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필립 그로닝 감독의 다큐영화 <위대한 침묵>...법보신문 09. 12. 25

페이지 정보

작성자관리자 작성일09-12-30 17:54 조회3,308회 댓글0건

본문

프랑스 카르투지오 수도원에서 유마 거사의 침묵을 만나다

"오직 완전한 침묵 속에서만 우리는 듣기 시작한다. 언어가 잦아들 때만이 우리는 보기 시작한다.”(Only in complete silence, one starts to hear. Only when language resigns, one starts to see).

수도원의 일상을 주제로 한 영화가 최근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필립 그로닝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

이 영화는 프랑스 알프스 산맥에 자리잡은 카르투지오 수도회 내부의 삶을 촬영한 최초의 다큐멘터리이다.

1261738261-100.jpg

독일 출신의 필립 그로닝 감독은 의학과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침묵을 다룬 구름 같은 영화’를 찍겠다며 영화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생활을 필름으로 담고 싶다고 수도회 측에 요청한다. 하지만 수도회에서는 감독의 요구를 거절했다. “아직 너무 이르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19년뒤, 수도회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 준비가 되었다”고.

카르투지오회는 가톨릭 교회 중 가장 엄격하기로 유명한 수도회로, 방문객과 관광객의 출입이 일체 금지되어 있고, 기록이나 영상도 거의 전무하다. 19년간의 설득 끝에 촬영 허가를 얻은 필립 그로닝 감독에게 수도원 측은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일체의 스태프 없이 감독 혼자서만 들어와서, 독방에서 일상생활을 수도사와 똑같이 생활할 것이며, 일체의 조명 없이 수도생활을 방해하지 않고 촬영하라는 조건이었다.

이 영화는 서울에서 딱 한 곳, 선재아트필름에서 상영중이다. 영화를 보러 간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임에도 군데군데 수녀님의 모습이 보였고, 가끔 성호를 긋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타종교인인 나의 눈에도 이 영화는 2시간 반이 넘는 기나긴 미사처럼 느껴졌다.

영화에서는 대화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수도원으로 불어오는 바람소리, 빗소리,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 아침을 알리는 새벽 종소리, 공기 중의 먼지 소리, 하루가 끝나고 어둠이 찾아오는 소리,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염송 소리만이 사운드 트랙을 대신한다. 그리고 가끔씩 등장하는 성경의 구절들이 영화의 안내자 역할을 할 뿐이다.

1261738285-15.jpg

그들은 왜 1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기도와 예배, 묵상을 반복하는 삶을 살아온 것일까. 그리고 오늘 우리는 왜 이 고요하고 단순한 수도원의 삶을 바라보기 위해 이곳에 와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이 스쳐지나갈 무렵, 영화에서는 한 구절의 성경이 등장했다.

“주께서 이끌어 주셨기에, 제가 여기에 있나이다.”

영화에서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또 하나의 성경 구절이 있다. “내 제자가 되기 위해서, 너희는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영화는 가톨릭 수도원의 일상을 비춰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영화 특유의 색깔이 거의 묻어나지 않는다. 대신 청정한 삶으로 평생을 살아가면서, 진리이자 자연의 일부이자 하느님인 존재를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는 ‘특별한’ 사람들의 일상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영화는 신에게 혹은 붓다나 알라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원하고 요구하는 뭇중생들의 종교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진정한 종교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침묵 속에서 살아가는 수도자들의 삶을 통해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궁극적이고 순수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소리 없는 언어’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1261738304-10.jpg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터뷰에 응한 한 눈먼 수도사의 이야기가 약간의 친절한 설명으로 소개될 뿐이다.

“아닙니다. 죽음을 왜 두려워합니까? 그것은 모든 인간의 운명입니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집니다. 그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집니다. 하느님을 더욱 빨리 만나려 서두를수록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중략) 저는 제 눈이 안보이도록 해주신데 대해 하느님께 자주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제 영혼의 유익을 위해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음을 확신합니다. 세상이 하느님에 대한 모든 감각을 상실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린다면 무슨 이유로 이 지상에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무한히 선하시고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만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합니다.”

1261738331-34.jpg

또다시 끝없는 침묵으로 이어지는 영화를 보고 있노라니 그곳이 문득 <유마경>에 등장하는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유마거사가 침묵을 지킨 이유 또한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수사들이 침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 유마 거사가 침묵하고, 선종이 불립문자를 주창한 이유를, 저 언어도단의 경지를 저 영화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온 그 오랜 시간동안 어딘가에서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조용히 묵상하는 이들은 있고, 그들은 그 존재만으로 세상을 정화시켜 왔다. 그것이 기독교의 이름을 지녔는지, 혹은 불교의 이름을 지녔는지는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은 침묵으로부터 온다. 또한 그 침묵으로부터 겨울이 그리고 여름과 가을이 온다.”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