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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인연 (불교신문 1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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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여여심 작성일15-06-17 15:22 조회95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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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점검위해 매일 명상수행

리차드 기어의 진관사 방문은

‘세계일화 꽃망울’ 틔운 선연

새벽부터 내린 비가 풀잎들을 촉촉이 적시던 2011년 6월의 어느 날, 귀한 손님이 진관사를 찾았습니다. 세계적 영화배우이자 불교신자인 리차드 기어가 진관사를 찾은 것입니다. 11살 아들 호머와 함께 온 그에게 저는 이번 방문이 ‘천년의 인연’이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렇게 깊은 인연이 아니고서야 머나먼 한국 땅의 수없이 많은 사찰들 가운데 굳이 진관사에 들릴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할리우드의 신사다운 온화한 미소로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경내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전각을 차례로 돌던 그는 천년 역사가 스며든 수행도량의 기운에 흠뻑 취해 나한전에선 실제로 명상수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칠성각에 들렀을 때 저는 한국불교의 전통방식으로 축원을 올리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칠성각은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부처님이 계시는 곳인데, 방금 당신의 아이를 위해 축원을 드렸습니다.”

그는 뜻밖의 축원에 매우 놀라고 고마워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불교기본교육과 경전반 수료식 날이라 그에게 축사를 부탁했습니다. 그는 한국불교가 불자를 위한 다양한 교육제도를 가지고 있는 것에 깊은 관심을 표하면서 흔쾌히 축사를 승낙했습니다. 기대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는 불자들을 위해 그는 티베트 경전에 있는 일화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한 수행자가 동굴에 들어가 선하고 고요한 마음이 들 때는 흰색 물감을 한 번 칠하고 악하고 혼란한 생각이 들 때는 검은색 물감을 칠하기로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이 온통 검은색으로 변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수행자는 크게 뉘우치고 본래 밝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기 위해 더 열심히 정진했습니다. 저도 마음을 점검하기 위해 매일 한 시간씩 명상수행을 합니다.”

소탈한 그의 모습과 수행에 대한 열정은 참석자들의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 그는 한국불교가 일본불교나 티베트불교와는 다른 독특한 향기와 영혼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한국불교가 지닌 실천수행의 힘과 자연과 조화하는 삶에서 배어나오는 마음의 향기라고 답해주었습니다. 그는 이런 곳에서라면 누구나 참된 수행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담(茶談)은 어느새 스님과 손님의 형식을 넘어 부처님의 혜명을 이어가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법담(法談)으로 깊어져갔습니다. 그는 평소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지만 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고, 한국에 오면 반드시 진관사를 다시 찾겠다고, 또 미국에 스님이 오시면 꼭 자신의 집에 모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짧은 만남을 진정으로 아쉬워하며 진관사 국행수륙대재에 쓰이는 고운 다포(茶布)를 가슴에 품고 절을 떠났습니다.

그날 그와 나누었던 공감과 소통의 경이로움은 개인적 추억이나 일화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국적과 인종을 넘어 부처님 법으로 세계일화(世界一花)의 꽃망울을 틔운 일이었고, 한국의 불교의 너른 품으로 세계의 불자를 끌어안았던 일이었습니다. 진관사에서 천년의 인연으로 맺어진 아름다운 향훈이 오랫동안 은은하게 퍼져 한국불교가 세계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서로 소통하는데 있어 좋은 반연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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