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눈속의 발자국(책소개) “禪에는 ‘비불교적 길’이란 없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선정화 작성일11-06-26 18:58 조회2,207회 댓글0건

본문

성엄스님 지음/ 대성스님 옮김/ 탐구사

13세에 출가 약관 30세의 나이에 쓴 자서전이 중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들인 성엄(聖嚴)선사〈사진〉. 1993년 선사가 쓴 인생역정 <성엄법사 학사역정>은 23만부의 기록적 베스트셀러였다.

자서전 <귀정(歸程)>은 수행자의 눈에 비친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의 혼란스런 중국사회를 온 몸으로 관조하는 특유의 매력이 가득하다. 이제 미국으로 무대를 옮긴 그는 영문판으로 네 번째 전기를 냈다. 그가 주지를 하던 뉴욕 ‘동초선사(東初禪寺)’에서 함께 선 수행을 하던 미키 데선드 씨가 공격적인 대담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고, 그의 일대기이며 선 수행 지침서인 이 책을 남겼다.

禪은 모두 받아들여 어떤 환경에도 적응

출가인이라면 압박에 대처할 줄 알아야

혹독한 삶의 여정만큼 대담자의 질문도 적극적이었다. 그만큼 답변 내용도 구체적 행태를 파고들었다. 풀로 엮은 신발을 신고 다닌 학창시절부터 낭산(狼山) 광교사에서 행자수행을 시작하는 과정의 기록은 1930년대 중국의 비운을 그대로 닮고 있다.

당시 중국 사찰의 현황을 그의 눈으로 읽는 맛이 독특하다. 젊은 수행승은 조석예불을 하고 나이 든 스님들만 좌선을 하며, 500배 참회의 절과 사찰에서 공부는 유학과 불교경전 두 가지를 비슷한 분량으로 병행했다는 사실 등이 구체적이다.

   
 
출가수행승에게도 충성과 책임이라는 유교 가치관을 깊게 심어준 교육방식이었다.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생각과 행동의 조절, 절도와 예의있는 행동, 행위의 장단점을 성찰하는 관념의 주입 등이 비중있는 교과목이었다. “세상과 부드럽고 자애롭고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는 법, 유교적 책임과 충성 의식은 이후 내 삶을 형성하면서 내가 받고 받아들인 불교와 딱 들어맞게 됐다.”

폭압적 일본 패망이후 국민당과 공산당의 치열한 내전 상황에서 스님들이 겪었던 공포 분위기, 완전히 텅빈 법당 불전함, 이제 그는 낭산의 상하이 분원(포교당)으로 건너가기 위해 배를 탔다. 낭산의 보탑보다 훨씬 높은 33층짜리 국제호텔을 처음 겪어본 경이감에 외국인들은 마법적 힘을 가진 초능력자였다.

애초 선찰(禪刹)이던 대성사에서의 자력갱생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과 수행 과정은 육도(六道) 중생의 고통과 호흡을 맞추며 천도 의식의 소중함에 진일보하게 된다. 아울러 처절한 하층민들의 삶과 연결되면 마약의 공급처가 된 사찰의 처연한 운명과 사찰경제의 흥망성쇠도 실감나게 기술됐다.

이후 대학과정에 해당되는 경전공부는 정안사 불학원에서 수학한다. “마음의 이론에 관한 문헌들은 불교에 대한 아주 깊은 이해를 가진 심오한 철학가들이 쓴 것이었다.” 처음에는 여기에 대한 회의감이 컸다. 전통적 교육에 따라 무조건 외우는 방식에다 각 종파 특유의 용어를 그대로 외우므로 지적 발전과 토론의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차후 암송교육의 우수성을 깨달았다. “예전에 배웠던 것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점차 내 나름의 창조적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공산당이 상하이에 들어온 1949년 국민당군의 군복을 입고 대만으로 이주하고, 군인 훈련 과정에서 몇 차례 죽음을 고비를 넘기고 장교 복무 중 영원굉묘(靈源宏妙)스님을 만나 ‘수면 요가’의 실체를 보게 된다. 그는 그 만남은 ‘선근(善根)’이라 표현했다. “선근이란 우리가 전생에 수행을 했고, 내 생애에도 부지런히 수행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1960년 30세가 되던 해 군을 제대하고 중국불교문학관 동초스님 수하에서 예불 좌선을 기본으로 채원(菜園)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때 <화엄경> 80권 <열반경> 40권, <대품반야경> 600권을 읽었다. 은사 동초스님은 “출가인이라면 압박에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며 “향판아래 조사 난다(香板下出祖師)”를 가르쳤다. 여기서 ‘올바른 태도 배양, 속인과 다름 위의(威儀) 유지, 경박한 말과 잡담 금지’ 등의 출가인 교육에 필요한 기틀을 마련했다.

일본 릿쇼(立正)대학 박사학위를 거쳐 미국불교회 초청으로 1975년 뉴욕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한 그는 브롱크스의 대각사에서 선불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선은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으며 교조적 관점이 없다”는 관점에 철저하며 “선에는 비불교적 길이란 말이 없다”는 말을 유행시키고 2009년 대만에서 입적했다.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