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3회 간화선 국제학술대회가 동국대에서 개최된 바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곡사에서 7일간의 ‘간화선 수행’이 진행됐다. 정(定)과 혜(慧)를 함께 공부해야 함이 바람직 할 거라는 주최 측의 뜻이 반영돼서일 것이다.

선 수행 체험은 이번이 처음만은 아니다. 전에도 수불스님이 주관하는 간화선 수행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지난 겨울 부산 안국선원에서 일주일, 그 후 동국대 국제 선 센터에서 3일, 이번이 세 번째인 셈이다.

비록 짧은 기간의 수행경험이었지만 선 수행은 미지의 영역에서 나를 부르는 듯 나를 끌어가는 어떤 동인이 작동되었나 보다. 그래서 이틀간의 학술대회에도 참석했다. 이어 설레는 마음으로 이번 수행대열에도 끼어들게 된 것이다.

수행 모임은 총70여 명. 동참자중 20여 명은 우리 스님들이다. 나머지 대다수는 각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었다. 이번 선 수행 프로그램은 외국인을 위한 단순한 맛보기 체험이 아니었다.

외국인이 많아 혹시 수불스님은 의례적 행위로서 입재(入齋)와 회향(回向)에나 참석하고, 법문을 한 두 차례 하면 다행이겠지 생각했다. 외국인을 위한 불교체험이란 그런 뜻에서 말이다.

스승은 포기 않고

이 비유 저 비유를 들면서

말로 몸으로 전달하려 하는 게

바로 스승의 모습이요,

부처님 마음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 예상은 빗나갔다. 처음부터 예의 그런 분위기는 없었다. 소임도 많은 수불스님은 수행 기간 내내 우리와 함께 기거했다. 매일 오전, 오후 법문을 여셨고 셋째 날부터는 개별면담까지 하는 아주 철저히 짜인 수행프로그램이란 인상을 받았다.

또 외국인을 위한 통역으로 요즘 세간에 아주 인기가 많은 혜민스님도 내내 함께 했다. 평소 촌음을 아껴 쓰는 노소(老少) 두 스님들이 일주일씩이나 할애(割愛)하여 베푸는 회상(會上)이니 참석자들은 뜻하지 않은 법복(法福)을 만난 기분이다.

법회시간에 이 두 스님들이 토로해내는 언설과 통역은 상호 조화를 이루면서 진실한 감정이 넘쳐나 보였다. 우리 같은 초심자에게도 가슴 깊이 울리는 ‘불성’의 영감을 체험하는 느낌이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어 전해주려해도 받아드리지 못하는 우리의 몽매함을 재삼 절감하기도 했다. 받아드리지 못하는 우리의 답답함에 당신의 말문이 막혔다가도, 다른 비유를 들어 차분히 설명해주는 모습. 때로는 엉뚱한 질문을 받아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스런 모습으로 진지하게 답변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성 안내는 그 얼굴이 부처님의 공양구이다” 라는 경구가 스쳐지나갔다.

그 곁에서 통역하는 혜민스님의 모습은 어떠한가. 영준한 외모, 싱글싱글한 눈망울, 금방 치기가 터져 나올듯한 천진불의 모습이다. 그런 그가 수불스님의 말씀을 한귀절도 놓치지 않으려고 온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는 수불스님한테 들은 내용만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한 번 더 우려내어 적실하게 토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득의(得意)만만(滿滿)한 그의 모습을 보면 흡사 영산(靈山) 당시의 아난의 ‘모습’이 그러하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이 갔다.

“온 몸으로 의심하라”. 그리고 “온 몸으로 부딪쳐 답을 찾아라”. 스승은 온 몸으로 전달하려 몸이 달아 있는데, 제자는 의심할 줄도 부딪칠 줄도 모르니 스승도 제자도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스승은 포기하지 않고 또 이 비유, 저 비유를 들면서 말로 몸으로 전달하려 한다. 그 처절한 모습이 바로 스승의 모습이요, 부처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난 그동안 나의 생활이, 나의 학생지도가 저처럼 철저하고 절실하지 못했으니, 여기서 나를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화두를 들어라. 그러면 의심으로 가득 차 답답하고 숨이 막혀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없어진다. 그 답답함이 뭉쳐서 덩어리가 되면, 분별망상은 타파될 수밖에 없다. 화두가 들렸는지 않았는지 자꾸 되돌아가 불을 붙이려 하지마라. 알약을 한번 먹으면 몸에 녹아 어디선가에서 작용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알약이 어디 있나 찾지 말고 화두가 들렸다 생각하고 밀어 붙여라. 잉어가 등용문에 오르려 폭포를 거슬러 오르다 중간에서 쉬게 되면 밑으로 떨어지고 만다. 사생결단 온힘을 다해 올라가지 않으면 안다. 물을 100도로 끊이기 위해서는 풀무질을 계속해야 하며 한번 끊어 넘친 물만이 정중동 동중정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수불스님이 법회 중에 설한 내용의 하나이다.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직접 말씀해 주시니 구구 절절 가슴에 와 닿는 감동이다. 나는 여러 말씀 중에서도 “선이란 밖으로부터 안을 보는 것이다”란 말을 듣는 순간 회오리바람 같은 것이 내 가슴을 휘감고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로부터 ‘이것이 화두에 드는 것?’ ‘이것이 의심이고’, ‘이것이 마음을 보는 것, 안을 보는 것인가?’ 하게 되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가.” 그 인식과 행위는 단지 연기에 의한 것일 뿐, 그 주인공은 사실 아무도 없음 아닌가? 그렇다면 마음이라고 할 만한 것도 사실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 든다.

가던 날 마곡사 극락교 다리 밑 잉어들은 가뭄으로 잦아든 계곡물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나올 때 보니 어제 내린 혜택(惠澤)으로 물소리도 상쾌하게 들려온다. 잉어들은 신이 나서 이리저리 즐겁게 소요하고 있지 않은가. 비온 뒤라 산도 나무도 더욱 싱그러웠다. 다리위에서 맞는 바람은 아주 시원하고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다. 하늘은 몹시 푸르기만 했다.

[불교신문 2833호/ 7월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