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포교논문

서양불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미산스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관리자 작성일09-06-10 18:36 조회2,940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서양불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미산스님

강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제가 이번 특강을 준비하게 된 동기와 목적을 말씀드리고 강의의 전체적인 개요를 간단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처음에 서양, 특히 영국에 가서 공부를 시작할 때 옥스퍼드대학의 한인학생 파티에 참석을 했는데 거기에는 많은 기독교 신자 학생들이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학생이 와서 왜 하필 스님이 기독교문명국인 영국, 특히 신학의 요람인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질문을 받고서 '이 사람이 불교에 전혀 문외한이구나'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태연한 자세로 자상히 알려주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는 동양학, 특히 인도학의 본거지로서 그 동안 불교문헌학, 인도문헌학이 잘 발달된 곳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한 번은 폴 현각 스님과 한국의 인사동 거리를 걷는데 '아니, 서양사람이 스님이 되었네.'하며 학생들이 신기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 출신 폴 현각 스님은 『만행』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요즈음 한국의 대학과 외국에 있는 한국사찰의 인기있는 명강사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강연 때마다 왜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며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일까요? 아마도 명문대 출신의 서양인이 왜 스님이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호기심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서양의 성직자를 생각할 때 보통 로만칼러를 한 신부님이나 설교복 차림의 목사님을 연상합니다. 그렇지만 파르라니 삭발한 서양스님은 아마도 성직자로서 상상되기보다는 뉴에이지의 스킨헤드족(skinhead) 정도로 생각될 지 모릅니다. 한국승려들의 복장인 잿빛 승복을 입었으니 성직자로 봐주기는 하지만 어쩐지 어색한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인이 서양 성직자 차림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왜 서양인이 한국 성직자 모습을 한 것은 부자연스럽고 이상해 보일까요?

 

서양에도 불교도가 있다는 것이 전혀 상상밖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현재 서양에서 불교가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교라는 사실과 유일신 중심의 서양인들의 낡은 세계관과 가치체계를 업그레이드하도록 촉구하는 진보적 지성인들의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이번 특강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또 어쩌면 '21세기에는 불교가 서양에서 역수입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문화특강시간에 이러한 주제로 말씀을 드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특강은 크게 분류하면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서양불교의 과거 역사를 살펴보고, 두 번째로는 서양불교의 현황, 즉 현재 서양인들이 불교를 어떻게 믿고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말씀드리도록 하고, 세 번째는 21세기에는 서양불교가 어떤 식으로 발전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한국불교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우리는 미래를 위해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강의를 하겠습니다.

 

 

1. 서양불교의 어제

 

 

1.1 서양인의 불교 접촉

 

먼저 언제부터 서양인들이 불교를 접했을까요. 기원 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서북부를 점령했을 때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 정설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서북부 지방을 정복했을 때 불교는 아직 인도 서북부까지는 전파가 안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불교가 인도의 서북부까지 전파되는 시기는 AD 1~2세기 경 설일체유부가 서북부 지방에 큰절을 세우고 활동을 할 때입니다. 그래서 기원전 4세기경에는 아마도 서양인들이 불교와 접촉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원 전 3세기 경 서양인들이 불교와 접촉을 했을 것인가? 이 때는 아쇼카 대왕이 서양국가에 전법사를 파견(스리랑카에 마힌다 태자를 전법사로 보내서 그 곳의 승려들을 교육시키고, 비구니 교단의 시초가 되었다는 아쇼카 대왕의 딸, 상가믿다를 실론에 파견)한 때입니다. 그러나 서양국가에 전법사를 파견했다고 하는 사실은 인도 문헌에는 보이지만 서양의 문헌에는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원 전 2세기 경에는 확실히 서양인들이 불교와 접촉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밀린다 대왕과 나가세나 스님의 대담을 담은 책인 『밀린다팡하』라고 하는 책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기원 전 2세기경에 불교가 서양에 전파되었지만 아직 큰 힘을 갖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서양인들이 불교국가에 침입해서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하는 움직임들이 더 강했습니다. 기원 전 2~3세기에서 13세기 전까지는 불교도들은 서양인들과 간접적인 만남 이외는 큰 접촉은 없었습니다. 13세기에 비로소 기독교 선교사들이 티벳불교도인 쿠빌라이칸과 만나면서 본격적인 접촉이 이루어 집니다. 17세기에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중국불교도들과 만납니다. 그래서 중국의 선교사, 특히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활약을 하고 중국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정책들을 씁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쉽게 개종이 되지 않습니다.

 

1.2 동양종교사상에 대한 관심과 불교 연구

 

서양인들이 불교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19세기 초부터입니다. 특히 진보적인 지성인들이 동양사상과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독일철학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1869)는 자신의 생에서 가장 영광된 일은 불교를 만난 것이라고 할 만큼 불교에 대한 애정과 조예가 있었습니다. 19세기 초 미국의 초월주의자 에머슨(Emerson, 1803~1882)과 쏘로우(Thoreau, 1817~1862) 등이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 분들이 활약했던 곳이 하버드대 근처의 콩코드라는 작은 도시입니다. 월든 호수에서 쏘로우는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자연주의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불교에 영향을 받았고, 또 동양사상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쏘로우는 인도의 간디가 무저항독립운동을 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또 19세기 중엽에는 근대불교학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경영을 위한 학문 연구를 위해 국가 정책으로서 불교학이나 인도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당시 19세기 중엽에는 수준급의 학자들이 인도문헌학이나 불교문헌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연구를 했습니다. 서양불교학사에서 최초의 불교학자로 남아있는 사람은 유젠느 뷔르누프(Eugene Burnouf)로서 불어로 『인도불교사 입문』이라는 책을 1844년에 썼습니다. 이 책 이후로 수많은 동양고전과 불교경전의 번역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번역된 불교경전은 서양의 진보적 지성인들이 자신들의 사고의 영역을 넓히고 심화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헨리 올콧(Henry S. Olcott)과 헬레나 블라바스키(Helena P. Blavatsky)는 뉴욕의 신지학회(The Theosophical Society, 1875)에서 많은 활동을 합니다. 신지학회는 불교만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회는 아니고 인도종교, 동양종교 전반 특히 신비주의에 중점을 두고 연구를 했던 단체입니다. 헨리 올콧과 헬레나 블라바스키 같은 사람들은 상당히 불교에 심취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막스 뮐러(Max Muller)입니다. 이 사람은 독일사람으로 2차 세계대전 때 영국으로 귀화해서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동방성서(The Sacred Books of the East, 1879)를 편집 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살아생전에 전집의 완역을 못했지만 첫 권 우파니샤드를 시작으로 해서 불교의 경전과 율장, 중국의 사서삼경, 힌두교의 여러 성전들을 번역해서 총 50권으로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했습니다.

 

또 중요한 사람으로 에드워드 아놀드(Sir Edwin Arnold)입니다. 이 사람은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서사시집 『아시아의 빛(The Light of Asia, 1879)』을 발간해서 서양 지성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번역이 안 되었지만 서양에서는 이 책이 1879년부터 지금까지 스태디 셀러로 널리 알려진 책입니다. 또 리즈데이비드 부부(Rhys Davids)가 팔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를 1881년도에 설립하게 됩니다. 원래 리즈데이비드는 영국의 집정관으로 스리랑카에 갔다가 옛날 문헌들을 살펴보다가 팔리경전을 읽고 감명을 받아서 사재를 털어 '팔리성전협회'를 만들고 팔리 삼장을 로만글자로 바꾸고 영어로 번역해서 지금까지 150여 권 정도로 출간을 했습니다. 이 협회는 현재 옥스퍼드에 있고 제 지도교수를 하신 리챠드 곰브리지(Richard Gombrich) 교수가 회장으로 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팔리경전을 좀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 6년 동안 주석서와 여러 팔리 문헌들을 중심으로 상좌부의 '찰나설'을 연구했습니다. 지금 현재도 팔리성전협회는 초기 인도 불교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서양의 불교가 학문 중심으로 시작해서 발전을 하고 있었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불교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불교가 정식으로 세계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시카고 세계종교의회(The World Parliament of Religions, 1893)를 개최하면서부터입니다. 여기에서 스리랑카에서 온 아나가리카 담마팔라(Anagarika Dhammapala)가 불교계를 대표해서 연설을 하셨는데, 연설하기 전에 청중들에게 '여러분들 중에서 불교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5명이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서양에는 불교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담마팔라는 청중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불교를 알지 못하고는 20세기를 바르게 이끌어가지 못합니다. 불교야말로 20세기를 이끌어갈 대안사상입니다. 이후로 담마팔마는 본국으로 돌아가서 여러 가지 활동을 했습니다. 특히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YMBA(Young Men? Buddhist Association) 같은 청년불자회가 중심이 된 포교활동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은 중국과 일본계 불교인들의 유럽과 미국 진출입니다. 이 때 이민자들이 가지고 들어온 불교를 짐보따리, 혹은 수하물불교(Baggage Buddhism)라고 합니다. 이민자들이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그대로 갖고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면서 그들의 종교인 불교가 그 나라에 심어지게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1.3 비트와 히피시대의 불교-선불교에 대한 관심 고조

 

지금까지 19세기 초에서 19세기 말까지 어떻게 서양인들이 불교와 접하고 불교연구를 시작했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전쟁 이후에 신심있는 불자들에 의해서 불교단체와 사찰들이 건립되기 시작합니다. 러시아 세인트 피터스버그(St. Petersburg)에 아그반 도체(Agvan Dorzhev) 스님이 유럽 최초의 사찰(1909~1915)을 건립했습니다. 이 사찰은 공산 치하에서 일시 문을 닫았다가 최근에 다시 문을 열고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찍이 파울 달케(Paul Dahlke)는 그 당시 동독의 동베를린에 불교인의 집(Buddhist House, 1924)을 설립합니다. 여기서는 현재 스리랑카 스님들이 주로 포교를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험플리(Christmas Humphreys)는 대각회 분원(The Branch of the Maha Bodhi Society, 1926)을 런던에 설립합니다.

 

또 한 사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스즈키(D. T. Suziki)라는 일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서양에 최초로 선불교를 전한 사람입니다. 『선심초심(Zen Mind, Beginner? Mind)』이라는 책을 써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양의 선불교를 전해주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험플리나 알란 왓츠 같은 이도 이 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20세기 중엽에는 2차 세계대전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변동과 불교계의 대응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불교활동이 활발치 못했지만 20세기 중엽에 들어와서 불교는 전쟁으로 지쳐있는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어줍니다. 요즘 미국인들이 테러를 겪은 뒤로 종교에 많이 의지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불교명상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비트(beat)란 '지친’ '고달픈’ '절망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서 비트제너레이션(The Beat Genera-tion)이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뒤 지쳐있는 전후세대를 말합니다. 이러한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고 가치관의 혁신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비트소사이어티(Beat Society)라고 합니다. 여기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유명한 사람이 있는데 캐로액(Jack Kerouac)이라는 분입니다. 이 분은 유명한 소설 『다르마밤즈(Dharma Bums)』를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를 전합니다. 스나이더(Gary Snyder), 긴스버그(Allen Ginsberg) 등도 선불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당대의 신지성인들인 스즈키와 에릭 프롬(Eric Fromm) 등과 교류하며 20세기를 이끌어 갈 새로운 대안사상으로서의 불교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문학이 얼마나 우리의 일상 속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이 사람들의 활약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시기에 아주 중요한 한 사람이 왓츠(Alan Watts)라는 사람인데 영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주로 활동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서구인들의 피상적인 선(禪, Zen)의 이해를 비판하며 '비트젠'에 대조되는 이른바 '스퀘어젠(Squarezen)', 즉 정통선을 통해 영국과 미국 주류사회에 선풍을 진작시키고, 참선의 대중화를 위해 정열적으로 활동을 했던 분입니다. 현재 인터넷사이트에서 왓츠를 찾으면 생생한 육성으로 이 분의 강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또 때 맞추어 일본 임제종과 조동종 계통의 선사들이 유럽과 미국에 진출하여 젠센터를 개설하여 선(Zen)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때 비로소 많은 서구인들이 동양의 선에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비트시대 이후에 바로 히피시대(The Hippie Era)가 이어집니다. 1960년 들어 비트문화는 극단적인 반(反)문화 운동으로 확산되는데 이것을 우리가 히피문화라고 합니다. 기성문화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유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사상들을 갈망하는 그러한 시대였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퇴폐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환각제를 사용한다든지 하면서 새로운 유행을 만들기도 하면서 새로운 젊은이들의 문화를 만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은 당시의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에 항거하면서 개혁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고 새로운 대안사상으로서 불교수행에 대한 관심은 끊임없이 증가되고 있었습니다. 또 이 시기에 특기할 사항은 선화 스님이 중국계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시작(1962)했습니다. 또 카플류(Philip Kapleau) 스님은 로체스타(Rochester) 젠센터를 설립하는데 이 분은 서양에서 선에 관한 지침서로 잘 알려진 『선의 세 기둥』(The Three Pillars of Zen)이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또한 일본에 가서 수년 동안 참선수행을 하였으며 서양의 근대 선지식으로 추앙받는 분입니다.

 

이 시기의 서양불교의 특징을 말하면서 영국의 상가락시타(Sangharakshita) 스님의 '서구 불교종의 친구들(The Friends of the Western Buddhist Order, FWBO)'이라는 종단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 FWBO는 서양불교의 특징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기존의 승단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단체입니다. 이 사람들은 계는 받지만 스님들과는 달리 보살 10계를 받습니다. 결혼도 할 수 있고, 직장생활도 하면서 부처님의 법을 실천하는 서양사회에 알맞은 그런 불교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중엽에 서양불교가 어떤 식으로 발전을 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서양불교가 20세기에 이러한 초석을 마련했기 때문에 20세기 말 1970~1980년대에 이르는 서양불교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50년대와 60년대는 준비기였다고 할 수 있으며, 70년대와 80년대는 번영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서양사회에 커다란 문화적 영향을 미치면서 새롭게 많은 조직들이 생겨나 서양불교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1.4 서양불교의 안정적 성장과 한국불교의 미국 진출

 

자, 이제 서양불교의 안정적 성장과 20세기 말에 어떻게 한국불교가 서양, 특히 미국에 전파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숭산 스님은 프로비던스 젠센터를 1972년에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의 불교를 미국에 전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숭산 스님의 지도하에 있는 관음선종 산하 센터에서 관음선이라는 이름처럼 숭산 스님의 현지인들을 위한 독자적 변용을 시도한 방법이 유통되고 있으며, 또한 삼우 스님도 캐나다와 미국 동부지역에서 서양불자들에게 미국식 한국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한국의 교포들을 위한 한국사찰들도 거의 1970년대에 건립됩니다. 로스엔젤레스 달마사(1973), 관음사(1974), 뉴욕의 원각사(1974), 조계사(1975), 시카고의 불타사(1974), 불심사(1978), 하와이 무량사(1975) 등은 한국교포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세계 불교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달라이라마가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 분은 1972년 월남전 종전 직후 미국을 첫 방문하여 미국의 지도자들을 만납니다. 이후 세계 사람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 지구촌 불교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해내기 시작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헐리우드 명배우 리차드 기어와 같은 유명인들이 달라이라마의 신봉자로서 티벳불교를 믿게 됩니다. 이 때가 1973년 무렵입니다.

 

이렇게 티벳불교를 중심으로 1970년대가 열립니다. 또 중요한 인물이 티벳에서 온 투릉파 린포체입니다. 이 린포체는 미국 콜로라도에 나로파 불교대학교를 설립합니다. 처음 여름학기에 강사진으로 투룽파 자신과 하버드 심리학과 교수였다가 구루가 된 램 다스, 비트 문인인 앨런 긴스버그 등 개성있는 교수들을 다수 확보합니다. 현재는 정식대학교로 인가받아 불교학, 문학, 명상학, 심리치료, 참여불교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이론과 실천을 동시에 적용하는 참여교육과 대안교육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1975년도에는 미국 동부 베리(Barre)에 위빠싸나 명상회(Insight Meditation Society, IMS)가 결성되어 잭 콘필드(Jack Kornfield), 죠셉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 등이 테라와다 불교의 명상법을 위한 단체를 만듭니다. 이들은 연중무휴로 수행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참신한 위빠싸나 명상수련단체입니다. 특히 새해를 맞이하는 결제 기간 동안에는 사람들이 너무 몰려오기 때문에 1년 전에 예약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원래 이곳은 카톨릭 수도원이었는데 수도원이 폐쇄되고 난 뒤에 미얀마에 있는 명상 스승을 모시기 위해서 이 수도원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잭 콘필드나 죠셉 골드스타인 등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미국사회에 자연스럽게 불교를 전하기 위해서 불교용어를 쓰지 않고 강연과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E.Q』라고 하는 책을 쓴 사람도 이 모임에 속해있는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이라는 사람으로 불교적 용어를 일체 쓰지 않고도 부처님 사상을 아주 평이하게 설명한 책으로 아주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저자 자신이 말하기를 그 책에 불교용어가 하나라도 발견이 되면 책을 더 이상 팔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평이하고 일반적인 용어를 쓰는 것을 신조로 불교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부처님 사상이 제대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불교라는 말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이 시기는 불교가 급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청년기에 접어든 서양불교의 오늘

 

2.1 왜 서양에서 불교가 급성장할까?

 

서양불교는 90년대에 들어서 청년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많은 단체들이 새로 생겨나고 구체적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불교 인구를 통계 낼 수 있을 만큼 불교인의 숫자가 늘어나게 됩니다. 20세기 불교를 우리는 청년기 불교라고 얘기하고, 또 서양불교의 전체적인 현황을 분석해보면 이제는 조금씩이나마 서양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나의 유행으로써가 아니라 서양불교가 21세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주도적 대안사상으로서 발돋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문 지상이나 방송을 통해서 서양의 불교인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서양인들이 불교를 믿게 된 동기를 제임스 콜맨(James Coleman) 교수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임스 콜맨 교수는 서양불교도들이 불교를 믿게 된 동기를 다음 세 가지로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정신개발과 수행에 대한 관심, 두 번째는 개인의 고민 해결, 세 번째는 가족, 친구 그리고 존경하는 사람이 불교를 믿기 때문인가. 이렇게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은 첫 번째가 50% 두 번째가 22%, 세 번째가 12%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결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양불교도들이 정신개발과 수행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서양의 중세는 특히 신이 지배하는 신 중심의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신에 의해서 판단되고 모든 가치 척도가 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러한 역사를 거쳐서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되지요. 즉 옛 그리스 로마 문명의 영화로 돌아가자. 인본주의,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자고 해서 이 때부터 여러 고전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영국에서는 경험주의적인 합리주의 철학이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신 중심의 기독교 교리에 정면 도전하는 철학 사상들이 나오게 되지요. 특히 산업혁명시대를 거쳐서 과학이 점점 발달함에 따라서 사람들의 인지도 점점 발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이 존재하는가.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가. 현미경과 망원경이 발명되면서 인간이 직접 우주를 관찰하게 되고 시간의 역사를 인간들이 점점 알아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창조신 중심의 기독교 신앙과 가치체계에 대한 직접적인 회의가 일어나게 되지요. 이러한 때에 맞춰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춘 종교를 열망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종교의 진화를 보면 처음 다신교에서부터 일신교 쪽으로 발전이 되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불교처럼 무신론적인 종교가 나오게 됩니다. 서양인들도 일신교에 회의를 많이 느끼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동양종교, 특히 불교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또한 서양인이 불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물질문명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1960~70년대 한참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경제부국을 꿈꾸고 있을 때 서양은 이미 물질만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구나 해서 물질문명이 중심이 되는 삶에서 유턴을 해서 다시 정신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가 바로 비트와 히피문화가 미국과 유럽 전반을 강타했던 그런 시기입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사항은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한계, 나 중심의 세계 속에서만 살면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나'에서 '나와 당신'의 세대로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에 정신세계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된 것이지요.

 

또 합리성과 이성적인 것에 바탕한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과 불교의 친화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서양과학 문명이 발달하면서 물질과 정신은 서로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했을 때 '나'라고 하는 정신체계와 그것을 인식하는 밖에 있는 대상과는 이원론적으로 갈라져 있다. 하나가 아니다라는 전제에서 과학사상이 발전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서양에도 과학이 발달하고 철학이 발달하면서 데카르트의 이러한 이론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히 양자역학에서 미세물질의 세계에 들어가면 관찰자의 관찰대상이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된다. 전자나 쿼크를 관찰하기 위해서 관찰자가 조금만 움직이면 실체가 없어져버리는 그런 현상을 발견하면서 참으로 정신과 물질,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라고 하는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서양인들이 불교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는 주된 원인이 자기수양, 정신수양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슷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만 서양인들의 신앙체계를 이야기하면 첫 번째 항목과 두 번째 항목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정신적인 수양을 통해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행을 합니다. 그렇지만 개인의 고통과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만 종교를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종교학적인 용어로 제 1차적인 신앙형태라고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많이 성행하고 있는 기복신앙을 들 수 있습니다. 처음 말씀드린 것은 2차적인 신앙형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종교를 교리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이 정말 진리에 합당하다고 인정했을 때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실제 실천하려고 하는 신앙형태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는 12%를 차지하는 적은 수이지만 가족이나 친지 등 존경하는 사람이 불교를 믿기 때문에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다른 종교보다도 융통성과 포용성이 있기 때문에 믿는다는 사람은 제가 만난 적이 있습니다. 특히 불교라고 하는 이름을 걸고 전쟁을 한 적이 없다. 불교는 그만큼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라고 생각해서 불교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양불교사를 논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분들, 달라이 라마와 틱냑한 스님과 같은 세계적인 불교지도자인, 큰스님들의 영향력 때문에 불교를 믿는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불교인뿐만 아니라 비불교인들에게도 달라이 라마나 틱냑한 스님은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런 스님들뿐만 아니라 서양의 불교도 중에는 영향력 있는 지성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와 에리히 프롬 등 스즈키와 함께 활동했던 분들뿐만 아니라 근대 철학자인, 화이트 헤드 등 불교에 호의를 갖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인기연예인 리차드 기어, 쇼마 써어먼 등 허리우드 배우들 중에도 불교도들이 많이 있지요. 또 유명한 스포츠 선수들 중에도 자랑스럽게 자신이 불교도임을 밝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술인들 중에서 외래문화에 대한 관심 때문에 불교를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960년대 비트시대 문인들이 많이 나오면서 지금도 나로빠 대학교의 여름 캠프에는 수많은 문인들이 와서 창작활동을 하고 명상을 하고 간다고 합니다. 이처럼 미국사회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불교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한국의 불교인으로서도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2.2 서양불교의 현황 분석

 

제임스 콜맨 교수가 미국 백인 불교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해서 서양불교의 현황을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족들의 종교적 배경

유대교

천주교

개신교

불교

무종교

16.5%

25.6%

42.2%

1.9%

8.6%

 

 

이와 같은 결과로 나왔고, 물론 불교가 가장 적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유대인들이 불교를 많이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인구비율이 미국 전체 인구의 3%밖에 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 중에 지성인들이 꽤 많습니다. 근대 사상의 조류를 바꾸었다고 하는 철학자, 심리학자, 과학자들, 즉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등이 유대인이지요. 지금 서양불교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 중 다수가 유대인들입니다. 예를 들면, 심리학자이며 위빠싸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잭 콘필드라는 분이 있지요. 레리 로젠버그도 하버드에서 명상센터를 하고 있는 분으로 한국에 와서 숭산 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고 갔는데 이 사람도 유대인이고, 죠셉 골드스타인도 서양에서 재가신자이면서 각광받는 명상 지도자인데 유대인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불교지도자들이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서양불교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도 짐작이 갑니다. 이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튼튼한 기반을 가지고 있고 지성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서양불교도들의 생활수준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생활수준

3만불 이하

(약 4백만원)

3만~6만불

(약 4백~8백만원)

6만~9만불

(약 8백~천이백만원)

9만불 이상

(약 천이백만원)

30%

31

19%

20%

월수입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중상위층 이상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학력분포를 보면,

학력분포

고졸이하

대학 중퇴/졸업

대학원 이상

6%

43%

51%

 

이와 같이 서양불교도들은 대개가 엘리트층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서양불교의 인구 분포가 우리 나라나 아시아 불교국가 입장에서 보면 적은 수이지만 적은 불교인구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앞으로 미래의 서양불교에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성인들의 힘은 강하고 이 사람들이 지성뿐만 아니라 수행쪽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불교는 생활불교이고 수행불교입니다. 물론 엘리트 중심의 불교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점들은 보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특강의 끝부분에서 잠깐 언급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양 어떤 국가에 불교도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료는 Journal of Buddhist Ethics라는 전자불교 학술지에 실린 것이며 1997년도에 조사된 것입니다. 이 통계 숫자는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서양불교인들의 성격을 보면 아주 다양합니다. 불교를 열심히 수행하고, 불교적으로 살아가면서도 자기 스스로 불교도라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불교도라고 봐야 할지 하는 문제가 있고 또 프랑스의 경우 불교도가 35만 명인데 그 중에서 백인이 15만 명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이것보다 훨씬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기독교 이외에 다른 종교를 택한다면 어떤 종교를 택하겠느냐고 물었는데 300만 명이 불교를 택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즉 잠재적인 불교인들은 훨씬 더 많이 잠정 집계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300~400만 불교인이 있다고 집계를 내고 있는데 콜럼비아대학교 교수인 로버트 써어먼 교수는 300~400만이라는 숫자를 극구 부인합니다. 그러면서 100만을 더해서 500만이라고 주장을 하거든요. 자신들이 불교인이면서 불교를 내세우지 않는 불교신자들이 또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주요국가에 불교인구가 꾸준히 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저는 영국에서 6년 동안 공부도 하고 불교인들과 수행도 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영국인들은 자기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불교인들은 모두 조용해서 사람들을 만나도 자신들이 불교를 믿는다고 떠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대화를 해보면 모두가 불교에 대해서 해박하고 실제로 자신들이 아는 것을 실천하려고 하는 불교인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마타’라고 하는 불교단체가 영국에 있는데 한 30년 전에 태국에서 오신 스님이 캠브리지대학교에 가셔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명상법을 가르쳤습니다. 그 뒤로 학생들이 그 명상법이 너무 좋아서 자기들끼리 계속 수련을 하다가 점점 수가 늘어나서 지금은 영국 전역에 지부가 생겼습니다. 각 대학마다 써클이 있고 회원들이 나와서 학기 때 명상지도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절대로 명상을 하라고 적극적으로 알리지는 않습니다. 친지나 친구를 통해서 이 명상법에 대한 입소문을 듣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단 오면 아주 충실한 명상자가 됩니다. 저도 옥스퍼드에 있을 때 그 단체를 지도하는 랑스카즌 교수하고 산스크리트어로 된 책도 읽고 명상도 하면서 회원들과 불교활동을 했습니다만 드러내지 않고 삶 속에서 불교를 실천하려고 하는 그러한 모습들이 참으로 좋았고, ‘이 사람들은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 이하의 내용은 첨부파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