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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티베트서 온 ‘스무살 고승’이 가라사대“절 대단한 보살로 보지 말아주세요”...미디어붓다 10.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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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10-10-20 13:23 조회2,6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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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까루 린포체가 한국을 방문했다. 까루 린포체는 1989년 입적한 1대 까루 린포체의 환생자로, 1990년 인도 다질링에서 태어났다.
올해 만 스무살인 까루 린포체는 청년 특유의 풋풋하고도 매력적인 미소를 띄우며 유창한 영어로 명쾌한 설법을 전했다. 린포체의 아름다운 모습은 마치 티베트의 밝은 미래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1대 까루 린포체(1905~1989)는 티베트불교를 서구에 처음으로 전한 고승으로, 티베트불교 4대 종파 중의 하나인 까규파의 최고 수행지도자였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2대 까루 린포체는 1990년 인도 다질링에서 태어나 1992년 달라이라마로부터 까루 린포체의 환생자로 공식 인정받아 1992년 2월 삼둡 달게링 사원에서 제2대 까루 린포체의 자리에 올랐다.
까루 린포체는 까규파의 전통에 따라 수행을 지속하고 있으며 지난 2005년 봄부터 3년 3개월간 무문관 수행을 시작해 무사히 회향하기도 했다.
린포체는 9월 30일부터 법등사 티벳문화원의 초청으로 방한해 해인사 등 한국의 고찰을 방문했고, 봉인사에서 까규파 전통수행법인 기초사가행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0월 18일 동국대 정각원에서 까규 린포체가 전한 법문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편집자>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불교가 있습니다. 한국불교도 있고 티벳불교도 있으며 남방의 상좌부 불교도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불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제는 수행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차이일 뿐입니다.

수행이 없다면 진정한 불교의 이해는 불가능합니다. 책으로 배우는 불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수행의 체험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대승, 소승, 금강승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느 전통을 따르느냐는 그 사람의 법연과 전생의 인연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중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성불에 이르고자 하는 목적은 똑같습니다. 법맥이나 전통은 비록 다르지만 삼승(三乘)은 결국 같은 것입니다.

저는 이곳 동국대 정각원에 오기 전 해인사를 들렀습니다. 그곳에서 해인사를 창건한 스님의 모습을 뵙고 절을 했습니다. 영정으로 뵌 창건주 스님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었고, 저는 마음에서 우러나 스님께 절을 올렸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법당에서 절을 할 때에도 단순히 사찰예절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난 절을 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처럼 부처님과 조사들 앞에 절을 합니다. 이는 부처님을 따르겠다는 서원의 표시이고, 이런 점에서 대승이나 금강승 소승은 그리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발원을 하느냐, 그 연에 의해 미래의 법연이 또한 맺어지게 됩니다.

이 전통과 저 전통이 무엇이 다를까라고 생각하다보면 여러분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전통을 퍼즐 맞추듯이 끼워 맞추다 보면 의심만 늘어날 뿐입니다. 그런 의구심은 수행에 저해가 되고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인간의 몸을 받고 태어난 이 귀한 시간들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떤 전통이든 여법하게 수행한다면 그곳에는 분명히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하며, 윤회의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한 강연장에서 “윤회계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삼라만상이 윤회계라고 하고, 어떤 분들은 생사(生死)가 윤회라고 답하더군요. 저는 “여러분 자신이 윤회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이 지어내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면 고통을 넘어설 수 있고, 마음을 못 다스리면 그것이 윤회계입니다. 오독심을 다스리면 윤회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독심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저 린포체가 바른 말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해도 여러분 스스로가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행은 철저히 자신의 몫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가족들에게 불법(佛法)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불법의 목적은 여러분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가끔 종교를 너무 맹신해서 마음이 이상해지는 경우도 있고 가족들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종교를 억지로 가족들에게 강요하다보면 크면서 점점 사찰을 멀리하게 되고, 불교를 사랑할 수가 없게 됩니다.

나이가 들고 삶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서 스스로 종교를 원해 찾게 되면 자연히 불교에 귀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종교를 실천한다면, 일과 수행을 열심히 하게 되면 아이들 스스로 종교를 찾아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궁금해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강요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종교를 강요해서 잘못된 결과가 나오는 경우를 저는 종종 봐왔습니다. 다른 종교의 예를 들어서 좀 그렇지만, 제가 만난 유럽의 젊은이들 가운데 어릴 때 교회에 억지로 끌고 가다가 커서는 결국 교회는 떠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달라이라마와 같은 영적은 스승을 만나서 수행을 시작하고 진정으로 종교에 귀의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건실하면 가족들이 자연히 불교에 귀의하게 됩니다. 깨달음을 강요하게 되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수행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적인 공부만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는 착각입니다. 선업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 이생에 성공을 하게 되고, 전생의 선업에 따라 이생에서의 결과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업이 없으면 인연을 맺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업을 존중해야 합니다. 업은 단순하게 돌고 돌아서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그 업을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법문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듣는 것만 좋아합니다. 수행을 안 한다면 법문을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마음으로 수행한다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만 입으로만 수행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행을 하려면 우선 윤회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종교적인 전통을 따라간다고 해서 저절로 수행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원에서 기도를 하다보면 스님들도 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윤회와 생로병사를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관습적으로 수행을 하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졸음이 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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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계에 대해 머리로만 알면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고 수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으로 깨달으면 수행이 가능해지고 불법의 정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윤회를 모르면 불법은 괴로운 것이지만, 윤회를 알면 불법은 행복한 길이 됩니다.

아이는 사탕의 단맛 때문에 계속 사탕을 달라고 조르지만, 엄마는 사탕을 먹으면 이가 썩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탕을 먹지 못하게 합니다. 윤회와 불법도 엄마와 사탕 같은 것입니다. 윤회의 이치를 알면 그때서야 불법을 알게 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저는 여러분과 똑같은 인간입니다. 저는 인도에서 태어났고, 여러분은 한국에서 태어난 점이 다를 뿐 똑같은 인간입니다. 저도 아상이 있고, 여러분도 나름의 아상이 있습니다.

저는 인도의 다질링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1989년 까루 린포체가 입적한 후 1990년 제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사람들은 저 아이가 린포체의 환생자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태어난 후 1년 뒤 저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아름다운 아기였습니다.(웃음) 그리고 두 살 때 달라이라마 등 티벳의 높은 라마들이 저를 찾아와 린포체의 환생으로 인정을 했습니다.

세 살 때 한번은 제가 법당에서 내려와서 달라이라마께 절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저는 너무 어려서 기억이 안 납니다. 제가 절을 하자 달라이라마께서는 “깔루 린포체의 환생자다. 모든 중생과 함께 보리도에 이르겠다는 서원을 위해 절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합니다.

그 후 사원에 들어가서 승려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14~15살 무렵이 되자 스님으로서의 삶이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불교를 이해하기는 했지만 마음으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마음으로 불교를 이해하라고 한 것은 저 또한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16살 때 무문관에 들어갔습니다. 휴일도 없고, 휴가도 없이 3년 6개월간 수행에만 전념했습니다. 매우 힘들었고 이 작은 공간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수도 없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무문관에 들어간 지 2년째 되던 해에 관세음보살 수행을 하기 시작한 후부터 자비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불법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수행을 해야만 불법과의 인연이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고, 그 후에는 매우 열심히 수행을 했습니다.

저 또한 까규파에 속한 1000여명의 구성원들을 이끌어가는 문제로 밤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 법문을 하러 다니기도 하고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도 있어서 이런 저런 일을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수행을 잘 못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계속 수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기도와 진언, 법문을 함께 하면서 지금도 계속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 행복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욕망을 자각하면 행복해지고 욕망을 자각하지 못하면 행복해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수행자들의 대부분은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행복은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이해를 제대로 하게 되면 자비심이 생기고, 자비심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줍니다.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가족들이 집착이나 아상으로 사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이해로부터 시작할 것인지, 집착과 아상으로 할 것인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저를 성취력 있는 보살로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업과 기도, 발원이 달라서 다른 곳에 이르렀을 뿐 여러분보다 제가 보다 좋은 업을 타고 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만 좋은 수행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보면 삶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불법을 수지하는 수행자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불법은 자기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생 모두를 위해 수행하는 것입니다. 수행만이 불법을 이해할 수 있는 길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선택해서 수행을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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