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의 숲 - 파사무용단 황미숙 대표(불교플러스 1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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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여여심 작성일15-11-27 17:56 조회1,548회 댓글0건페이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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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면 희뿌연 연무가 퍼지고 구석에서 머리로 얼굴을 가린 무용수가 등장한다. 대금 소리에 맞추어 움직이는 그의 몸짓은, 아름다움을 벗어난 무용이다. 이어 하나 둘 등장한 무용수들, 그들은 몸을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아래로 향하는 팔과 다리를 위로 틀어 올리면 얼굴도 일그러졌다. 그들은 각자, 또는 서로를 향해 집착하더니 어느 순간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벽을 향해 집어던진다. 폭발하듯 집어던지는 그 모습은 그들이 굉장히 화가 나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다음 장면에선 둘씩 맞서며 한 사람의 동작을 따라한다. 돌아서서 다른 이와 마주서면 또 눈앞의 사람을 따라 한다. 그 모습이 어지럽기만 하다.
모든 동작들은 힘이 있고 무용수들의 카리스마는 극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거기에 기타, 바이올린, 피리, 그리고 핸드팬 연주자들이 무대 한편에서 라이브로 연주를 해, 눈 뿐 아니라 귀도 집중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한 여인이 등장해 세 개의 긴 천을 부여잡고 친친 감싸기도 하고 풀기도 하며 씨름을 한다. 잡고 놓지 못하는 세 개의 천은 그를 이리저리 흔들며 괴롭게 한다. 조명이 하나로 모아지면 그는 결국 천을 하나씩 찢고 굴레를 놓아버린다. 이때 어디선가 내면의 소리인 듯 아름다운 소리가 흐르고 여인은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한다. 그 모습이 흡사 반가사유상 같다. 그리고 무대가 천천히 어두워진다.
몸으로 전하는 붓다의 메시지, "3독심을 버려라"
11월 4일과 5일 양일간 파사무용단은 붓다가 말씀하신 인간 번뇌의 압축판인 탐(貪),진(嗔),치(痴) 3독에 관한 ‘버려야할 것들’ 공연을 펼쳤다. 현대무용의 웅장함과 인간의 몸이 주는 울림은 큰 감동을 줬다. 대사 없이 몸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보니 가슴이 마구 뛰었다. 더불어 극과 조화를 이루는 수준 높은 라이브 연주도 빼놓고 말할 수 없었다.
어쨌든 나는 처음 본 현대무용공연에 혼이 쏙 빠져버렸다.
이 공연은 파사무용단의 대표이자 안무가, 예술감독인 황미숙 씨가 기획, 안무, 출연한 작품이다. 마지막 탐,진,치 3독에서 벗어나 합장하던, 나이 지긋해보이던 무용수가 바로 그다.
그는 작품을 연출하기 위해 무용수들과 진리에 대한 책을 함께 읽고 3독심에 대해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며 자신의 동작을 만들어갔다. 또 음악감독이 따로 없어 연주자들이 연습시간마다 와서 무용에 호흡을 맞추는 방식으로 극을 완성해갔다.
공연이 끝나자 황미숙 감독은 객석의 스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미니 토크쇼 시간을 가졌다. 태고종 열린선원장 법현 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의 의미와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관객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했다.
관객들의 질문도 이어졌다. 스트리트 무용 안무가라는 한 젊은 남성은 “탐과 진은 알겠는데, 치는 잘 이해를 못했다. 설명해달라”고 했다.
황미숙 감독은 처음 안무를 짤 때 ‘치’가 가장 표현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치는 어리석음이지요. 그런데 어떤 게 가장 큰 어리석음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남을 따라하는 행동, 유행을 쫓는 것이 어리석음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자기를 잃어버린 세상, 스마트폰에 있는 지식이 자신의 지식이라고 여기는 세상, 내 눈으로 보고 내가 경험해야 내 것이 되는데 진정한 내 것을 갖지 못한 세상. 그는 이것이 남을 따라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법현 스님은 “유력한 사람 말이나 성전의 말이거나 옛날부터 내려온 말이라고 해서 덮어놓고 믿지 말고 골똘히 사유해서 옳다고 판단되면 그때 비로소 믿어라”라는 『깔라마경』을 설명하며 자신이 체득한 것을 중심으로 해야 어리석음을 벗어날 수 있다고 보충설명했다.
그는 어떤 이유로 붓다가 인간의 가장 큰 번뇌로 지목한 삼독(탐,진,치)에 대한 공연을 올렸을까? 말로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을 몸으로 표현했을까? 불교에 대한 그의 이해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무용을 보고 돌아오면서 갖은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다음 주에 황미숙 감독(54)을 다시 만났다.
파사무용단 황미숙 대표. |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겠다"며 시작한 무용단 30여년 세월
그는 초등학교 시절 전북대표 육상선수였다. 그 정도 실력이니 중학교에 가서도 계속 육상을 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그와 부모님은 육상을 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다가 무용부에 들어갔다. 키가 커서 발레는 못했고 현대무용을 했는데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 후 전주여고 무용부를 거쳐 이화여대 무용과에 진학했다.
대학시절 그에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과의 특성상 교수와의 관계가 밀접해야 하는데 그는 누구의 비위를 맞추는 성격이 아니라서, 교수들은 그를 예쁘게 보지 않았다. 4학년이 되자 그 문제로 춤을 계속 춰야 하는지 고민이 컸다.
그가 존경하던 강사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놨다. 본인에게 재능이 있는지, 과연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도 춤을 계속 출 수 있는지 물었다. 강사는 그에게 재능이 있다는 말과 “네 작업세계는 네 것이다. 다른 이에게 의지할 생각을 안 하면 너 혼자 할 수 있다. 너의 결심이 중요하다.”는 답을 들었다.
그는 학교에 가지 않고 2주간 여행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 강사를 찾아갔다.
“어느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고, 그 후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의 답처럼 살고 있다.
1989년 황미숙무용단을 창단한 이래 꾸준히 공연을 해오다 2002년 ‘파사무용단’으로 이름을 바꿔 활동하고 있다. ‘파사婆娑’란 옛 한시에서 ‘가냘프게 사뿐사뿐 춤추는 모양’을 나타낸 말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무용심리치료 봉사 '몸의 학교'도 10년 이상 해와
이름을 바꾸며 시작한 것이 청소년들을 위한 ‘몸의 학교’다.
사회적으로 왕따 문제가 심각해지고 그 일로 자살하는 아이들이 나오는 걸 보며 황 감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용으로 해결점을 찾고자 했다. 먼저 가해자, 피해자, 제3자의 시각으로 옴니버스 무용극을 만들어 학교를 찾아다니며 공연을 했다.
현대무용이라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싶어 공연 후에는 설문조사를 해봤는데 의외로 아이들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춤을 통한 심리치료 효과를 이미 미국의 범죄치료프로그램에서 확인한 황 감독은 대안학교, 남부보호감찰소 등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직접 작품을 만들어갔다.
대안학교에서는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소년원에 가기 전 단계인 보호감찰 대상 아이들에게는 몸의 중요성을 통해 존재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는 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보호감찰소의 13주 수업 후 결과발표회는 늘 감동의 장이 됐다.
21세의 늘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보호감찰소 직원들이 이 아이를 변화 시키려고 “이번에 수업을 안 들으면 소년원에 보내겠다”고 겁을 줘서 무용수업을 듣게 했다. 이미 무용치료 수업으로 많은 아이들이 상당한 효과를 보았기에 아이를 변화시킬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매 수업이 몸을 움직여야하고 팀별 게임에서 지는 팀은 벌칙을 받게 되니 결국 싫어도 참여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매 시간이 끝나면 교사들은 학생들을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주는 스킨쉽이 이어졌다. 아이는 조금씩 고개를 들었지만 늘 부정적인 말로 교사들의 힘을 빼놓았다.
마지막 결과발표회에 아이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휠체어 장애인인 엄마는 케이크를 사와서 황 감독에게 여러 번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전혀 웃지 않던 아이가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웃어보였다"며 어머니는 황 감독의 손을 잡고 놓을 줄 몰랐다.
아이들의 그런 변화가 황 감독과 동료 무용가들에게는 큰 보람이었다.
아는 만큼, 공부한 만큼 붓다를 무대에 올리겠다
황 감독은 2012년 ‘붓다, 일곱 걸음의 꽃’이라는 무용극을 올렸다. 그가 붓다에게 주목한 것은 불자로서가 아니라 붓다가 나눔의 시초라고 본 것이다. 붓다의 일생을 읽으며 장면이 떠올라 바로 극을 기획했다. 무용극으로 붓다의 일생을 표현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인 데다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연출과 춤에 많이 이들이 매료됐다.
황 감독은 이 공연을 올리기 위해 하루 20여 곳의 사찰을 찾아다니기도 하며 홍보를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스님들을 만났고 몇 분과는 지금까지 교류를 하며 불교를 배운다.
그 중 한 스님이 건네주신 불교책을 읽고 그 분을 스승 삼아 일주일에 한번씩 불교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공부를 하며 번뇌를 없애는 방법으로 탐,진,치 3독에 주목해 이번 작품 '버려야할 것들'을 탄생시켰다.
황 감독은 “불교공부를 하며 혼자 진리를 알기는 아쉬워 붓다 이야기를 작품화했다”며 "앞으로도 작품에서 나를 돌아보면 좋겠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별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는 것은 내게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이미 그의 마음과 생각을 통해 구상한 극을, 그의 몸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의 예술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용기있게 나아갈 것을 믿기 때문이다.
얕은 물은 소리 내어 흐르지만 깊은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소리를 내는 법 없이 아주 조용하다. - 『숫타니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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