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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직 거사님을 보내며...뉴욕중앙일보 10.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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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10-01-06 11:45 조회2,7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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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이미 겨울이 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다만 겨울을 원치 않기에 모른 척하며 가을에 집착하며 애써 겨울을 잊으려 하나 겨울은 이미 닥쳐와 있습니다.
   그렇게 다가온 겨울, 겨울로만 받아들이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일 년이란 시간을 만들어 송구영신이란 옷을 입히고 이런저런 치장을 시켜 놓습니다. 해서 일 년을 묶어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는 것은 어찌 보면 윤회를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매서운 바람이 기세를 올리며 종일 거리를 휘젓고 다니던 아주 추운 지난 2009년 12월 마지막 수요일 밤, 뉴욕 불교계 큰 별인 최무직 거사님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생(生)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사(死)는 한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라 했듯이(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누구나 왔다 가는 삶이지만, 님의 장례 소식은 마음을 출렁이게 합니다.
   조금 더 사시지 않고. 아직 님께서 할 일이 남은 것 같은데.
   가시는 분을 고이 보내지 못하고 붙잡는 마음이 죄송하지만, 뉴욕 불교계는 아직도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다는 엄살 아닌 엄살이 님을 고이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이 좋아 산에 산다는 시인이 있듯이, 불교가 좋아 불교로 살다 가신 최무직 거사님.
   우리 불교 역사가 천년 하고도 칠백년이 넘었으니 한인에게 불교는 피와 살이 되어 한 몸처럼 여겨지고 있을 법한데. 뉴욕에 한인 불교를 심는 작업은 추운 겨울 언 땅에 씨앗 뿌려 싹을 트이려는 것처럼 참으로 어려운 사업이었습니다.
   그런 역경 속에서 님은 뉴욕 최초 한인 사찰인 원각사 초대 회장, 뉴욕국제 불교연합회를 만들어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맨해튼에서 주최했습니다.
   2002년부터는 재미 한국 불교장학회를 설립하여 매년 1만 달러 장학금을 보시해 지금에 이르는 등 불교계의 크고 작은 사회봉사에 모범을 보이면서도 많은 보탬이 되지 못한다면 미안해하던 모습이셨습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지만 단단히 화가 나면 물불 가리지 않고 고집을 세우나, 다음 날이면 너털웃음을 짓고 있던 거사님.
   맏형처럼 어려운 일은 도맡아 하면서도 티를 낼 줄 모르던 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오를 때, 님을 회고하는 아드님의 목메임은 끝내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군요.
   그러기에 조금 더 일을 하시면서 함께 있었으면 하는 어린 마음이 거사님을 피안(彼岸)으로 보내고 싶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사님은 쉬셔야 할 시간이 이미 지났음을 저희들이 어찌 모를 리 있었겠습니까. 늘 미안한 마음으로 거사님 뒤를 따르던 저희가 부끄럽습니다.
   거사님, 이제 앞으로 일은 저희에게 맡기고 편히 쉬십시오.
   육신은 인연 따라 생겼다가는 흩어지는 법이나, 님의 불교를 향한 마음이 어디로 떠날까요.
   분명 이 세상으로 다시 오시어 뉴욕은 물론 온 세상에 한인에 의한 불교를 활짝 피우는 사업에 늘 앞장서실 것입니다.
   새삼 고인이 되신 최무직 거사님의 명복을 빌며 슬퍼하고 있는 가족께 위로 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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