 26) 씨는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면서 “그때마다 부처님 앞에 앉아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말했다.

피해여성들은 또한 화병치유를 위해 인근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독실한 불자인 김경태 영제한의원 원장은 이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고 있다. 김 원장에 따르면 여성들은 가정에서 할 말을 다 하지 못해 ‘가슴통증과 두통’을 호소한다고 한다. 김 원장은 “상처를 받은 여성들에게 무엇보다 도움을 주는 한국인도 많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서 치료를 시작하게 됐다”면서 “침과 부항, 뜸을 이용해 화병을 치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죽향 쉼터’에서는 이와 함께 구미 금오종합사회복지관(관장 법등스님)과 상호협약을 맺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 한글교실, 미술치료, 심리치료 등 여러 가지의 프로그램을 여성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 효과는 가정복귀와 자립능력 배양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부터 현재까지 4명의 여성이 가정으로 돌아갔다. 남편들은 전문가와 상담 후 ‘폭력을 일삼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나 공증을 받은 후 가정으로 귀가했다. 지난 9일 귀가한 응옥 타잉 (가명 베트남, 23) 씨는 “그동안 잘 해 줘서 감사하다”면서 “마음이 답답할 때 친정처럼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생겨서 더 기쁘다”고 밝혔다.

전문 직업을 갖고 자립을 준비하는 여성들도 있다. 8년 전 한국으로 온 크리스티나(가명 필리핀, 39) 씨는 남편의 잦은 폭력에 자녀 둘을 데리고 집을 나와 이곳에 머물고 있다. 크리스티나 씨는 원어민과 같은 영어실력으로 공공기관에서 영어강사로 활동한 바 있다. 올해부터는 초등학교에서 영어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죽향쉼터’를 설립한 진오스님은 “결혼이주여성들은 대부분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에 이럴 때 일수록 불교계가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면서 “미래 한국사회를 함께 이끌어갈 다문화 가정 2세들을 위해서도 이혼과 폭력예방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스님은 “피해 여성들과 이주노동자를 위해 통역과 업무를 도울 각국의 스님들을 초청하고 싶다”는 원력을 밝히기도 했다.

구미=홍다영 기자 hong12@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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