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한인 불교계도 애도의 물 , 법정스님 분향소 설치...시카고중앙일보 10.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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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10-03-22 14:20 조회2,625회 댓글0건페이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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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법정스님 입적, 불타사 12일까지 분향소 설치
산문집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스님이 10일 밤 10시52분(시카고 시간)께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55세. 세수 78세.
법정스님은 3-4년 전부터 폐암으로 투병, 올해들어 병세가 악화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왔고, 입적 직전인 11일 낮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로 옮겼다.
법정스님은 자신의 건강상태를 의식한 듯 2008년 11월에는 길상사 소식지에 실었던 수필들을 모아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를 출간했다.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속명 박재철)은 1955년 오대산을 향해 떠났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의 선학원에서 당대 선승인 효봉 스님(1888-1966)을 만나 대화하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았다.
법정 스님은 1959년 2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고 1975년 10월부터는 17년간은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았다. 불일암 시절 초반인 1976년 4월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불교적 가르침을 담은 산문집을 잇따라 내면서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무소유’, ‘텅빈 충만’, ‘버리고 떠나기’, ‘인도 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등이 있다.
조계종과 법정스님이 창건한 길상사, 출가본사인 송광사 등은 장례절차를 논의한 결과 “일체의 장례의식을 거행하지 말라”는 법정스님의 평소 말에 따라 별다른 장례행사는 치르지 않고 12일 오후8시(시카고 시간) 송광사에서 다비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한편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에 시카고 한인 불교계도 애도하고 있다.
불타사는 11일 오후 분향소를 설치해 신도들을 맞이하고 있다. 분향소는 다비식이 진행되는 12일까지 설치된다.
불타사의 주지 현성 스님은 “초기 이민자들은 가난한 생활로 부를 축적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왔다. 하지만 말년에는 잘 못 살았다는 반성도 있기때문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큰 설득력이 있다. 법정스님은 글로서, 무소유 실천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입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 일깨워 주고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김주현 기자
한국의 큰 스님인 법정스님(사진)의 입적소식을 접한 한인 불교계가 애도에 잠겼다.
웨스턴에 위치한 고려사는 11일 오후 분향소를 마련하고 '무소유'의 법정스님을 추도하는 이들을 맞고 있다. 범경 주지스님은 "그저께 밤 9시쯤에 한국에 계신 현오 회주스님이 고려사에 전화를 해서 한국의 상황을 알려왔다"며 "한국에서는 다비식을 13일 송광사에서 열지만 LA에서는 오늘 오후 4시에 남가주 사원연합회(회장 만성스님)가 고려사에서 합동추모 법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정스님은 초창기 고려사가 타운에 개원했을 때를 비롯해 여러 차례 방문한 바 있다. 범경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 계실 때 두 번 스님이 직접 만들어 주신 차를 마신 적이 있다"며 "말이 없으시고 엄하면서도 온화하신 스승"이었다고 회상했다.
남가주 사원연합회의 현일 스님(법왕사 주지)은 "60년대 봉원사에 계실 때 만났다"며 "불교계 안에서는 훌륭한 스님들이 많았지만 대외적으로 비불교인들에게 그처럼 가깝게 다가가 큰 영향력을 준 스님은 없었다"며 큰 스님을 잃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마침 한국에서 뉴욕과 시카고를 거쳐 이곳 LA를 방문 중에 비보를 듣게 됐다는 정묘스님은 "82년 행자(예비승려)때 송광사에서 법정스님에게 직접 '불타 석가모니' 교육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정묘스님은 "특히 제자를 가르치실 때는 작은 잘못도 그대로 넘어가는 일이 없이 엄격하셨다"며 스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송광사에 찾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제자로 선택되는 수는 결코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떠한 명예직도 갖지 않고 오롯이 부처님의 길만을 닦아 '청정한 수도자 삶'의 롤 모델"이었다며 존경심을 표현했다.
일반 불자들도 애도에 잠겼다. 특히 김대도행 불자는 스님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감회가 남다르다.
스님이 마지막 숨을 거둔 성북동 길상사(옛 대원각 자리)를 법정 스님에게 도네이션 하도록 다리 역할을 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김 불자는 "한국서 소식을 듣고 친분 있는 보살님과 함께 밤새도록 울었다"며 "돌아가시기 전에 잘 살고 있느냐며 안부를 물으시던 스님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김인순 기자
[LA중앙일보]
산문집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스님이 10일 밤 10시52분(시카고 시간)께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55세. 세수 78세.
법정스님은 3-4년 전부터 폐암으로 투병, 올해들어 병세가 악화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왔고, 입적 직전인 11일 낮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로 옮겼다.
법정스님은 자신의 건강상태를 의식한 듯 2008년 11월에는 길상사 소식지에 실었던 수필들을 모아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를 출간했다.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속명 박재철)은 1955년 오대산을 향해 떠났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의 선학원에서 당대 선승인 효봉 스님(1888-1966)을 만나 대화하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았다.
법정 스님은 1959년 2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고 1975년 10월부터는 17년간은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았다. 불일암 시절 초반인 1976년 4월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불교적 가르침을 담은 산문집을 잇따라 내면서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무소유’, ‘텅빈 충만’, ‘버리고 떠나기’, ‘인도 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등이 있다.
조계종과 법정스님이 창건한 길상사, 출가본사인 송광사 등은 장례절차를 논의한 결과 “일체의 장례의식을 거행하지 말라”는 법정스님의 평소 말에 따라 별다른 장례행사는 치르지 않고 12일 오후8시(시카고 시간) 송광사에서 다비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한편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에 시카고 한인 불교계도 애도하고 있다.
불타사는 11일 오후 분향소를 설치해 신도들을 맞이하고 있다. 분향소는 다비식이 진행되는 12일까지 설치된다.
불타사의 주지 현성 스님은 “초기 이민자들은 가난한 생활로 부를 축적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왔다. 하지만 말년에는 잘 못 살았다는 반성도 있기때문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큰 설득력이 있다. 법정스님은 글로서, 무소유 실천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입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 일깨워 주고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김주현 기자
한국의 큰 스님인 법정스님(사진)의 입적소식을 접한 한인 불교계가 애도에 잠겼다.
웨스턴에 위치한 고려사는 11일 오후 분향소를 마련하고 '무소유'의 법정스님을 추도하는 이들을 맞고 있다. 범경 주지스님은 "그저께 밤 9시쯤에 한국에 계신 현오 회주스님이 고려사에 전화를 해서 한국의 상황을 알려왔다"며 "한국에서는 다비식을 13일 송광사에서 열지만 LA에서는 오늘 오후 4시에 남가주 사원연합회(회장 만성스님)가 고려사에서 합동추모 법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정스님은 초창기 고려사가 타운에 개원했을 때를 비롯해 여러 차례 방문한 바 있다. 범경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 계실 때 두 번 스님이 직접 만들어 주신 차를 마신 적이 있다"며 "말이 없으시고 엄하면서도 온화하신 스승"이었다고 회상했다.
남가주 사원연합회의 현일 스님(법왕사 주지)은 "60년대 봉원사에 계실 때 만났다"며 "불교계 안에서는 훌륭한 스님들이 많았지만 대외적으로 비불교인들에게 그처럼 가깝게 다가가 큰 영향력을 준 스님은 없었다"며 큰 스님을 잃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마침 한국에서 뉴욕과 시카고를 거쳐 이곳 LA를 방문 중에 비보를 듣게 됐다는 정묘스님은 "82년 행자(예비승려)때 송광사에서 법정스님에게 직접 '불타 석가모니' 교육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정묘스님은 "특히 제자를 가르치실 때는 작은 잘못도 그대로 넘어가는 일이 없이 엄격하셨다"며 스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송광사에 찾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제자로 선택되는 수는 결코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떠한 명예직도 갖지 않고 오롯이 부처님의 길만을 닦아 '청정한 수도자 삶'의 롤 모델"이었다며 존경심을 표현했다.
일반 불자들도 애도에 잠겼다. 특히 김대도행 불자는 스님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감회가 남다르다.
스님이 마지막 숨을 거둔 성북동 길상사(옛 대원각 자리)를 법정 스님에게 도네이션 하도록 다리 역할을 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김 불자는 "한국서 소식을 듣고 친분 있는 보살님과 함께 밤새도록 울었다"며 "돌아가시기 전에 잘 살고 있느냐며 안부를 물으시던 스님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김인순 기자
[LA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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