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국내외 불교학자 7명 연구논문 발표…수불스님 기조강연(불교신문 1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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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11-08-31 19:02 조회2,487회 댓글0건페이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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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불교학술원 종학연구소 주최로 열린 제2회 간화선 국제학술대회 모습. |
동서양의 간화선 연구자들이 한국불교의 정통 수행법인 간화선의 원리와 구조를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조명하기 한 자리에 모였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종학연구소(소장 종호스님)가 주최한 ‘간화선 그 원리와 구조’ 주제 국제학술대회가 오늘(8월20일) 오전9시30분 동국대 중강당에서 성대한 막을 올렸다.
이날 학술대회는 국내외 불교학자들은 물론 재가 불자들, 일반인 등 사부대중 500여 명이 참석해 한국불교의 수행법인 간화선에 대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종학연구소장 종호스님은 대회사를 통해 “지난해 학술대회의 성과에 이어 올해에는 간화선의 수행 원리와 구조를 살피어 간화선의 역동적 원동력을 탐구하고자 한다”며 “세계 여러 연구자들이 간화선을 실참하고 학문적으로 토론하는 국제학술대회가 간화선의 세계화와 체계화를 위한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동국대 이사장 정련스님과 김희옥 동국대 총장은 불교종립대학인 동국대에서 열리는 간화선 학술대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련스님은 “간화선 국제학술대회는 간화선의 학문화와 대중화를 통해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도모하는 시간이자 불교학의 메카가 되고자 하는 동국대의 의지가 투영된 자리”라고 강조했으며, 김희옥 동국대 총장 역시 “한국 간화선의 역사와 전통을 체계적으로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수불스님, “간화선, 한국 최고의 정신문화” 강조
‘간화선의 실체와 세계화’를 주제로 기조강연하는 수불스님의 모습. |
수불스님은 “선불교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인류를 무지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는 정신적 혁명을 불러일으켰으며 간화선은 부처님이나 신을 무조건 믿는 모습에서 벗어나게 했다”며 “이 땅에서 고스란히 보존해온 간화선이야말로 한국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정신문화”라고 말했다.
기조강연에서 이어 동국대 교수 혜원스님이 ‘당대선에서 송대선으로의 유동적 연변의 과정에서 나타난 선사상’을, 피터 그레고리 미국 스미스대 교수가 ‘둘 또는 하나의 구원론? 간화선과 종밀의 돈점 수행체계’를, 미리암 레버링 미국 테네시대 교수가 ‘대혜종고와 죽음의 화두’를 주제로 각각 논문을 발표했다.
이어 진행된 2부 학술발표에서는 로버트 버스웰 미국 UCLA 교수가 ‘간화선에 있어서 의정의 전환’, 모턴 슐터 미국 아이오와대 교수가 ‘중국 간화선에서의 염불 모티프의 사용’, 마천상 중국 무한대 교수가 ‘청초의 두 선승-옥림통수와 위림도패’, 황화년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가 ‘허운화상의 간화선 이론 천석’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간화선 학술대회에는 사부대중 500여 명이 참석해 동국대 중강당을 가득메웠다. |
불교학자들 뿐만 아니라 재가불자들도 참석해 간화선 수행에 대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
다음은 간화선 국제학술대회 수불스님 기조강연 전문.
‘간화선의 실체와 세계화’ 1. 간화선의 의의 선은 본래 완벽하게 드러나 있는 실체를 등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반야지혜와 무명업식이 본래 없음을 밝힘으로써, 단도직입으로 진리당처의 핵심오의를 드러나게 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인연있는 이들에게 참선을 통해 실질적인 수행과 깨달음의 문을 열게 하였다. 부처님께서 가섭 존자에게 물려주신 이심전심의 선법은 28대 조사인 보리달마에 의해서 6세기 초 중국으로 전해졌다. 보리달마가 전한 선법은 역대 조사를 통해 면면히 계승되었고, 당대에 이르러 조사선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조사선이란 깨달음을 완성한 역대 조사들이 중생들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성품을 바로 눈앞에 드러내 보여주신 법문이다. 그러므로 명안종사는 법을 물어오는 제자에게 지사문의와 기봉방할의 방법으로 지도하여 정법의 안목을 체득케 했다. 이러한 문답들이 어록으로 기록되고 전승되어, 송대에 이르러 1700 본칙공안으로 정형화되었다. 조사선은 그 뿌리를 중국 선종의 초조 보리달마에 두고 있으면서, 실제로는 육조혜느에 의해 제창되었다. 육조께서는 모든 사람이 지닌 자성을 직시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몰록 깨치는 돈오견성을 천명하였다. 이후 조사선은 마조도일과 석두희천을 거치면서 육조 문하에서 배출된 수많은 선승들에 의해 전성기를 맞았다. 조사선의 언하변오 전통이 후대로 내려가면서 퇴색되자, 남송시대의 대혜종고 선사는 현성공안에서 의심되어진 화두를 참구토록 한 간화선을 제창하였다. 간화선은 눈 밝은 선지식이 믿음을 낸 이로 하여금 화두 참구를 통해 참의심을 불러일으켜 돈오케 하는 수행법이다. 공안이 어록에 기록된 선대의 선문답이라면, 화두는 특정한 공안이 공부인의 내면에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응집된 것을 말한다. 객관적으로 전해오던 본칙공안이 공부인의 내면에서 의심을 일으켜 활구 화두가 되면, 혼침과 산란 및 온갖 역순경계를 물리치고 오로지 본래면목을 밝히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간화선을 조사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수행법의 원리는 동일하다. 수행자는 의심에 걸려야 하고, 그것이 점점 커져서 온몸에 꽉 차면, 시절인연 따라 타파되면서 돈오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선지식이 공안을 통해 공부인에게 화두를 걸어주고 결국 타성일편된 의단이 타파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간화선 수행이 오늘날 수행자에게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정확하고 빠르며 쉬운 간화선이 출현함으로써, 출.재가를 막론하고 누구나 일상에서 선을 공부할 수 있는 대중화, 사회화의 길이 열린 것은 인류에게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간화선을 잘 보존해온 한국 조계종단을 통해 간화선이 세계화될 시절인연이 열리고 있는 것은 축복해야 될 일이다. 2. 화두란 무엇인가? 화두는 공안에서 비롯된 의심이다. 공안이 어록이나 공안집에 기록되어 전해오는 1700여 “천가지 의심과 만 가지 의심이 다만 하나의 의심이다. 화두 위에서 의심이 타파되면, 천 가지 의심과 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타파될 것이다.” 공부인은 스스로 의문을 일으키게 한 공안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의심이 점점 커지면서 본격적으로 화두가 들려지게 된다. 이처럼 공안에서 비롯된 화두에 집중해야 한다. 화두가 제대로 들려져서 의심이 일어나면 활구가 된다. 곧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려 해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지만 생기지도 않는 의심을 억지로 하려고 한다거나, 화두가 잘 들려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밀어붙인다면 모두 사구인것이다. 활구의심인 화두가 역순경계에 관계없이 동정 가운데 들려진다면 의심하려 하지 않더라도 화두가 들려지는 의정의 상태가 형성된다. 박산무이 선사는 <참선경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정이 일어나면 그것이 뭉쳐서 한 곳에 엉켜 있게 되고, 그 의정이 깨지고 나면 생사심도 깨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화두를 붙들고 전심전력으로 몰입하여 생사관을 타파함으로써 일대사인연을 해결토록 한 것이다. 이렇듯 활구를 들고 공부를 지어간다면 온갖 역순경계를 만나도 더 이상 끄달리지 않게 될 것이다. 한번 더 말하자면 화두의 불꽃이 치성해지면, 공부인의 몸과 마음도 극단으로 치달아서 마침내 화두가 타성일편되어 의단이 독로하게 되고, 시절인연따라 무명업식이 본래 허망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원리대로 공안에서 비롯된 화두의 불꽃을 일으킬 수 있어야 간화선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간화선은 공안상에서 의심되어진 화두를 들고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 3. 선지식의 역할 모든 사람이 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연만 닿는다면 누구에게나 깨달음의 길은 열릴 수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눈밝은 선지식을 만나지 않으면 안된다. 명안정사는 전도몽상에서 깨어나 중도실상을 눈뜬 분이다. 공부인이 법에 대해 물어올 때, 눈 밝은 선지식은 고통의 원인이 번뇌를 일으키게 한 원인제공자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깨닫도록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마음속에서 번뇌가 불타고 있는 한, 아무리 지식을 채우고 착한 행동을 하더라도 고통의 뿌리가 뽑히지 않는다. 모두 번뇌망상 속의 일에 불과할 뿐이다. 선지식은 공부인으로 하여금 화두공부를 통해 번뇌가 본래 없었음을 확인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공부인이 선지식을 만나 화두를 들게 되면 필연적으로 칠통, 즉 무명업식과 만나게 되는 데, 그것은 칠흑처럼 어둡고 안개처럼 막막하다. 그 짙은 어둠 속에서 많은 경계에 부딪치면, 자칫 두려움이 몰려오고 겁이 나서 화두를 놓고 물러나기 쉽다. 이때 선지식은 옆에서 호법을 서주면서 공부인이 물러섬 없이 전진하여 정신적인 벽을 무너뜨릴 수 있도록 믿음과 용기를 북돋워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선지식을 만나면, 이 공부의 반은 성취된 것과 다름없다. 간화선 수행의 승패는 전적으로 선지식의 지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간화선 수행의 실제 1) 활구 의심이 걸려야 한다. 어떻게 하면 ‘참의심’을 할 수 있을까? 공안상에서의 의심이 일어났다면 당연히 화두에 걸려 공부하게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공안의 뜻을 알고 싶어서 갑갑하고 조급할 수밖에 없다. 그 갑갑함이 커져서 화두를 들고 공부하려는 의지 속에서 살펴진,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갑갑함이 사라지지 않고 점점 더 커져서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 활구를 들고 바르게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활구가 들려 공부의 방향이 제대로 잡혔더라도, 마치 여울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뱃사공처럼 힘이 든다. 그럴 때 최선을 다해 마치 밝은 해를 볼록렌즈로 비춰서 불을 얻듯이 초첨을 맞춰 집중해야 한다. 고인들은 이 일을 마치 쥐를 잡으려고 만들어진 물소 뿔로 된 덫 속으로 쥐가 먹이를 찾아 들어감에 따라 꽉 끼어서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곳에서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또한 마치 모기가 쇠로 만들어진 소동에 붙어서 주둥이로 계속해서 뚫어서 몸까지 뚫고 들어가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처럼 화두를 들자마자 처음부터 앞뒤가 꽉 막혀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인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 번 물면 이빨이 빠지든 목이 끊어지든 절대로 놓지 않는 사나운 개처럼, 화두를 한 번 들면 일념만년이 되도록 지독한 마음을 가져야 의심을 제대로 지어갈 수 있다. 물이 한 번이라도 100도로 끓어 넘쳐야지, 중간에서 오르내리기만 한다면 오랜 시간 공부해도 깨달음을 꿈속에서라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치가 이렇기 때문에,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철두철미하지 않고서는 결국 사구만 들고 앉아 있게 된다. 설혹 처음부터 활구를 들고 의심을 했어도 그 의심을 키우지 않고 들려진 화두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지켜보기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화두공부는 마치 팽이를 칠 때, 정중동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치듯이 의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첫 발을 잘못 내딘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된 방향으로 굳어지기 때문에 참으로 조심해야 한다. 공부인이 ‘활구를 들었느냐, 사구를 들었느냐?’하는 이 문제에 정직하지 않고서는 공부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2) 화두 의심이 의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처음부터 참의심이 한 줄기로 꿰어지면, 마침내 강력한 정신적 벽이 앞을 가로막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알 수 없었던 근본문제와 맞닥트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활구의심을 했더라도 신심이 돈독하지 않으면 정신적인 벽을 가깝게 느낒 못할 수도 있다. 앞의 경우라면 바로 벽을 향해 부딪쳐 가면 되겠지만, 뒤의 경우라면 용맹심이 발해질 때 머리로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오직 온몸으로 그 벽을 향하여 정면 돌파해야 한다. 이렇게 화두에 집중하면 할수록 어느덧 화두를 내려놓을 수조차 없게 된다. 고봉원묘 화상은 <선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심하고 의심하에 그 의심이 힘 덜리는 곳에 이르면, 그곳이 곧 힘을 얻는 곳이다.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케 되며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어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머리와 꼬리가 이어져서 한 조각을 이루어 털끝만한 틈도 없게 될 것이다.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고, 쫓아도 가지 않으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늘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이 마치 물살을 따라 배를 띄우는 것 같아서 전혀 힘들이지 않게 될 것이니 그것이 힘을 얻는 시절이다.” 이때는 화두를 스스로 보는 상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공부가 저절로 향상하게 된다. 이때 공부인은 화두가 들려지고 있는지 아닌지조차 모른 채 저절로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의정상태가 되면 힘을 쓰지 않아도 화두가 잘 들려지고 있기 때문에, 공부인은 마치 화두가 없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유하면 알약을 한 번 삼키면 약기운이 몸속에 퍼지듯이, 화두 기운이 이미 몸속에 퍼진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때는 독속에 든 절름발이 자라가 도망가지 못하듯이, 화두가 도망가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두가 들려지고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필요 없이 하던 공부를 계속해서 하면 된다. 화두가 힘들이지 않고 잘 들려지는데도 불구하고 미세한 번뇌 망상은 여전히 일어날 수 있다. 이럴 때 일어나는 망상을 없애고 공부하려 하지 말고 망상이 일어나더라도 내버려 두고 화두에 집중하면 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의정이 동정 가운데 하루 종일 흩어지지 않고 급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으면서 저절로 나타나는 때, 즉 호처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는 자연스럽게 들려진 화두를 잘 호지하고 그대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3) 의단 독로가 되어야 한다 화두의심이 의정화되고, 의정이 마침내 의단이 독로하게 된다. 마치 감옥에 갇혀 진퇴양난에 빠진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어찌 해 볼 도리도 없이 꽉 막힌다. 마치 독약에 중독된 것처럼 숨통이 막히고, 사방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옥죄어올 것이다. 고봉원묘 화상은 <선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심하고 의심하여 안과 밖이 한 조각이 되게 하여 온종일 털끝만치도 빈틈이 없어서 가슴에 뭉클한 것이 독약에 중독된 것과 같으며 또 금강권과 율극봉을 삼켜 꼭 내려가게 하려는 것과 같이 하여 평생의 갖은 재주를 다 부려서 분연히 힘쓰면 자연히 깨칠 곳이 있을 것이다.” 금강권은 가슴이 의단으로 꽉 뭉쳐서 온몸이 감옥에 갇힌 것처럼 강한 기운이 사방에서 짓누르는 것을 말한다. 율극봉은 의단이 뭉쳐서 밤송이처럼 목구멍에 걸린 것을 말한다. 그거시 목에 걸려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니까, 숨통이 막혀 갑갑하기 짝이 없게 된다.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고, 삼킬 수도 없는 밤송이를 삼키려고 애쓰다 보면, 어느덧 의단만이 홀로 드러나는 경계로 들어간다. 화두 공부가 익어 의단이 독로되면, 눈이 있어도 봉사 같고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처럼 된다. 꽉 막힌 감옥에서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을까? 여기에 이르러서도 처음부터 해온, 답 찾는 일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간해야 된다. 오직 화두에 더욱 집중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시절인연 따라 은산철벽이 무너짐을 스스로 보게 될 것이다. 4) 화두 참구 시의 주의사항 막상 화두를 들고 일념만년 하다보면, 엄청난 방해가 일어날 수가 있다. 공부를 방해하는 마군들이 있어, 공부인이 중간에서 생각을 일으키게 하거나 겁을 먹고 화두의심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고봉원묘 화상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때는 싸우는 것처럼 뜨겁게 소란하며, 어떤 때는 얼음처럼 싸늘하게 멍청하며, 어떤 때는 나귀를 끌고 우물에 들어가는 것 같으며, 어떤 때는 물길 따라 돛을 펴는 것과 같다. 이 네 가지 산란, 혼침, 역경계, 순경계의 마구니가 번갈아 서로 해치므로 드디어 도를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집을 잊고 살림을 잃게 한다.” 이런저런 경계 현상들은 모두 자기 업식이 스스로 지어낸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끄달려가기 쉽다. 크게 의심하고 크게 공부할수록, 방해도 따라서 커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어떤 방해가 일어날지라도, 화두를 놓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간화선의 생명은 오로지 화두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화두가 성성하면, 잠도 사라지고 산란심도 끊어진다.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간절하게 화두를 참구할 때 어떤 수마와 산란심, 그리고 역순경계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마치 여울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는 강하고 법은 약해서, 어떤 기운이 자꾸 앞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역경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힘든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알고 보면 오히려 공부를 잘 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만일 화두 공부를 하기 전의 상태였다면 힘을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화두를 참구할 때라면 천군만마 속을 단기필마로 죽기살기로 돌파하듯이 최선을 다해 싸울 수밖에 없다. 한편 맑고 고요해서 화두가 잘 들릴 때라도 문득 일어나는 경계에 끄달리면 자칫 화두를 놓칠 수가 있다. 그리고 앉아서 자주 존다거나 고요함에 머물게 되면 무기에 떨어지기 쉽기 때문에 오히려 공부가 잘 된다고 생각될 때 더욱 조심해서 화두를 간해야 한다.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경전상의 언구가 이해된다거나 불보살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경계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공부를 방해하는 허망된 모습에 불과하다. 이처럼 공부 중에 일어나는 병통은 화두를 집중하지 않는 데서 온다. 간절하게 화두에 집중하는 것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첩경이다. 5. 불속에서 연꽃이 피다. 의단이 독로하여 시절인연이 오면 순간적으로 의단을 타파하게 될 것이다. 그 통쾌함은 직접 맛본 사람만이 안다. 큰일을 마치고 난 뒤에는 꽉 막혔던 속이 텅 비게 된다. 온 몸과 마음이 새의 깃털보다 가볍고 앞뒤가 툭 터져 한없이 시원해지낟. 고봉원묘 화상은 <선요>에서 이때를 이렇게 묘사했다. “곧 허공이 무너지고 대지가 꺼져 사물과 내가 함께 없어진 것이 마치 거울이 거울을 비추는 것과 같았다. 텅 비어서 맑고 고요한 것이 끝 간 데가 없었다. 당장에 혼이 날아가고 넋이 흩어져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었는데, 그때 온몸이 가뿐함이 마치 120근의 짐을 벗어 버린 것과 같았다.” 화두가 타파되면, 마치 소나기가 내린 뒤 먹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몽땅 드러나듯 확연한 것이 시원하고 통쾌하다. 마치 꿈속에서 깨어난 듯 분명해진다. 그동안 알 수 없었던 공부상의 인연들이 드러나면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런 체험을 하게 되었을 때는 곧바로 선지식을 찾아가서 점검을 받아야 한다. 공부한 것까지도 내려놓고, 흐름에 맡겨 세월을 잘 보내야 한다. 늘 부끄러움을 아는 수행자로서 자세를 낮추고 정진하다보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다. 6. 선의 르네상스 오늘날 세계는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명실상부한 ‘지구촌공동체’를 형성하여 하나의 시공간 속에서 살고 있다. 과거의 한계를 뛰어넘어 실시간으로 정신적인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는 선을 통한 여유로운 삶을 전세계인들과 나눌 수 있는 시절인연을 불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의 IT 시대는 선의 르네상스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IT 전문잡지 <와이어드>의 창업자인 케빈 켈리는 ‘마음 비움’이야말로 미래 경영의 키워드라고 강조한다. 21세기 들어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어느 분야에서건 리더가 되려면, 급변하는 시대변화의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가일수록 자기 전문지식에 가려 새로운 사회 현상을 놓치기 쉽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오직 일어나는 그대로의 현상에 집중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음을 비우고 정신의 힘을 기르는 일은 비단 리더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종교를 막론하고 이미 명상이 보편화되어서 미국립보건원의 연구에 따르면 2007년에 2000만 명 이상이 지난 일 년 동안 최소한 한번 이상 명상을 체험해봤다고 하는데 이는 2002년의 1500만 명에 비해서 월등히 증가한 수치이다. 이런 명상문화의 자연스런 흐름을 <보보스-디지털시대의 엘리트>의 저자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1850년대 금맥을 찾아 미국으로 몰리던 골든러시에 비유하면서, 아울러 ‘정신적 수련’을 추구하는 문화적 트렌드에 맞추어 소울러시라 명명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웰빙 바람과 발맞추어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있으며, 어떤 종교를 가릴 것 없이 명상프로그램의 개발에 적지 않은 힘을 쏟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명상문화는 이 시대의 확실한 문화현상의 하나가 된 지 오래이며, 심지어 마인드 인더스트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한국은 그동안 경제, 정치 분야에서의 발전을 바탕으로 이제 문화적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명품을 생산해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또한 최근에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를 넘어 멀리 유럽에까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국은 먼저 IT(Information Technology) 기술을 발전시켰고, 이어 CT(Culture Technology) 기술을 개발해 한류 문화상품을 수출하고 있다. 이제 바야흐로 한국의 전통 정신문화에 잠재되어 있는 ST(Spirit Technology) 기술을 개발하여 세계에 알려 정신적 가치를 나눌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선불교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인류를 무지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는 정신적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의심을 통해 근본을 밝히는 간화선은 부처님이나 신을 무조건 믿는 모습에서 벗어나게 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의심이 아니라 의심을 깨트리기 위한 의심을 통해 깨달음의 눈을 여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르침으로 오늘날 인류는 더 큰 눈을 뜨고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새로운 문명세계에로의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이 땅에서 고스란히 보존해온 간화선이야말로 한국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정신문화 명품이다. 간화선 수행을 통해 세계인들이 무명을 밝히고, 보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절인연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최고 지성인들부터 시작하여 전 세계인들이 간화선 수행을 배우러 한국으로 몰려올 날이 머지않았다. 이번에 동국대에서 열리는 간화선 국제학술대회가 그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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