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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대장경 가치, ‘텍스트의 정확성’에 있어”(경향신문 1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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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그루 작성일13-09-04 13:20 조회2,3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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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세계문화축전 앞두고 국제심포지엄… “15세기 일본 국가기도에 활용” 학문적 가치 지적

한국인들은 세계기록유산인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을 주로 물질, 즉 ‘대장경판’으로 여긴다.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대장경이라는 사실과 1538종의 경전, 8만1258장의 경판이라는 방대한 양에 주목한다. 경판 원형을 유지한 과학기술도 대중적 자부심과 관심의 근거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경판으로만 여기는 대중의 인식은 20세기 초 국권상실과 피식민지 경험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한다. 조 교수는 “민족적 정체성과 자부심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것은 오감으로 파악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장경은 단순히 오래된 아름다운 목공예품이 아니라 13세기 고려인들의 지적 소산이며 학문적 결실”이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지적·학문적 역량으로 가능했던 텍스트의 정확성에 가치가 있다”고 했다.

‘고려대장경의 사상과 문화 그리고 체계’란 주제의 국제학술심포지엄이 해인사와 경상남도, 합천군 주최로 3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루이스 랭카스터 미국 버클리대 명예교수, 로버트 버스웰 UCLA교수, 바바 히사유키 일본 불교대 외래교수, 최영호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등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조성택 교수, 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등은 지정토론에 나섰다.

버스웰 교수는 1970년대 순천 송광사로 출가해 5년간 참선 수행한 ‘푸른 눈을 가진 스님’ 1세대다. 그는 제작 총책임자인 학승 수기(守基·1236~1251)를 부각시키며 고려대장경이 세계 지성사에 차지하는 중요성을 설명했다. 수기를 ‘문헌비평이라는 정식 기술을 최초로 실행한 선구자’로 규정하며 에라스무스보다 더 뛰어난 문헌비평가라고 평가했다. 버스웰 교수는 “수기가 남긴 총 30권의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高麗國新雕大藏校正別錄)’은 수천 개의 다양한 경전 판본을 어떻게 수집, 편찬했는지 전 과정을 세세히 기록했다”며 “추측성 교정도 했지만 ‘후대의 현자가 해결해주기를 바란다’는 경고를 달았다. 세속의 텍스트와 부처님 말씀을 구분하는 섬세한 선을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대하다”고 말했다.

버스웰 교수는 고려대장경의 영문표기인 산스크리트어 ‘Tripitaka Koreana’(삼장·三藏, 경·율·론을 모은 논장을 합해 부르는 말)를 두고 “대장경을 글자 그대로 ‘삼장(Tripitaka)’ 또는 ‘세 개의 바구니’, ‘세 개의 보관소’처럼 인도 삼장의 범주에 가둔 듯한 영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고려대장경의 방대함에 어울리지 않는 표기”라며 ‘Korean Buddhist Canon(한국의 불교 경전모음)’이나 원래 명칭 그대로 음사해 ‘고려대장경’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바 히사유키 교수는 일본이 국가 차원의 기도에 고려대장경을 사용했다는 점을 처음으로 밝혔다. 그는 “15세기 무로마치시대 때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를 통치했던 아시카가가(足利家)는 기도 시에 고려대장경을 전독했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일본의 안녕도 기도했다”면서 “이런 기도가 교토와 교토 중심의 수도권, 전국적으로 행해졌다”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일본이 조선에 고려대장경을 요청한 횟수는 65회다. 조선은 45질의 대장경을 하사했다. 아시카가가도 20질을 받았다. 바바 히사유키 교수는 “텍스트로서의 우수성이라는 학문적 측면, 또 하나는 경장 내에 윤장(경전을 보기 위해 법당에 만든 8개 면의 회전 장치)을 설치하여 한 번 돌리면 대장경을 다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얻을 수 있다는 신앙적 측면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대일본교정축각대장경과 대정신수대장경의 저본으로 고려대장경을 사용했다.

최영호 교수는 일제 식민지 시기 상당수 연구자들이 고려대장경에 문화적 정체성(停滯性)이나 타율성을 적용했고, 조성 주체나 성격도 왜곡한 문제를 지적했다. 최 교수는 “당시 상당수 연구자들이 고려대장경판을 송나라 ‘개보칙대장경’의 복각판으로 파악했다. 조성 주체를 최씨무인정권으로, 목적을 정권 안보로 파악해 몽골침략의 극복이라는 진호국가(鎭護國家)의 역사적 사실을 축소·해석했다”고 말했다.

랭카스터 교수는 “고려대장경 연구는 몇 개 분야에 한정해선 안 된다”며 “물질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을 포함하는 여러 분야의 협력만이 이 목판들의 성격과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학술심포지엄은 ‘2013 대장경세계문화축전’ 사전 행사로 열렸다. 축전은 9월27일~11월10일 해인사 일대와 대장경 기록문화테마파크에서 열린다.

사진 최영호·루이스 랭카스터·로버트 버스웰·바바 히사유키 교수(왼쪽부터)가 3일 오전 ‘고려대장경의 사상과 문화 그리고 체계’ 국제심포지엄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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