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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작성일20-08-04 16:45 조회1,5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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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스님

-. University of the West에서 Doctor of Buddhist Ministry 박사과정.

-. Cedars Sinai Hospital 병원에서 채플린으로 근무

퇴원을 앞둔 환자에게 내가 자주 하는 질문은 퇴원하면 어디로 가냐는 거다. “집으로 가나요? 어디 요양 시설로 가나요? 가족이 기다리고 있나요? 아니면 누가 기다리나요?” 등등. 보통은 다 가족들이 있는데, 가끔은 오늘 만난 환자처럼 혼자인 사람도 있다.

 

환자는 나에게 당신은 아이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아니요.”

나도 없는데, 결혼은 했어요?”

아니요.”

나도 안 했는데, 그래서 퇴원해서 집에 가면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환자분을 돌볼 사람이 없다고요? 친구도 없나요?”

친구는 있어요. 그런데 멀리 살고요. ~ 나는 좋은 이웃분이 계세요. 내가 가면 그 분이 기다릴 거고, 그 분이 날 돌봐 줄 겁니다.”

 

이 말에 순간 좀 놀랐다. 먼 곳의 단장보다 가까운 곳의 쓴장이 낫다는 말처럼, 꿩 대신 닭이라는 말처럼 이 환자는 자신이 퇴원하면 이웃집 사람이 기다린다고 좋아했다. 병실에 나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차라리 이 환자는 이웃집 사람이라도 있으니 작년에 만났던 환자보다는 낫다고 느꼈다.

 

작년에 내가 만났던 환자는 병원에 20일째 입원 중이었는데, 그때까지 40파운드(18kg)가 빠졌다고 했다. 내가 믿기 어려워 잘 못 들었나 싶기도 해서 다시 물었지만, 20일 동안 40파운드가 진짜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고 하니까, 병원에서 주는 음식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고, 먹으면 구토가 심해서 음식 냄새를 맡기도 힘들다고 했다. 나는 혹시 가족이 있냐고 물었더니, 환자는 필리핀 사람이고, 가족들은 다 필리핀에 살고 있고, 자기 혼자만 미국에 산다고 했다. 내가 퇴원하면 당신은 몸도 약한데 어떻게 음식을 해 먹을 수 있겠어요?”라고 물으니, 집에 가면 캔에 든 음식을 먹을 거라고 했는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말했다.

 

환자의 말에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내 가족들은 모두 한국에 살아요. 내가 6개월 전쯤 허리 디스크 터졌을 때, 나는 혼자 밥을 차려 먹었어요. 내가 많이 아플 때, 밥 차려달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리고 나는 그 환자의 손등을 토닥토닥해주었는데, 그러자 환자는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퇴원하면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복인 거 같다. 이웃집 사람이면 어떻고, 친구면 어떤가. 이웃집 사람이 환자를 기다린다는 말에 놀랍다고 느끼다가, 필리핀 환자처럼 아무도 없는 집에서 캔 음식 데워먹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 오늘 만난 환자 덕에, 나는 이웃집 사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겼다. 병원에서 채플린이 되어 환자 돌보는 것 말고도, 내 주위에 혹시 아픈 사람은 없는지 살피며 살아야겠다.

 

이웃집 사람이 날 기다려요.”

그 환자가 말한 이웃집 사람이 바로 내가 되길그렇게 살아가길 다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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