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뉴욕 백림사 주지 혜성스님...불교신문 09.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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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09-12-22 15:31 조회2,789회 댓글0건페이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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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백림사 주지 혜성스님은 미국에 한국 사찰 3곳을 지은, 미국에 한국불교를 전파한 선구자다. 한국에서도 차 문화제를 개최하며 문화와 수행이 접목된 불교를 전파한다.
미국에 나가있는 한국 사찰은 대부분 미국 주택을 개조하거나 빌어 사용한다. 뉴욕 백림사는 그러나 한국처럼 산중 전통 한옥 양식 사찰이다. 산림 규모가 20만평에 달할 정도로 광대하다. 한번 다녀간 사람들은 산세가 한국과 많이 닮았다며 감격해 한다. 백림사 창건주가 혜성스님이다.
“영혼을 깨어있게 하는 것이 禪이다”
禪 통해 찾아낸 본성 속 번뇌 제거하면
삶의 최고 가치인 지혜 얻을 수 있을 것
스님은 1978년 미국으로 갔다. 1970년대 미국으로 간 스님 들 중 유일하게 남았다. 1972년 도미한 숭산스님, 1974년 법안스님, 1976년 도안스님이 모두 입적해 도미(渡美)파 중에서 가장 고참이 됐다. 그만큼 미국 포교사의 산증인이며 역사다. 법사 칭호를 받은 미국인 제자가 20명이며, 출가한 상좌도 있다. 그 상좌가 상좌를 둬 지금 백림사를 지킨다.
스님을 만난 곳은 부산 금정산의 금강사다. 이곳은 스님의 한국 절이다. 미국으로 가기 전 통도사에서 경봉스님을 시봉할 때 인연을 맺은 신도가 창건한 절이다. 은사였던 서경보 스님이 머무르기도 했다. 경봉스님은 금강사를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우장춘 박사가 조성한 식물원 바로 옆이라 식생이 풍부하고 고즈넉하다. 통도사 고사목으로 지었다는 대웅전도 아름답다.
지난 2일 겨울 답지 않게 부산은 따뜻했다. 낙엽이 깔린 금정산 금강사는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스님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스님은 웃는 시간이 더 많았다. “멀리 서울에서 보잘 것 없는 시골 노인네를 다 찾아주고…”라며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맞절을 한다. “내가 서울 갈 일이 없어요, 미국 갈 때도 부산에서 일본을 경유해서 가니….”
스님은 몇 달전 아주 오랜만에 서울을 다녀갔다. 대학동문이며 비구계를 주신 석암스님의 상좌가 동국대 이사장에 취임해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좌탁 위에는 화선지와 붓이 놓여있다. 바닥에는 습자지가 가득하다. 문외한의 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글씨임을 알 수있다. 정판교 체를 완전히 습득했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인적이 드문데 겨울이면 아예 사람 발길이 끊긴다. 그럴 때면 맨해튼의 중국거리에 가서 고서를 뒤지는데 우연히 한 서체집이 눈에 들어왔다. 정판교 체였다. 정판교 서체는 모조리 사서 겨우 내내 연습했다.” 스님은 미국에 가기 전부터 서예를 익혔다. 청남 오제봉을 스승으로 배웠으니 실력이 짐작이 간다. 청남은 임환경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한 승려며 문인 서예가다. 진주 촉석루 현판을 쓰고 서예국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대가다.
혜성스님은 한동안 붓을 놓았다.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글을 한 번 쓰고 나면 온몸에 힘이 다 빠져 참선 수행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예부터 고승들이 서예가 공부에 방해 된다며 붓을 놓았다.”
스님이 다시 붓을 잡은 것은 뉴욕에서다. 미국인 포교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스님은 “미국인들은 동양문화에 관심이 높다. 특히 이 곳 뉴욕은 전 세계 문화가 집결한데다 인종 차별이 없어 동양문화를 전파하기가 아주 좋다”며 “서예나 차 등 동양 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다”고 했다. 스님은 미국인 제자들에게 붓글씨로 화두를 써서 준다. 얼마전에는 저지 시장의 간청으로 시청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11월1일부터 한달간 맥아더 장군의 부인이 건립했다는 갤러리에 스님의 글과 그림이 걸렸다. ‘일귀하처’(一歸何處), ‘불구부정’(不垢不淨) 등 선, 구(禪句)와 달마도를 선보였다. 미국인들을 위해 영문 해석을 달았다.
일귀하처는 ‘All of things, go back to one. Where to go?’로, 불구부정은 ‘No dirty, no clear’이다. 짧고 간결하다. “미국인들도 단박에 알아듣는다. 선어는 복잡한 영어를 쓰지 않아도 정확하게 전달 가능하다”고 말했다. 스님은 선화를 주제로 삼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살아가는 이유는 ‘나’라는 생각, ‘너와 나’라는 생각, ‘너와 나 사이에 사물’이라는 생각이 서로 겹쳐 소통되지 않아서다. 반대로 너와 나, 사물의 경계를 허물 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대의를 갖추게 된다. 이를 깨우쳐 주는 것이 선이다.
불교의 선은 독특한 철학이며 문화다. 선이 무엇이냐. 지혜로운 삶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즉 영혼을 깨어있게 하는 것이 선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깨닫는 것을 첫째 목적으로 삼는데 실참을 통해 이를 달성한다. 선을 통해 자기 내면의 본분을 깊이 관찰해 번뇌망상을 가려내고 복잡한 생각을 순일한 생각으로 바꾸고 억제하며 제거하여 나아가면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고 몸과 마음이 청정한 기운을 일으켜 보다 높은 예술의 맛을 느끼게 된다. 마음이 실참 실구를 통하여 번뇌 망상을 줄이면 자연히 명쾌하고 밝아진다. 선을 통하여 본성을 찾고 본성 속에 번뇌를 제거하여 나아가면 자연히 지혜를 얻게 된다. 지혜란 삶의 최고의 가치이다. 지혜를 통해 내면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 선화다.” 즉 스님은 선화를 통해 불교의 가치와 정신 지향점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스님은 다도에도 조예가 깊다. 원래 금강사 주변은 차밭골로 차 재배지였다. 그 역사를 살려 스님은 금강사에서 차밭골 문화제를 개최해 차 정신과 문화를 전파한다. 더불어 불수다례법을 창안했다. 부처님의 수인을 빌려 차를 달이고 마시는 동작 28가지를 만들었다. 차 한잔을 마셔도 공부인의 자세를 흐트러지 말자는 취지다. 차를 마시면서도 화두를 놓지 않고 본성을 찾아가는 쉼없는 구도자의 정신을 되새기며 정신을 가다듬게 하는 동작을 만든 것이다.
스님은 이처럼 많은 재주를 지니고 있지만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낮춘다. 가장 좋아하는 말도 ‘난득호도(難得糊塗)’다. 스님이 푹 빠져 서체를 배웠다는 판교(板橋) 정섭(鄭燮)이 한 말이다.
“총명난 호도난(聰明難 糊塗難) 유총명이전입호도경난(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방일착 퇴일보 당하심안(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 비도후래복보야(非圖後來福報也)라고 했다. ‘총명하기 어렵고 멍청하기도 어렵다. 총명한 사람이 멍청하게 살기는 더 어렵다. 집착을 버리고 한 걸음 물러 서면 당장 마음이 편하니 나중에 복받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는 뜻이다. 청나라 말기를 대표하는 서화가 정판교(鄭板橋)는 양주팔괴(揚州八怪)의 한 사람으로 시서화(詩書畵)에서 삼절(三絶)을 이뤘다. 이 글귀는 어느 노인과 대화를 하면서 배움을 얻어 ‘호도경’ 일명 ‘바보경’으로 불릴 정도로 중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나 역시 그처럼 살고 싶다. 인생의 좌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총명한 이가 바보처럼 보이며 살기’는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아닐 수 없다. 스님과 대화를 나눌수록 풍부한 지식과 경험, 재주 많음에 감탄한다. 하지만 잘 드러내지 않는다. 마냥 웃을 뿐이다. 정판교의 글씨만 배운 것이 아니라 삶의 철학 가치관까지 흡수한 듯 하다.
스님은 독자들을 위해 좋은 말씀 들려달라는 간청에도 “배운 것도 아는 것도 없는데 해 줄 말이 뭐있겠냐”며 “부처님께서 하라는대로만 하면서 살면 된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이제 내 삶을 평가한다면 미국에다 한국 절 세곳을 지어 미국인 제자들 까지 뒀으니 역사에 한점을 찍은 공적은 굳이 부인하지 않겠지만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진짜 동가식 서가숙 하다가 어느새 노인이 됐다. 그러다 인연 따라 갈 때되면 가는 것 아니겠느냐”며 “살아있는 동안 자비로운 마음으로 자비 베풀 일에 좀 나서고 남이 잘되면 찬탄해 주면서 살려고 한다. 그것이 도(道)아니겠느냐”고 했다.
■ 혜성스님은…
경북 영덕 출신인 스님은 1963년 불국사에서 서경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통도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해인강원에 입방해 통도사 강원을 졸업했다. 통도사에서 경봉스님을 모시고 참선정진했다.
부산 동아대, 부산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디트로이트 웨인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디트로이트 무문사, 클리블랜드 법륜사, 뉴욕 백림사를 창건하고 미국 현지에 한국선불교를 전파했다.
2005년부터 해마다 부산 금강사에서 ‘차밭골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부산=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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