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귀하던 시절. 성냥과 양초는 생활필수품이었다. 언제부터 인가 더 편리한 대체품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성냥은 이제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어 졌지만, 양초만은 규모는 줄었지만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는 촛불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대체할 상품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촛불은 무명을 밝히고 탐욕을 몰아내고, 어두운 사바세계를 밝히는 광명을 뜻한다.

 

■ 파라핀 양초 도입과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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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찰에는 초 공양을 올리는 신도들이 많아 자원봉사자가 수시로 촛불을 정리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시중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양초들.

어둠을 밝히는 초를 만드는 일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산업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국보 제174호 ‘금동감옥촛대’와 보물 1844호 ‘경주 월지 금동초심지가위’ 등으로 미뤄 보아 삼국시대에 초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대는 등잔불도 귀하던 시절이라, 기름을 상온에서 고체로 유지하는 초는 만들기 어려운 귀하고도 귀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초의 역사를 보면 다양한 재료로 만들었지만 그 가운데 밀랍으로 만든 초를 선호했다. 밀랍은 벌들이 짓는 육각형 집의 주재료이다. 조선시대까지도 일반 백성이 밀랍으로 만든 초를 사용하는 경우는 관혼상제에 한정될 정도로 귀했다. 현재의 양초는 1850년 스코틀랜드의 화학자가 석유에서 파라핀을 추출해 값싸게 만드는 방법으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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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서 만날수 있는 다양한 양초들.

지난 13일 방문한 경기도 광주의 양초공장. 천장 위로 파이프라인이 연결되어 있고 멀리서 보면 옷감을 짜는 베틀모양인데, 굵은 실이 내려져 있는 길쭉한 틀에 액체가 부어진다. 틀 안에 심지를 넣고 액체상태의 초를 붓는 과정이다. 일련의 과정을 보니 철을 다루는 제철소와 비슷한 면이 많다. 우선 철광석을 고로에서 녹이듯, 양초 원료인 고체상태 파라핀을 전기로에서 녹인다. 쇳물을 식히는 과정을 거치며 제품모양을 완성하듯, 심지를 가운데 넣고 녹은 파라핀을 틀에 부어 식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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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핀(paraffin)은 석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의 일종이다. 고체 파라핀을 사다 녹이면 누구나 양초를 만들 수 있다. 이는 진입장벽 자체가 매우 낮음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양초공장은 가내수공업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양초공장은 수요에 따라 전국에 60여 개에 이르기도 했다. 현재는 수요가 줄어든 만큼 공장도 30여 곳 내외로 줄어들었다. 양초의 주요 소비처는 어디일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양초업계에서는 사찰에서 30% 정도를 소비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 다음으로는 민간무속신앙에서 상당량을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외에도 가톨릭 등의 이웃종교와 이벤트용으로 소비되고 있다.

양초의 최대 소비지역은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이다. 양초공장도 수도권에 다수 위치했지만, 2000년대 이후 영남권의 생산량이 수도권을 넘어섰다. 이유는 영남권이 불교세가 강해 소비시장이 잘 형성된 측면도 있고, 양초의 원료가 되는 중국산 파라핀이 부산항을 통해 들어와 원료 조달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파라핀으로 만든 양초가 보급되면서 양초는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을 만큼 가격이 싸다. 집회에도 사용되는 일반적인 양초 가격이 200원을 넘지 않는다. 소원성취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부처님 앞에 공양 올리는 양초는 어떨까. 길이는 보통 30cm내외로 한 눈에 봐도 굵다. 양초공장에서 확인한 가장 큰 양초는 길이가 90cm로, 1m에 육박했다. 촛대에 세울 수 없음은 물론이고, 이 정도 크기면 화재예방 차원에서라도 큰 항아리가 꼭 필요해 보였다. 물론 일반적 크기를 벗어난 것으로 구색을 갖추는 정도로 가끔씩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엄연히 소비가 있기에 생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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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찰의 경우 안전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양초공양함을 관리한다. 녹은 초는 밑에 서로 엉겨 붙어 삽으로 퍼서 포대에 담겨 사라진다. 기도하는 시간은 몇 시간인데, 공양 올린 굵은 초는 가만히 놔두면 2~3일은 족히 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10분용, 30분용 등으로 타는 시간을 기준으로 양초가 생산되기도 한다. 기도시간에 맞는 양초를 선택하여 사용하는 것이 자원의 낭비를 막고, 무엇보다 화재의 우려로부터 사찰을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다.

대형사찰에는 초 공양을 올리는 신도들이 많아 자원봉사자가 수시로 촛불을 정리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시중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양초들.

■ 디자인과 재료의 변화

양초는 불연성 용기에 초를 담아 포장되기도 하고 밑바닥 부분을 넓게 만들어 충격에도 초가 넘어지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대유, 코코넛 등의 천연물질을 사용한 양초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파라핀 양초 이전에 각광받았던 밀랍으로 만든 양초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식물성 양초는 그을음이 적고 실내공기전환에도 도움을 준다. 대부분의 경우 식물성 재료만으로는 양초를 만들기 어려워 적절한 비율의 파라핀이 사용된다.

 

■ ‘재생초를 유의하세요’

불을 밝히면 녹은 촛농은 식으면서 바로 고체로 돌아간다. 이를 모아 다시 양초를 만들 수 있다.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순물이 다수 섞이면서 재생초는 그을음이 많이 난다. 또한 재생초라는 별도표기 없이 판매되는 것이 더욱 문제다.

 

양초산업 다시 봄날 오나

최현규 우창산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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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양초공장을 지으면서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당시 양초시장은 공급이 수요를 겨우 따라 갈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배달직원만 3명을 고용하여 당일 주문, 당일 배송이라는 공격적 경영을 했다. 덕분에 한해 생산량이 40톤에서 2000년 초반 100톤까지 늘릴 수 있었다. 당시 조계사 앞의 불교용품점 가운데에는 한 달 양초 결재 금액만 1000만원인 상점도 있었다. 불교산업의 최대 호황기라는 1990년대와 2000년 초반을 경험했다. 이후 수요자체가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사라졌다.

중국산 양초가 수입되면서, 이들과의 가격 경쟁도 불가피했다. 이 때문에 2011년 미국산 소고기 파동 당시 서울시청과 광화문을 뒤덮은 촛불시위에 사용된 양초 하나가격이 120원 일 수 있었다. 전형적인 레드오션 시장이 된 것이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기호에 따라 다양한 양초를 직접구매하게 된다. 가정용 양초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와인과 케이크가 보편화 되고 각종 기념일을 챙기는 문화가 생김에 따라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취향에 맞는 양초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위해 디자인 뿐 아니라 양초를 만드는 원료에도 친환경적인 재료사용이 늘고 있다.

최현규 우창산업 대표<사진>는 “양질의 밀랍을 얻기 위해 지리산 양봉업자를, 양질의 쑥을 위해 농가를 직접 찾아 다닌다”며 양초시장의 미래를 밝게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