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News | 파리 길상사 주지 혜원 스님의 '해외포교' 제언(현대불교 21/03/16)

페이지 정보

작성자최고관리자 작성일21-03-23 10:56 조회1,505회 댓글0건

본문

Q. 한국불교가 해외포교에 나선지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하면 오히려 해외포교에 대한 관심은 크게 축소했다는 시각도 많습니다. 현재 해외포교 상황을 평가한다면.


A. 대륙별로 상황은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해외 사찰 및 신도 수가 지난 10여년 이래 상당히 감소하였음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인적, 재정적 여건이 열악한 해외 포교 사찰의 이러한 감소 추세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욱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 해외 포교에 관한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 종단의 당면한 과제라고 여겨집니다.

제가 현재 소임을 맡고 있는 파리 길상사는 1993년 법정 스님께서 재불 불자들을 위한 정신적 안식처로써 마련해 주신 도량으로 내후년이면 개원 3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려운 여건 가운데도 몇 년 전부터 작은 불사를 진행해오고 있으며, 이를 밑거름으로 하여 코로나로 인한 위기를 쇄신의 기회로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해외포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 혹은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제가 이곳 파리 길상사에 소임을 맡은 지 올해로 15년째 접어드는데, 그동안 한국과 프랑스 간의 언어와 문화적 차이뿐만 아니라, 국내 사찰과 해외 사찰의 운영 방식의 차이점을 피부로 절감하였습니다. 가령, 길상사는 프랑스의 협회 등록법에 의거하여 행정 당국에 한국불교협회(Association bouddhique coréenne)로 등록이 되어 있으며, 협회 회장을 비롯한 임원단이 협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지도 법사는 해마다 협회 회장의 서명을 받은 서류를 프랑스 관청에 제출하여 방문자 신분의 체류증을 받습니다. 다시 말해, 협회의 동의가 없다면 체류 자체를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에 따르라’는 서양 속담처럼, 해외 포교를 위해서는 현지의 사정에 맞추어 하심(下心) 하면서 살아감과 동시에,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머무는 곳에서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해외 포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나 덕목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수처작주’와 ‘무소유’의 정신 등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고, 해외포교는 이러한 정신을 실천하는 장이라고 하겠습니다.

Q. 해외사찰들의 주된 포교대상이 현지 교민으로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한계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남방불교국가의 해외사찰처럼 현지인에 대한 포교저변을 넓혀야 한다는 시각도 있는데요. 혹시 어떻게 보십니까.

A.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해외 사찰이 좀더 장기적으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현지 한국 교민에만 한정하지 않고 해당 국가의 현지인들을 위한 포교에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프랑스와 같이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인구가 모여 사는 국가에서 포교를 한다는 것은 프랑스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인을 대상으로 포교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프랑스는 세계에 한국 불교를 알리는 창구 역할을 수행하기에 좋은 입지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몇 해 전부터 세계 각지에 유행하고 있는 한류의 열풍은 프랑스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곳에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불교문화를 널리 알리고 현지인들을 포교하기에 적합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일본의 선불교가 서양에 파급될 수 있었던 배경과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해외의 열기가 식기 전에 때를 놓치지 말고 한국의 불교문화를 체계적으로 알리기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져야겠습니다. 이를 위해 해외 사찰의 역할이 지대할 것이라고 보며,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종단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Q. 조계종이 해외포교 활성화를 위한 해외특별교구법을 제정했지만 현재까지 그 효과는 미비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또한 해외사찰 입장에서는 해외특별교구법 제정 전과 후 어떤 변화가 있다고 느끼십니까?

A. 아시다시피 해외특별교구법이 해외포교 활성화와 체계화라는 훌륭한 법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해외현실과 괴리를 보여 효과를 제대로 못 거두었다는 아쉬운 평가가 있습니다. 이러한 괴리가 좁혀지지 않는 한, 해외 사찰들과 종단과의 연계고리가 더욱 약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프랑스의 경우 정치와 종교를 철저히 구분하는 ‘라이씨테(laïcité)’의 원칙에 입각하여 종교단체 설립이 지극히 까다로운데, 그만큼 포교의 방식도 국내와는 사뭇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중앙에서 해외사찰을 다룰 때, 현지의 정서 및 문화와 동떨어져 일을 처리하는 행정 방식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 조계종법상 해외사찰의 종단 등록과 재적승 관리 등 종법에 따른 종무행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혹시 아쉽거나 개선이 필요한 점이 있다면.

A. 파리 길상사를 비롯하여 상당수의 해외사찰이 해당국가법에 따른 법인체로 운영되기 때문에 종법상 사찰등록이 쉽지 않으며, 현지 교민들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파리 길상사는 개원 당시 법정스님께서 ‘송광사 파리 분원 길상사’로 명명해 주셨으나, ‘한국불교협회’(Association bouddhique coréenne)라는 이름으로 프랑스 당국에 등록이 되었습니다. 저에 앞서 이곳 파리 길상사를 거쳐가신 여러 법사 스님들께서 파리 길상사의 종단 등록을 시도하셨으나 실현을 못하다가 제가 이곳에서 소임을 맡은 지 10여년이 지난 2017년에 종단 등록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소임을 맡으면서 협회 구성원들과 신뢰가 쌓였고, 종단 등록의 필요성에 대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법정스님의 원래의 취지대로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송광사 파리 분원 길상사’로 등록하는 것이 늘 마음 한 켠에서 큰 숙제로 남아있었는데, 마침내 그 숙제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마음의 짐을 덜었습니다.

그런데, 해외 사찰의 종단 등록은 해당국가에서 규정하는 법적인 지위로 인해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합의 도출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현지 사정을 고려하여 종무행정에서 해외 사찰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례로, 2011년 조계종단 차원에서 파리에 한국 불교 문화를 소개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총무원장 스님께서 이곳의 열악한 환경을 보시고 포교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매달 100만원의 지원금을 약속하셨습니다. 이후 실무선에서 이 약속이 이행되지 못하였는데, 이유는 파리 길상사가 행정적으로 ‘송광사 파리 분원’으로 등록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종법상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재적승 관리와 관련하여, 저의 경우, 해외에 체류하다보니 종단 법계 과정 교육을 제대로 이수할 수 없었던 바, 승가고시가 몇 해씩 미루어지는 등 불이익은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씩 제도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해외 사찰 스님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현장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종무행정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Q. 조계종 해외특별교구는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또 제대로 가동되기 위해 선행돼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A.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해외특별교구 전체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한계가 있겠지만, 저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해외사찰들은 현지에 대한 지식과 인적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한국불교를 더 널리 보급시키는 데 있어서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 현지 불자들뿐만 아니라 현지에 나와있는 주재공관들 및 한국 불교에 관심이 있는 해당 국가의 기관들까지 두루 소통하며 교류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프랑스에 와서야 한국불교가 이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음을 절감하였고, 2011년 가을 조계종단의 프랑스 한국 불교 문화 행사에 참여한 것을 시발점으로, 한국불교문화를 유럽 땅에 선양하겠다는 원을 세운 이후 꾸준히 문화행사를 추진해왔습니다. 변변한 전시공간이 없어 길상사 정원에다 나무 벽을 설치하여 단청 전시를 개최하였던 것이, 이후 국립 기메동양박물관에서 한국선불교 행사로 이어졌고, 유럽문명의 역사적 도시인 아비뇽 시립 미디아텍크에서 단청전을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외부의 재정적 지원이 전혀 없이 사비를 털어 문화행사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현지에서 쌓아온 좋은 인연들이 큰 자산이 되어 주변에서 불가능하다고 하던 일들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절박한 원력을 세우면 불보살님들이 나타나서 도와주신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확인한 셈이지요.

지나고 보니 보람된 일임에는 틀림없으나 이런 힘든 과정을 앞으로 제 뒤에 오실 스님들에게 권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저의 경험을 통하여 프랑스에서 한국불교문화 보급의 가능성을 타진하였다고 보며, 문화불사를 시도하는 해외사찰에 대한 종단의 적극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 문화불사에 뜻을 두는 스님들이 좀더 나은 여건에서 추진하실 수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Q. 올해 조계종은 해외포교 원력을 새롭게 다지고 해외사찰과의 교류 및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해외포교에 대한 종단적 관심 및 지원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A. 해외 포교에 관한 종단 차원의 관심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며 시기적절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산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된 데 이어, 최근에는 연등회가 인류무형문화재로 등재가 되는 등, 국제사회가 한국불교문화의 가치를 인정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한류의 열풍으로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그동안 가려진 한국불교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봅니다.

이를 위해, 대표적인 불서를 번역하여 현지에서 출판보급하고, 참신한 불교문화행사를 기획하는 등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이런 시도들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일방적인 한국불교문화 소개가 아니라 현지의 사정과 필요를 잘 파악하여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봅니다. 가령, 한국에서 제작하여 보내오는 문화행사 리플렛이나 번역서에 현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포함되는 경우를 종종 보아 왔습니다. 이러한 재원의 낭비를 막고 효과적으로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님들과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며, 동시에 예산 지원이 수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아울러, 미래에 문화불사의 일꾼이 될 만한 현지인들을 잘 키울 수 있는 제반 여건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불교를 현지의 언어로 접할 수 있는 서적이나 기타 콘텐츠들의 제작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출가를 준비 중인 외국인에 대해서는 행자 교육과정을 현지에서 이수하여 인정해주는 제도 마련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일선에서 해외포교에 매진하면서 해외포교에 원력을 가진 스님들에게 어떤 당부를 하고 싶으신지요.

A. 언어와 문화와 사고 방식이 다른 이국 땅에서, 홀로 끼니를 해결하며 살아간 지 이제 15년째로 접어들었습니다. 제 경험으로 미루어 해외 포교에 원을 세운 스님들께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은, 현지의 실정에 맞추어 하심(下心)을 하면서 구성원들과 원만하게 살아가되, 처한 환경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분명 보람되고 값진 경험이 될 것입니다.

Q. 한국불교계나 종단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올해로 창건 28주년을 맞이한 길상사는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법정스님의 창건 취지를 계승하여 재불 불자들에게 정신적 안식처를 제공하며 나아가 프랑스에 한국 불교의 정신과 문화를 알리고자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프랑스내 유일한 조계종 사찰로서, 프랑스 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오늘 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한국불교문화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법정스님께서 이곳에 오시면 머무르셨던 경내 ‘소림헌’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소림헌은 애초에 방사가 부족하여 경내에 창고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작은 공간(약12.5평)이었으며, 저도 이곳에 와서 몇 년을 그곳에서 거처하다가 외부마감재의 균열과 파손 등의 안전성 문제와 지붕이 누수되고, 석면 지붕 건축자재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가 심각히 우려되어 지난 10여년 전부터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상징적인 이 공간을 더 이상 방치해둘 수 없다고 판단하여, 외부에서 재원을 마련하여 재작년부터 자재를 직접 사다 나르며 불사를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공사를 일시 중단하였으나, 상황이 호전되면 다시 재개하여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에서 시작하였으나 몇몇 고마우신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소림헌 옆 헌 창고를 헐어 소박한 명상 공간으로 건립하고자 기초를 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파리 길상사 주지 혜원 스님
여력이 된다면 이후에는 노후한 법당 본체를 재건하는 불사까지 발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원력 불사들이 원만히 진행되어 파리 길상사가 프랑스 땅에 한국불교의 위상을 드러낼 수 있는 터전으로 거듭나기를 염원해봅니다. 이러한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국불교계와 종단에서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