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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수호지' 영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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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09-02-16 14:10 조회2,6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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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주말에 동네 도서관에 들렀더니 북세일을 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색이 바랜 책이 눈길을 끌었다.

   'Outlaws of the Mash'.

   중국 4대 기서 가운데 하나인 '수호지'의 영문 번역판이었다. 상.중.하 3권짜리였으나 상.하권만 있었다. 뜯지 못하게 비닐로 낱개 포장된 채였고 권당 100달러가 넘는 낡은 가격표도 그대로 붙어있었다. 2달러에 사서 뜯어보니 1995년 중국의 '외문출판사'에서 발행한 것이었다. 번역가는 물론 중국인이었다.

  중국정부는 외문출판사를 1949년에 세웠다. 외문은 외국어. 주로 해외 독자를 대상으로 중국 서적을 외국어로 번역해 발행하는 곳이다. 책으로 세계에 중국을 알리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이 자랑하는 4대 기서중 하나인 '수호지'가 빠질 리 없다.

  2006년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과 참모들에게 명주실 자수로 2억 번 땀을 떠 만든 '손자병법' 영문판과 중국어판을 선물한 적이 있다. 이 책을 만든 곳도 외문출판사였다.

따지고 보면 중국은 정부가 나서서 자신들의 고전을 외국어로 번역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나라에 속한다.

  외국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알아서 중국 고전을 번역하기 때문이다. 미국 만해도 중국과 수교하기 전에 이미 전세계에서 중국 고전을 가장 많이 번역하는 국가의 하나였다. 그런데도 중국은 정부가 출범한 해에 외문출판사를 설립했다.

   책방이나 도서관에 가면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한인의 역사나 문화를 영어로 알리는 책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중국계나 일본계와 비교하면 더욱 아쉽다. 어쩌다 있는 것이 LA폭동이라는 단일 사건에 관한 것이다. 통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현란한 영상의 시대에 디지털 시대에 책이라니. 시대에 뒤진 것처럼 들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학스님의 말을 들으면 그게 꼭 그렇지 않다.

   우학스님은 신도 16명에 불과했던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를 10만명이 넘는 절로 키우면서 한국 불교 포교에 새 바람을 일으킨 인물이다. 미국 포교를 모색하기 위해 뉴욕에 머물고 있는 우학스님은 지난 1월 10일 LA를 방문한 적이 있다.

   스님에게 물었다.

   "티벳 불교는 미국에서 왜 그렇게 인기가 있습니까?"

   "샴발라 출판사라고 영어로 책을 굉장히 많이 내요. (영어로 책을 내는) 출판사도 1 2개가 아니고요. (미국) 서점에 가보면 티벳 스님들이 낸 책이 수두룩하죠. 한국 스님들이 낸 책은 거의 없죠."

   "스님이 책을 100여권이나 낸 것도 포교입니까?"

   "저를 직접 본 사람은 없는데 책을 본 사람은 많아요. 대관음사가 단기간에 성장한 데는 출판의 덕도 있었죠. 요즘으로 말하면 인터넷 포교가 중요한데 책을 통한 포교가 더 중요하죠. 책 한 권이 한 명의 포교사라고 생각합니다."

   주류사회의 누군가가 영어로 한인의 역사를 출간하도록 지원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좋은 일이지만 그러길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그런 책은 나올 때가 되면 나올 것이다. 그렇다 해도 주류사회는 주류사회의 시각으로 한인의 역사를 쓸 것이다. 한인의 시각에서 쓴 한인의 역사와는 또 다를 것이다.

   영어로 쓰여진 한인의 통사 텍스트로 인정받을 수 있는 통사가 책방과 도서관의 서가에 더 많이 꼽히길 바란다.


[LA중앙일보]
안유회/문화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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