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자리이타 사상으로 인류의 행복을 추구하자”(불교신문1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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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그루 작성일13-12-07 21:13 조회2,241회 댓글0건페이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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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중국 하이난도에서 지난 11월27일 열린 제16차 한중일불교우호교류대회에 참가한 삼국의 주요 종교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삼국 대표단은 ‘자연재해 후 심리치료’를 주제로 불교의 대사회적 역할을 모색하며 문화교류 시간을 가졌다.
사진2 27일 남산사에서 열린 세계평화기원법회장에서 한국스님들.
사진3 지난 11월26일 열린 중국불교협회 환영만찬.
사진4 종단협의회장 자승스님이 중국불교협회측에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죄책감을
연기사상으로 치유하며
동체대비의 실천으로
유족의 심리적 스트레스 해소”
제16차 한중일불교우호교류대회가 지난 11월27일 중국 하이난도 산야(三竝)시 탕갈라 호텔에서 500여 불교지도자 및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올해 한중일대회의 주제는 ‘자연재해 후 심리치료’. 과거 세계 평화 등 추상적인 주제에서 한발 나아가, 불교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려는 시도였다. 대회를 한달여 앞두고 필리핀에 불어닥친 초강력 태풍이 수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지난 2011년 동일본 지역을 강타한 지진으로 원자로가 파손되면서 2차 원폭피해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 미국에는 허리케인 수 십 개가 한 번에 발생해 한 마을을 휩쓸어 버렸다. 세계 곳곳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손 쓸 수 없는 대형재해가 빈번해 지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 죽음의 고비를 넘겼지만, 삶의 기반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상처는 더욱 크게 남는다. 일본교류협회장 이토 유이신(伊藤唯眞) 스님은 “동일본 지진당시 3400여 명이 사망했다. 1년 후 사망 및 실종자는 2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혼자 살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가족을 잃고 혼자 남은 사람들에게 종교, 특히 불교의 역할이 매우 중대하다는 것이 이번 학술세미나 참가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한국측 발제를 맡은 천태종 총무부장 월도스님은 ‘자연재해 생존자들에 대한 불교의 역할’을 주제로 한 발제에서 “최근들어 서구사회에서 불교의 마음챙김과 고성제에 대해 이해를 하면서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하고 “불교의 생활전통과 생사관, 자리이타관의 회복은 자연재해 생존자들이 괴로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불교심리치료연구원장 서광스님은 자연재해로 인해 오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정상적이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공포, 슬픔, 무력감, 수치심, 자살충동 등의 심리를 설명하고 “희생자에 대한 종교적 위로를 통해 유족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명상을 연계한 심리치료를 통해 스트레스 장애를 상당부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제시했다.
잦은 지진에 노출되어 사는 일본 불교계의 발제에서는 보다 구체적 사례가 제시됐다. 일본교류협회 상임이사 사토 마스히로(佐藤益弘) 스님은 “일본에 ‘지진 천둥 벼락 화재 친아버지’라는 말이 있다. 지진이 가장 두렵다는 말로, 항상 대비를 하고 살지만 재해는 항상 다가온다”고 일본인의 재해에 대한 두려움을 설명하고 “일본인들에게 불교의 연기적 가르침은 매우 큰 마음의 위안이 되고 있다. 또한 동체대비의 정신으로 재해를 당한 사람을 돌아보는 사회의 손길은 상처를 회복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마음”이라며 불교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또 중국불교협회장 촤이닝(傳印)스님은 개막식 치사에서 삼국 불교의 우호발전을 기원한데 이어 “무상관념과 연기성공, 인과사상은 재민들을 도와 냉정학 객관적으로 자연재해를 인식하게 하며, 극단적인 정서를 적극적인 태도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중국불교계는 지난 2008년 이후 재해 민중을 대상으로 여러차례 심적 구조활동을 펼쳐 좋은 호응을 받은 바 있다. 이 경험을 나누며 학술적으로 발전시키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들은 하늘이 두렵지도 않은가”
강제징용ㆍ위안부 원혼이 묻힌 땅
한국불교대표단
조선인 강제징용 희생터
천인갱 찾아 원혼 ‘위로’
일본과의 마찰 우려한
중국 정부 천도재 불허로
비공식 위로 의식만…
올해 한중일불교우호교류대회에 92세의 노 보살이 동참했다. 20세 때, 남편이 강제징용으로 하이난도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고, 72년의 세월을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산 이강희 여사다.
아들 한광수 씨와 함께 하이난도를 찾은 이 씨는 지난 11월25일 천인갱(千人坑) 비석 앞에 섰다. 높은 담장을 둘러쳐 일반인의 접근을 막고 있는 천인갱은 잡초들만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그 중간에 조선족과 한국인 기업가가 세운 비석 4개가 덩그런히 놓여 일제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어찌 이런 천인공로할 만행을 저질렀단 말입니까. 그들은 하늘이 두렵지도 않습니까. 아버지, 오늘 당신의 영전에 꽃을 올립니다.” 1944년 남편이 끌려와 강제징용을 당한 땅을 밟은 이 여사는 비석 앞에서 추모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경기도 양평이 고향인 이강희 여사와 한광수 씨의 사연은 1941년으로 올라간다. 양평면사무소에 근무하던 고 한기석 씨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수감됐다. 당시 한광수 씨가 태어난지 4일만의 일이었다. 일제는 ‘조선보국대’에 들어가면 형기가 감형된다는 감언이설로 한기석 씨를 하이난도로 끌고 갔다.
일제의 철광석 수탈기지였던 하이난도에는 강도 높은 강제징용이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페이지초우라는 풀을 뜯어 죽을 끓여 먹으면서 겨우 목숨을 버텨야 했다.
그나마 병이 들거나 다쳐 노동력을 상실하면 가차없이 죽임을 당해야 했다. 마을 중국인 촌로의 증언에 따르면 “처음 파란색 반팔과 반바지 한 벌을 주고, 옷이 헤지면 속옷으로 일을 시켰다. 굶다 못해 마을사람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다가 그 자리에서 매맞아 죽는 조선인도 많았다. 병이 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죽였다”고 한다. 한기석 씨도 그렇게 죽임을 당했다. 일제가 패망한 1945년, 일제는 만행을 감추기 위해 커다란 구덩이를 파서 1000명이 넘는 조선보국대 징용자들을 생매장했다.
한국 불교계가 친인갱에서 위령제를 기획하자, 중국 당국이 제지에 나섰다. 일본과 정치적 마찰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란다. 결국 위령제 대신 몇몇 대표단만 찾아 간단한 의식을 하는데 그쳐야 했다. 결국 30여 명의 대표단만 천인갱을 찾아 반야심경과 축원, 헌화의식을 봉행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긴 생각을 하게 만든 시간. 조계종 호계원장 일면스님은 “어찌 이렇게 잔인한 일을 했을까”라며 가져온 생수를 비석에 뿌리며 영혼들을 위로했다.
중국에서 먼 땅 하이난도 산야시. 그곳에는 일제에 의해 생매장된 채 죽음을 맞은 수많은 조선의 원혼들이 ‘중국의 감시를 받으며’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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