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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외국인 최초로 ‘봉암사 하안거’ 마친 현각 스님 _ 중앙일보 0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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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08-08-28 10:29 조회2,3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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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방배동의 불교TV 사옥에서 만난 현각 스님은
“어릴 때부터 뉴욕 타임스를 읽었다. 대학에서 배운 것만큼 뉴욕 타임스에서 배웠다.
신문을 펼치면 드는 의문들. 삶과 세상, 그리고 나에 대한 의문이 바로 살아있는 ‘화두’였다”고 말했다.
[사진=백성호 기자]




외국인 최초로 ‘봉암사 하안거’ 마친 현각 스님




17일 오전 서울 방배동의 불교TV 사옥에 있는 무상사에서 ‘현각 스님 초청 법문(21일 방영)’이 열렸다.
1층과 2층, 지하 식당까지 1000여 명의 청중으로 빼곡했다. 이유가 있었다.
푸른 눈의 현각 스님(44)이 이틀 전에 ‘봉암사 하안거’를 마쳤기 때문이다.

경북 문경의 봉암사는 불가에서 ‘아주 특별한 사찰’이다.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 신라말 고려 초 선종을 이끌었던 아홉 곳의 스님 집단과 절)의 하나로 1100년 전에 세워진 고찰이다.
평소 일반인에겐 산문도 개방하지 않는다. 1년에 딱 하루(부처님 오신 날)만 문을 연다. 신자들의 보시도 안 받는다.
오직 선방 수좌들만 모여 수행하며 사는 곳이다. 그래서 봉암사는 종단의 지원을 받는 ‘조계종 특별종립선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불교계 내부에선 “봉암사 수좌들이 움직이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말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질 정도다.
그게 바로 ‘봉암사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지금껏 봉암사 선방에선 외국인 스님을 받은 적이 없었다. 1100년 역사를 통틀어서 말이다.
그런데 석 달 전에 봉암사가 푸른 눈의 스님에게 처음으로 선방문을 열었다. 그 안으로 들어간 이가 현각 스님이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봉암사에 간곡하게 청을 넣었다. 선방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이다.
정말 목숨을 내놓고 수행하겠다고 다짐을 전했다”라고 말했다.

올해 6월 90여 명의 수좌와 함께 봉암사 선방에 들었다. 그리고 석 달간 산문 출입을 금한 채 여름 안거를 났다.
하루 10시간씩 선방에서 참선을 했다. 그리고 밭에서 직접 배추를 기르고, 감자를 캐며 농사도 지었다.
하안거는 15일에 마쳤고, 그는 19일 유럽의 선원으로 만행을 떠날 참이다. 그래서 17일 무상사 법문에는 더 많은 이가 모였다.

법상에 오른 그는 꽤 수척한 얼굴이었다. 대신 푸른 눈은 더 맑아 보였다. 그는 ‘광복절’과 ‘박태환’ 이야기부터 꺼냈다.
“하안거 해제일이 광복절이었다. ‘광복절’이 무슨 뜻인가. ‘원래 빛으로 돌아온다’라는 뜻이다.
새로운 빛이 아니라 원래 빛으로 돌아오는 거다. 그래서 ‘광복절’에는 굉장한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 모두에겐 원래 그런 ‘참 나’가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는 “나의 하루를 돌아보라”라고 했다.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큰 환희심이 생긴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떤가. 2002년 월드컵 때도 그랬다. 생활로 돌아간 이들은
‘오히려 우울해졌다’라고 하더라. 왜 그런가. 바깥의 빛에만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림자일 뿐이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빛을 찾아야 한다. 그걸 위해선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고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예수님’과 ‘성경’도 언급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예수님 말씀과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부처님 말씀은 정말 똑같은 가르침이다.
 ‘나’ 속에만 길이 있고, ‘나’ 속에만 진리가 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왕국은 내 안에 있다’고 하셨다.”

그는 불교와 기독교의 가르침은 다르지만, 부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은 똑같다고 덧붙였다.
부처님과 불교 사이, 예수님과 기독교 사이에는 ‘틈’이 생겼다는 지적이었다.

법문을 마친 현각 스님과 마주 앉았다.
“봉암사의 하안거는 어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는 ‘봉암사 선방의 석 달’을 ‘물’에 비유했다.

“봉암사 선방은 샘물, 그 자체다. 거긴 평소 찾아오는 이가 없다. 그래서 수좌의 외로움, 인간의 외로움을
고스란히 느끼며 수행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2%’가 아니다. 다른 맛이 섞인 물이 아니다.
아무런 맛도 없는 물, 자연수행 그 자체다.”

글·사진=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2008.08.18 일자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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