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종교와 세뇌 그리고 종교전쟁 (불교포커스 1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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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작성일11-01-11 16:52 조회2,907회 댓글0건페이지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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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세뇌(洗腦, brain washing)다. 공산주의보다도 더 세뇌시키는 것이 종교다. 좋은 종교 교리로 세뇌시키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만,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리로 세뇌시키면 타 종교들과 갈등과 충돌 그리고 종교전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I. 국내 사례
1. 1920년 8월 27일, 경북 영주군 문정리에 사는 한 여인이 시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아침 저녁으로 상식(上食)을 받들던 중, 남편이 개신교를 믿게 되어 상식을 금하자 남편과 이 문제로 언쟁을 한 후, 남편의 불효한 죄과를 자신의 목숨으로 대속하리라 하고는 시어머니의 신주를 뒷동산에 매장한 후 부근 냇물에 가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유교와 개신교 간의 갈등이 한 집안에서 발생한 예이다. 부모나 처자식의 목숨 보다 오로지 기독교 신(神)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라는 교리(나 이외의 신을 모시지 말라)에 세뇌된 예이다.
2. 2004년 7월 2일 이명박 서울시장이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기독교 청년 학생 연합기도회’행사에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의 시민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서울의 교회와 기독인들은 수도 서울을 지키는 영적 파수군임을 선포한다.”라며 “서울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고 기도하는 서울 기독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합니다.” 라고 발언하였다. 이는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지 못한 행동이다. 또한 이는 신정(神政)정치를 시도하고 홀리시티 즉 성시화를 제일 먼저 실행한 칼뱅의 사상에 세뇌된 결과의 행동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기가 정치하면서 종교적 문제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자백한것이 세뇌된 증거이다.
3. 2006년 6월 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개신교 대규모 청년 부흥회에서 ‘어게인 1907인 부산’에서, 우리나라 지도 위에 유명 사찰 이름을 적고 “ 이 사찰들이 무너지게 기도하자”라는 구호가 나왔다. 이는 개신교 근본주의에 세뇌된 자들이 덜 세뇌된 자들에게 최면 내지 세뇌시키는 장면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4. 2010년 10월 27일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서울 봉은사와 대구 동화사 법당에 들어가 “땅 밟기”를 하고 이 절들이 무너지게 기도하는 장면이 MBC 저녁 뉴스에 방영되었다. 몇 년 전에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었던 것은 대구에 부처가 많아서 생긴 일이라고도 말했다. 이런 모든 행위들은 상식인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미친 사람의 행동도 아닌, 개신교 근본주의에 세뇌된 자들만의 행동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종교는 해석학(解析學)이라고 한다. 좋은 쪽으로 해석해야 좋은 종교이다. 연관도 없는 사실을 연관이 있는 것처럼 나쁘게 해석하는 종교 신자가 있으니 한심할 뿐이다.
5. 2010년 12월 7일 국내에서 발행하는 이슬람채권(수쿠크)에 과세 특례를 부여하는 내용의 조세특례 제한법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일부 의원들이 강력히 반대해 통과하지 못했다. 수쿠크란 이자를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개발된 금융상품으로, 투자자들은 이자 대신 배당금으로 수익을 분배 받게 된다. 이 법안은 수쿠크의 배당수익을 일반 외화표시채권의 이자수익과 똑같이 취급해 관련 세금을 면제해주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이슬람채권에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이 투자하는 채권들과 똑같이 대우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구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수쿠크 법안을 통과시키지 말라’는 전화를 그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해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압력을 넣었다. 이는 정교(政敎)분리를 분명히한 헌법에 위배되는, 종교를 정치에 끌어들이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이슬람을 적이나 사탄으로 보는 근본주의 개신교 교리에 세뇌된 자들의 행동이다
6. 위에서 열거한 것들 외에도 무수히 많다.
지방자치단체 등의 행정기관이나 관료들의 편파적인 종교 행위, 교육 현장이나 공공기관, 단체 등의 특정 종교 비호 및 폄훼 등, 특정종교에 경도된 신자들이 타 종교의 시설을 훼손하거나(장승 파괴, 단군상 파괴, 불상 파괴 등) 방화하는 행위, 성시화 운동, 홀리 클럽을 만들어 위헌적 정치운동하는 행위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II. 외국의 사례
지금 전 세계에 걸쳐 벌어지는 분쟁이나 역사 속의 분쟁 혹은 학살 가운데 종교와 무관한 것은 별로 없다.
1. 기독교는 분쟁이나 학살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기독교는 민족주의의 광기와 금권정치 그리고 제국주의 탐욕과 결합하여 십자군 전쟁, 청교도 전쟁, 30년 전쟁을 비롯해 남북미 원주민 학살과 정복, 유대인 학살, 보스니아계 모슬렘 학살 등을 자행했다. 지금도 동쪽으로는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서부터 서쪽으로는 북아일랜드, 남으로는 나이제리아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분쟁과 학살이 진행되고 있거나 이루어졌다.
세속 정치와 종교가 결합해 빚어낸 비극 가운데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는 정교회, 가톨릭, 이슬람이 뒤얽혀 빚어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톨릭계는 히틀러의 파시즘에 열광하고 있었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정교회 신도들은 대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열광하고 있었다.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도 정치 초년 시절부터 유대인은 그리스도의 살해자라는 오래된 기독교 전통(세뇌)을 이어받았다. 히틀러의 전기를 쓴 존 톨런드는 대학살 당시 히틀러의 종교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유대인이 신의 살해자라는 가르침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다. 따라서 단지 신의 복수하는 손 구실을 자처했기에 그는 양심의 가책 없이 유대인을 절멸시키려 할 수 있었다.”
전쟁은 경제적 탐욕이나 정치적 야심, 인종적 편견 그리고 종교적 신념 따위에 의해 벌어진다. 특히 종교적 신념은 학살이나 파괴, 약탈과 고문 등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 준다. 자신의 종교가 유일한 종교이며, 이단자들은 악의 무리이므로 죽어야 하고, 신의 병사들이 죽으면 순교자가 되어 신의 나라로 직행한다고 믿도록 세뇌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전쟁은 최고로 잔인하다.
2. 쿠르드족과 시아파 모슬렘을 학살한 사담 후세인, 아르메니아인의 대학살로 20세기를 연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후예들, 그리고 바미안 석불을 폭파한 탈레반, 이들은 근본주의 이슬람에 세뇌된 자들이다.
3. 베트남 전쟁은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의 사상전이기도 했지만, 고딘 디엠 정권의 기독교(가톨릭) 지배층과 불교의 서민층 간의 종교전쟁의 양상도 띄었다.
III. 근본주의를 세뇌시키는 교리
시카고대학은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전 세계 150명의 학자가 참여하여 모든 종류의 근본주의에 대해 연구하여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근본주의 교리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았다.
(1) 하나의 규칙은 모든 사람, 모든 삶의 영역에 적용돼야 한다. 교회가 국가 또는 삶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는 있을 수 없다. 하느님의 규칙은 땅의 법이 되어야 한다.
(2) 남성이 맨 위에 있다.
(3) 세상에는 올바른 시각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남녀 아이들의 올바른 역할도 하나다. 이런 시각과 믿음, 역할을 다음 세대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근본주의자들에게 주어진 지상명령이다. 가르칠 내용은 물론 가르치는 방식까지 통제해야 한다.
(4) 근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역사를 부정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거부한다. 시대나 환경 그리고 문화에 따라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 삶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경전에 기록된 그대로(文字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역사적 혹은 문화적 해석은 불가하다.
이 가운데 가장 무섭고 중요한 특징은 하나의 원칙, 신념만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원칙과 신념 외에 다른 것들은 거짓이라고 할 때, 차별과 배제 그리고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다른 원칙과 신념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그건 미개하기 때문에 계몽돼야 하고, 사탄과 한편이기에 절멸시켜야 한다. 종교적 근본주의가 과거 역사에서 정복 전쟁이나 인종 학살의 이념적 근거로 기능했던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이런 하나의 규칙이 모든 사람, 모든 삶의 영역에 적용돼야 한다고 가르치고 세뇌시키는 것 또한 큰 문제이다. 공사를 구별 못하는 성시화 운동, 어떤 종교의 환자가 오건 자기식 기도부터 하는 의사, 정신치료자의 종교를 주입시켜서는 안 되는 정신치료 장면에서도 치료자의 종교를 선교하는 행위, 공공 장소에서 확성기로 특정 종교를 선교하는 공해(公害)적 행위, 비기독교 신자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거나 기도하는 행위 등등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은 사례들은 모두 이 규칙에 세뇌된 자들의 행위이다.
이런 근본주의를 정치적으로 적용한 것이 제국주의이고 또 파시즘이다. 데이비슨 뢰어가 근본주의를 종교적 파시즘으로, 파시즘을 정치적 근본주의라고 설명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종교는 삶의 의미와 가치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해명하려는 ‘사실 체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실 체계가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황당한’것들이다.
종교의 다양성은 타자를 인정하고 차이를 수용하는 윤리를 요청하는데, 배타적 신앙은 이 윤리적 의무를 저버린다. 경전을 역사나 과학이 아닌 신화로 여긴다고 해서 그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경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대착오가 오히려 경전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으며, 반대로 경전을 신화적 은유와 상징으로 이해할 때 그 의미가 더 풍성해질 수 있다.
“십계명에 나오는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내용, 장애인이나 외국인의 성소 출입을 금하라는 내용, 노예는 주인에게 복종하라는 내용, 다른 신을 믿는 종족은 여자와 아이 심지어 가축까지 다 죽이라는 내용, 간음한 자나 동성애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는 내용….” 이런 내용들은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교훈적 의미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지 않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세뇌시키면 타 종교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IV. 세뇌 공장
1998년 6월 26일 제주 원명선원에 개신교 근본주의에 세뇌된 자(맹신자)가 침입하여 750여구의 불상을 훼손하였다. 불교계는 흥분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김경제 총무님이 불교계를 찾아가 사과함으로써 일단 무마되었다. 그 후 개신교계 주간신문인 <00나라>라는 신문은 사설에서 KNCC의 유감성명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진정한 기독교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두렵고 떨린다”며 “종교다원주의가 팽배한 가운데서 기독교회는 우상종교가 정당화되는 것을 막고 복음을 전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전국토 우상제거 앞당기자’라는 제목아래 훼불행위를 부추겼다. 이어 이 사설은 “금년 장마철에 일어난 게릴라식 폭우를 잘 검토해보면 그 곳이 대부분 최대불상, 최다불상 등이 있는 지역이었다는 견해도 있다”고 강변한 뒤 “우상의 목이 잘린 제주에는 피해가 없지 않았던가”라며 훼불행위를 두둔하였다.
몇 해전 지진 해일로 동남아에서 30여 만 명이 희생됐을 때 우상을 숭배하는 집단에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설교하는 유명한 목사도 있었다. 게다가 모슬렘이 가장 싫어하는 이슬람 지역 내의 선교를 전투적으로 줄기차게 벌이는 등 모슬렘을 자극하는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이와 같은 행위는 선교를 넘어 종교침략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와 같은 목사, 교회 그리고 메스컴 등이 세뇌시키는 공장이다.
문제는 이런 타 종교를 해코지 하는 사건들이 갈수록 ‘우발성’을 벗어나 ‘조직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 뒤에는 세뇌공장인 근본주의 개신교 교회나 ‘성시화 운동’이라는 기독교계의 거대한 프로젝트가 있다.
V. 종교적 세뇌가 잘 되는 이유
종교는 죽음과 내세를 가지고 협박 공갈치므로 세뇌에 걸려들기 쉽다.
도킨스는 종교를 정신의 바이러스(종교 밈)라고 주장한다. 종교라는 밈(meme)(대물림 가능한 정보의 기본 단위, 혹은 문화와 관련된 복제의 기본 단위 = 세뇌된 기본 단위)은 유전자와 마찬 가지로 복제가 된다. 인간의 정신을 숙주로 삼아 자신의 정보를 복제하는 기생자이다. 인간의 정신은 세포와 컴퓨터만큼이나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와 컴퓨터가 본래의 작동을 멈추고 그 바이러스의 명령에 따라 엉뚱한 행동을 하듯, 정신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은 그 바이러스를 더 많이 퍼뜨리는 행동을 하게 된다.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에 침투, 장악, 복제의 명령어가 내장되어 있는 것처럼 종교의 가르침 안에도 침투, 장악, 복제의 명령이 담겨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같은 예수의 명령이 그것이다.
도킨스는 종교적 믿음 체계가 주로 부모에서 자식으로 전달되는 것에 주목한다. 아이들의 뇌에는 “뜨거운 불이 이글거리는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아무개를 믿어야 한다.”라든지, “무릎을 꿇고 동쪽을 바라보며 하루에 다섯 번 절을 해야 한다.”등과 같은 코드들이 쉽게 기생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입력을 올바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될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
이렇게 세뇌된 광신적 형태는 다른 세포의 운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복제만을 수행하고 있는 암세포에 비유될 수 있다. 그리하여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는 몇 년 전 <뉴욕 타임스>에서 “종교가 있든 없든 선한 일을 하는 좋은 사람과 악한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악한 일을 하려면 종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은 종교적 확신을 했을 때(세뇌되었을 때) 가장 철저하고 자발적으로 악행을 저지른다.”고 파스칼은 종교적 신앙의 야만성을 이미 오래 전에 경고한바 있다.
VI. 근본주의 종교의 역사
사막의 종교, 유일신의 종교는 태생적으로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다.
아브라함의 셈족은 질투와 분노의 신을 창조했다. 유대교의 야훼, 기독교의 여호와 하느님, 이슬람의 알라,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신이었다. 셈족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그의 신에게서 받은 첫 번째 계명은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라는 것이었다.
이들의 신은 여든이 되어 낳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슬람 경전에선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다. 이삭에 빠져 신을 잊고 있지 않을까 시험하려는 것이었다. 자식이나 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신의 요구는 가혹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순순히 철모르는 아들을 제단에 올렸다. 이로써 믿음의 조상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신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은 셈족의 전통이 되었다.
그런 아브라함이기에 이삭이 생기자 첩에게서 얻은 아들 이스마엘과 그의 어미를 광야로 내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이주했을 때 미색의 처 사라를 미혼인 것처럼 파라오에게 바치는 걸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브라함 자신은 파라오의 총애를 받아 부자가 되었다. 신은 누가 잘못했는지를 떠나 파라오와 그의 일가에게 전염병을 퍼뜨려 몰살시켰다. 원인 제공자 아브라함은 그가 선택한 자이기에 화를 면했다.
모세에 이르면, 신은 더욱 거칠어진다. 질투를 넘어서 분노하고 복수하며, 학살을 주저하지 않는 신으로 등장한다. 세 종교가 추천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모델인 모세는 세 종교의 근본 교리를 세우고 계율을 제시했다. 모세가 시네산에 올라가 십계명이 적힌 석판을 들고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를 경배하고 있었다. 분노한 모세는 신의 이름으로 금송아지를 갈아 부족에게 그 가루를 마시도록 하고, 사제 부족인 레위 인들에게 칼을 들어 칼끝이 닿은 대로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 칼에 죽은 자가 3,000여명에 이르렀다. 신은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을 배반한 이들에게 전염병까지 내리겠다고 공언했다.
그 신에게 이민족 혹은 이교도는 악마였다. 모세의군대가 제 땅에서 평화롭게 살던 미디안의 남자들을 모두 살해하고, 다만 여자들과 아이들을 살려뒀을 때, 모세는 신의 분노를 대신하여 남자 아이들과 처녀가 아닌 여자들은 모두 죽이도록 명령했다. 구약 성서에 나타난 최초의 대학살이었다. 신의 적개심에서 비롯된 이런 학살은 구약 시대를 거치면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아모리족, 가나안족, 히타이트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 등은 신의 민족에 의해 제 땅에서 쫓겨나거나 씨가 마르는 학살을 당한 민족이었다. 여호수아는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통해 다른 민족을 내쫓고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때의 잔혹성은 이른바 예리코 전투에 대한 구약의 기술에서 잘 드러난다. 여호수아는 “남녀노소, 소와 양,, 나귀 등 도시의 살아있는 것들을 칼로 철저히 몰살시킬” 때까지 쉬지 않았다. 서구 역사에서 되풀이된 반인륜적 범죄인 인종 청소의 전형이었다.
이와 같은 역사를 가진 유일신교 가톨릭은 오늘날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완강한 근본주의적 경향이 남아 있지만, 제2차 공의회를 통해 역사적 대전환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하여 토착화 신학과 종교 간 대화의 길을 적극 모색해 오고 있다. 1965년 성안된 가톨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에는 이런 선언이 있다. “교회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온갖 차별과 혈통이나 피부색이나 사회적 조건이나 종교적 차별의 이유로 생겨난 모든 박해를 그리스도의 뜻에 어긋나는 것으로 알고 배격하는 바이다(비그리스도인에 대한 선언)”.
가톨릭의 적폐를 극복하고자 종교개혁운동이 벌어졌지만, 그 결과 출현한 개혁교회 역시 독선을 버리지 못하고 가톨릭의 잘못을 되풀이했다. 루터는 유대인을 독사의 무리라고 비난하며 “모든 유대인은 독일에서 축출해야 한다.” “유대인을 교수형에 처할 때는 일반인보다 여섯 배 높은 곳에 매달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장 칼뱅은 가톨릭의 종교재판과 동일한 형태와 내용의 종교재판소를 운영했다. 특히 정통과 이단에 대한 이분법으로 말미암아 칼뱅주의는 지금도 불화와 충돌의 화약고 구실을 한다.
16세기 중반 제네바에서 이른바 홀리시티(Holy City, 성시) 실험을 한 칼뱅은 종교 권력과 세속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쥐고 신정(神政)정치를 펼쳤다. 그가 통치하던 5년간 칼뱅은 인구가 13,000여 명에 불과하던 제네바에서 종교 재판을 통해 58명을 사형했고, 76명을 추방했다. 사형된 사람 가운데 35명은 화형을 당했다. 한때 그와 함께 성시화 운동을 하던 페랑이아 버틀러 등은 쫓겨나거나 아니면 제 발로 제네바를 탈출했고, 그의 신학적 경쟁자인 세르베투스는 칼뱅의 직접 고발로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에 처해졌다. 세르베투스는 삼위일체설과 유아세례를 부정했다는 혐의였다. 그의 예정설을 부정하는 사람은 대부분 극형에 처해졌고, 그의 실상을 위선이라고 비난한 사람도 극형을 당했다. 세례받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노파와 여섯 아이의 어머니를 처형했으며, 그의 신학 이론을 반대한 사람은 국사범으로 몰았다. 고문 방법도 가톨릭의 마녀재판 이상이어서, 발바닥을 불로 지지거나 사지를 밧줄로 잡아당기는 고문, 온몸을 칼로 난자하는 고문, 해충들에게 뜯어 먹히도록 하는 고문을 가했고, 자살을 막으려고 밤낮으로 손뼉을 치게 하기도 했다.
제네바 시민은 모두 가정생활까지 사찰 당해야 했고, 싸움을 했다거나 투정을 부렸다거나, 춤을 추고 술을 마셨다거나 하면 가차 없이 투옥됐다. 이를 위한 근거가 교회 규정이고, 이 규정을 집행하는 집단이 장로회였다. 장로회는 일 년에 한 번 이상 각 가정을 조사할 수 있었다. 그가 통치하던 기간 중 제네바에선 춤과 술은 물론 음악과 연극 따위가 모두 사라졌다.
칼뱅이 집대성한 교리는 개혁교회와 장로교를 통해 계승되고 있는데, 오늘날 기독교 근본주의의 뼈대를 이룬다. 영국 성공회의 온건한 종교 개혁에 반대해 혁명을 일으킨 청교도 역시 칼뱅주의 일파였다. 스코틀랜드는 16세기 중반 장로교 신조가 채택되어 장로교 국가가 되었고, 북아일랜드로 건너가 정착한 신도들로 말미암아 북아일랜드는 아직도 분쟁 지역으로 남아 있다. 영국의 청교도는 성공회의 핍박에 밀려 북미대륙으로 이주하는데, 지금까지 칼뱅주의 근본주의적 교리를 유지하는 보루 구실을 해 왔다. 이들은 세속의 권력과 법 위에 그리스도의 율법을 두고, 그에 복종하는 것을 최고의 의무이자 덕목으로 삼았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에게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지옥의 묵시록이었다.
청교도들 역시 처음 북미 대륙에 정착할 당시 원주민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원주민에게서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잠잘 곳을 얻었다. 그러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그들의 생명까지 빼앗는 침략자, 학살자로 돌변했다. 당시 교회와 성직자는 이주민 사회의 중심 구실을 했는데, 칼뱅주의의 독선에 젖어 있던 목사들은 원주민을 단지 이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신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이나 영혼조차 없다고 설교(세뇌)했다. 이런 믿음에 따라 이주민은 아무런 가책 없이 원주민을 내쫓고 죽였다. 중남미에서 가톨릭이 했던 것보다 더 심했다. 그 결과 최초의 이주민이 북미 대륙에 발을 디딘 후 300여 년 만에 북미 원주민의 대다수 부족은 멸종했다. 살아남은 원주민 역시 황무지와 다름없는 곳에 수용돼 살고 있다.
청교도들은 북미 원주민에게 한 것과 똑 같은 일을 아프리카 흑인에게도 했다. 그들은 노동력을 착취하려고 지난 300여 년간 아프리카에서 1,200만 ~1,500만 명의 흑인을 잡아 와 북미 대륙은 물론 중남미에 노예로 팔았다.
오늘 날 한국 사회에서 유독 개신교 보수주의(근본주의) 계통의 교회만이 타 종교들과 충돌이 있다. 개신교는 1882년 조미조약을 계기로 ‘미국의 종교’로 들어왔다. 미국의 보수적인 선교사들이 전해준 근본주의 신학과 신앙의 영향으로 초기부터 전통문화 및 전통종교와 조화로운 관계를 맺기보다는 배타적이고 정복주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특히 개신교의 공세적인 선교 활동은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1893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였던 무어(F.Moore)는 북한산의 한 사찰에서 불상을 훼손하였다. 그는 주지와 대화하는 중에 불상이 우상임을 증명하기 위해 불상 하나를 쳐서 넘어뜨렸다. 무어 선교사는 고종 황제에게도 전도하기 위해 개인적인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참신(神)을 예배하고 거짓 우상을 버릴 것”에 관한 소책자를 동봉하여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조선정부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주한 공사는 무어에게 주의 조치를 주었다.
초기 한국 교회를 지배하던 신학이, 바로 20세기 초 근본주의-현대주의 논쟁을 경험한 미국 교회를 보고 오히려 보수 반동으로 되돌아선 사람들과 선교사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한국 교회의 보수주의 성향은 초기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기초가 세워졌다. 이들은 지역을 나누어 선교를 담당했다. 함경도를 담당한 캐나다 선교회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의 선교사들은 대부분 신학적으로 보수적 배경을 가졌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 기독교계의 주류 교단이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던 1920년대 이전에 건너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복음과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독한 선교사들이었다. 당시 신학적인 논의를 객관적으로 다룰 능력을 갖춘 선교사들도 별로 없었다.
한국 교회의 보수적인 신학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박형룡(1897-1978) 목사나 한경직 목사는 평안도 출신으로 미국 북장로교의 영향 아래 있었다. 미국 주류 교단이 서로 주도권 싸움을 벌이던 1920년대에 미국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신학으로 인한 교단 분열의 부정적 결과를 잘 알고 있었다. 이들에게 보수주의 신학은 교회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통일성을 유지시켜 주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나 그 신학 때문에 교단이 수도 없이 분열된 것 또한 아이로니컬 하다.
이와 달리 오늘날 진보적이라 알려진 기독교 장로회의 상황은 좀 다르다. 초석을 놓은 김재준(1901-1987) 목사가 함경도 출신이다. 이 지역은 성서 비평학을 비롯한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캐나다 선교회가 담당한 곳이어서, 일찍부터 자유주의 신학에 노출되었다.
미국 교회가 1920년대에 겪은 교단 내 주도권 싸움을 우리는 1950-1960년대에 겪고, 교단 분열로 마감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교회를 지배하게 된 보수주의 신앙은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이 활개칠 수 있는 아주 좋은 마당이 되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론, 사이비 종교 운동이 근본주의 기독교를 망하게 만들 것이다.
오늘날 한국 신학계는 ‘현대 이후(post-modern)’의 신학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한국 교회의 대부분은 여전히 ‘근대 이전(pre-modern)’인 중세를 살아가고 있다. 교회는 여전히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 이전의 신학 틀을 여전히 고수하는 보수주의 신학이 지배하고 있다.
당대의 지식이나 상식을 거슬렀던 신학은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못 하거나 반발에 부딪혀서 결국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지동설이 기독교가 마주친 제1의 파도였다면, 진화론은 제2의 파도, 정신분석학은 제3의 파도였고, 인지 과학과 뇌과학은 이제 기독교가 마주치는 제4의 파도(쓰나미가 되든지 핵폭탄)가 될 것이다. 제4의 쓰나미는 신에 대한 믿음이나 종교적 경험을 자연주의적 방식(자연과학적 방식)으로 설명하면서 기독교의 핵인 신과 영혼 등을 해체해 버릴 것이다.
가톨릭은 위에 열거한 과학과의 충돌에서 결국은 무릎을 꿇고 과학을 받아들였다. 개신교 근본주의도 항복하지 않으면 결국 자멸하고 말 것이다.
오늘날 근본주의 개신교파의 정치세력화 운동은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은 1970년대 기독교 우익(Christian Right), 곧 근본주의자들이 정치세력화 하면서 보수당의 강력한 이익집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조지 W. 부시와 네오콘, 그리고 기독교 우익의 유착은 1973년 타계한 독일계 철학자 Leo Strauss에 영향을 받은 시카고대학 출신들과 기독교 우익이 “정부는 하나님의 법을 만들어 미국 사회를 넘어 널리 보급함으로써 사회의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한 도구이다”라는 하나의 목적을 공유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치에 대한 종교의 자유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은 정치적 힘을 이용하여 오히려 종교에 대한 정치의 중립성을 훼손시켜 특정 종교의 자유만을 확보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오늘 날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교회는 이와 같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성시화 운동이나 뉴 라이트(New Right)운동과 같은 정치운동을 벌리고 있다.
개신교계의 진보진영은 교회 개혁과 더불어 이웃 종교들과의 평화 공존을 지향하는 종교 간 대화운동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보수진영은 교회 성장과 교세 확장에만 관심을 가질 뿐 이웃종교와의 연대나 대화에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근본주의 개신교가 이러한 태도를 고수하는 한 한국 사회의 종교갈등과 사회갈등은 해소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근본주의 개신교의 존립 자체도 부정적 효과를 초래할 것이다.
VII. 대응
1. 법적 대응.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에는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은 다양한 판례를 통해 정교분리의 사회적 합의를 내재화하고 있고, 일본이 매우 구체적인 법령으로 사회적 기준을 마련한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사회는 이 문제에 대한 제도의 취약함은 물론 사회문화적 검토와 합의의 경험도 일천해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2008년 개정된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9조 2항에 의하면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종교 등에 따른 차별 없이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공무원 복무규정만으로는 안 된다. 이것 외에 ‘종교차별금지법’이나 ‘종교전쟁 예방법’도 만들어야 한다. 성희롱(sexual herrassment) 금지법이 있듯이 종교희롱(religious herrassment : 원하지 않는 자에게 선교하는 행위, 공공장소에서 선교하는 행위 등) 금지법도 만들어야 한다.
공립학교 뿐 아니라 국가 재정 보조를 받는 종교사립학교도 특정 종파의 종교교육을 금하는 법도 만들어야 한다. 일본과 불란서에서는 종교사립학교에서도 특정 종파 교육은 할 수 없다. 미국 역시 엄격한 분리(공립학교 종교교육 불가)가 특징이고, 영국은 90년대 이후 보편적 영성교육으로 종교교육을 전환했다.
2. 불교신자들의 자성.
불교는 고려 이후로는 힘을 잃었다. 조선조 시대에는 유교에 밀려 탄압받았고, 일제 시대에는 식민지 생활에서 허덕였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장노 대통령의 기독교 우대정책으로 힘이 없었으며, 비구 대처의 싸움으로 안정이 되지 않았다. 최근에 와서야 겨우 종단의 안정과 재가 불교 신자들이 힘을 합하여 새로운 불교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참여불교 재가연대의 박광서 교수 같은 재가불교 선구자가 등장하였다. 이때 우리 불자들은 정신을 차려 한데 뭉쳐야 한다. 불교의 앞날을 스님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동참하여야 한다. 기복불교도 중요하지만 과학적 불교를 공부해야 한다. 기독교의 장단점도 가르쳐야 한다. 기독교를 모르고는 근본주의 개신교에 세뇌된 자들에 설득 당하고 만다. 훼불행위 등이 발생하였을 때는 적극적으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야 한다. 메스컴이나 신문 등은 이런 문제를 다루기를 꺼리고 있다. 한국사회는 공적 갈등을 합리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개인들 간의 갈등으로 만들어 버리는 갈등 사사화(私事化)기제를 발전시켰다. 종교적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방식 역시 그랬다. 훼불사건을 개인적인 문제로(미친 한 개인의 미친 행위) 유야무야 덮어버렸다.
그러므로 인터냇이나 트위터를 더 많이 이용하여야 한다. 재력이 있는 불자들은 메스컴 사업에도 진출하여야 한다. 또한 일반 불자들은 현재에 있는 불교 메스컴에도 적극적으로 후원하여야 한다. 기독교는 정당을 만들어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불교는 정당은 만들지 않더라도 선거 때 근본주의 개신교 신자는 찍어주지 말아야 한다. 소고기 수입 반대나 4대강 사업 반대 같은 정치운동은 종단차원에서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진보적 개신교, 가톨릭, 유교, 원불교 등 다른 종교인들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근본주의 개신교의 만행을 규탄하여야 한다. 또한 ‘종교는 감히 비판해서는 안 될 특별한 무엇(聖域)’ 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일반인들에게 일깨워 주는 ‘운동’도 벌여야 한다.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 없는 정의는 무력함임을 알고 힘 있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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