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이수근은 지금처럼 인기를 누리지 못했던 10여년 전부터 자용스님을 스승으로 모셨다. 스님은 “유명해지면 마음이 변하는 연예인들을 많이 봤지만, 우리 수근씨는 늘 변함없이 순수하고 착하고 멋지다”고 했다. 지난 2월7일 바빠서 절에 가지 못하는 이수근씨를 위해 자용스님이 직접 그의 서울 상암동 집을 방문해서 시간을 함께 했다. 신재호 기자

이수근과 자용스님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스님이 “제발 하루에 담배 여섯 개피씩만 피세요!”라고 호통치면 “예전엔 두 갑 이상이었지만, 요즘엔 한 갑밖에 안피워요. 이잉~”이라고 응석을 부린다. 그러면서 내뱉는 거침없는 한마디. “스님! 대마초 하는 것보다 낫잖아요. 히히~.”

바로 그때 순간포착. “수근씨, 내가 다리 떨지 말라고 했지요!” “알았어요 스님 알았어요…무서워용…” 개그맨 이수근(38)씨와 지난 2월7일 그의 집근처 찻집에서 만난 자용스님(평창 극락사 주지)은 모자(母子)지간 혹은 친구사이처럼 정겹다.

얼마전 왼쪽 다리를 다쳐 기브스를 한 스님에게 이번에는 이수근이 야단이다. “아이고 스님, 제발 조심조심!…스님 혼자서 이것저것 다 챙기시랴 이리 뛰고 저리 뛰시다가 툭하면 다치고 툭하면 감기에 몸살에…아무튼 내가 매니저 하나 구해서 스님 곁에 둬야 할까봐.”

이수근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스님, 올해는 제발 기도하시고 포교하시는 것도 좋지만 그런 것들 조금 줄이시고, 건강에 신경 좀 쓰세요. 뭐니뭐니해도 건강이 제일 중요합니다.”

스님이 질세라 말한다. “남말하지 마시고 수근씨 일이나 줄이세요. 하나뿐인 몸으로 그렇게 많은 스케줄을 어찌 감당하누. 수근씨 출연하는 ‘청춘불패’까지 보느라 요즘 밤잠까지 설친다니까.” 자용스님은 이수근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라면 텔레비전을 켜놓고 잠드는 한이 있더라도 ‘본방을 사수’하는 열혈팬이다. 스님에게 이수근은 인기개그맨이기 이전에 피붙이 아들같은 유발상좌다.

1994년 여름 호랑이처럼 무서웠던 스님의 첫인상

지금은 지친 마음 쉬어주는 어머니처럼 따뜻…

두 사람의 인연은 2004년 여름 시작됐다. 스님이 사는 평창 극락사의 여름수련회 레크리에이션강사로, 이수근이 초빙됐다. 원래 ‘달인’ 김병만의 몫인데 바쁜 스케줄 관계로 한가한(?) 김병만의 친구 이수근이 ‘대타’로 보내진 것.

극락사에 찾아갈 당시 스님과 이수근의 대화. “스님, 극락사를 찾아가려면 어떻게 하나요?” 지금처럼 내비게이션이 흔치 않던 시절이다. 스님은 “평창으로 오시면 됩니다”라고만 답했다. “아니 스님, 평창 어디로 가야 하는데요?”

그러자 스님은 또 “평창중학교 앞으로 오세요”라고 짧게 답했다. “아니 스님, 평창중학교는 또 어디에 있는데요?”라고 하자, 스님은 “평창에 있지요”라고 하면서, 얼굴도 본적 없는 초행자에게 “아니 그것도 하나 못찾아오세요?”라고 되레 소리를 질렀다. 이수근은 “그 때 스님의 캐릭터가 호랑이임을 확신했다”며 스님의 성대모사까지 하면서 당시상황을 리얼하게 재현했다.

그 날 이후 이수근은 3박4일간 꼬박 극락사에서 지내며 먹고 잤다. 지역 어린이들은 물론 버려진 아이들까지 손수 키우면서 절살림을 꾸려나가고 있었던 자용스님의 소박하고 자비로운 삶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이수근은 당시 불미스러운 일로 상처받은 심신을 자연스럽게 치유받았다.

자용스님은 이수근을 맞이하기 전, 잠시 고민을 했다고 했다. ‘좋지 않은 일로 매스컴에 오른 연예인을 아이들 앞에 세워도 되는가.’ 스님은 금세 결론을 냈다. ‘누구나 삶에 굴곡은 있는 것이고, 이참에 내가 한번 그를 기도하게 해서 평정심을 되찾게 해줘야지.’

스님이 이수근에게 호랑이같은 첫인상을 심어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나흘간 절밥을 해주면서 기도하는 법, 절하는 방식을 일일이 가르쳐줬다. 스님은 “시키는대로 잘 따라해줘 너무 기특했다”고 했고, 이수근은 “스님이 너무 예뻐해 주셔서 참으로 행복했던 3박4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극락사에 다녀온 뒤 이수근은 틈만 나면 스님을 찾았다.

연예계 어려웠던 일을 털어놓기도 하고,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스님의 조언을 받았다. 가난했던 호주머니에 스님은 틈틈이 용돈도 찔러넣어주었다. 어느새 이수근에게 스님은 초등학교 시절 신병으로 집을 떠나 유년시절 내내 그리워하며 살았던 어머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은 여주에서 무속인으로 살아가는 어머니는 이수근이 아주 어릴 때부터 불교적 환경을 만들어준 장본인이다.

“집에 있는 옛날 라디오에선 늘 반야심경과 같은 경전소리가 흘러나왔고, 집안에는 항상 향이 켜져 있어, 향내와 독경소리에 익숙해요. 요즘도 우리집에선 방향제 대신 향을 피워요. 방송이 끝나고 새벽녘에 집에 들어왔을 때 향내음이 퍼져 있으면 마음이 훨씬 평온해지거든요.”

이수근은 어머니가 기도하고 거처할만한 자그마한 도량을 하나 짓는게 꿈이다. 자용스님은 “좋은 도량을 만들어 스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게요”라고 하자, 이수근은 덩달아 “나도 나이 들어 아내와 함께 조용하고 고즈넉한 도량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하자, “소속사와 2년 5개월의 계약기간이 남았는데, 끝나면 시간의 여유를 갖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서 “프로그램을 대폭 줄이고, 산에도 자주 가고 절에도 자주 가고, 불자로서 종교적 활동도 충분히 하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이수근은 “불자라고 자랑삼아 말하지만 정작 자랑할만한 불심과 신심도 없고 불교계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늘 송구한 마음”이라면서도 “기독교 연예인들이 하나님을 너무 남용하고 교세확장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자주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연말 KBS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극락사 자용스님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리겠다”고 말해 하나님 찬양 일색의 수상소감행태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스님은 내게 어머니이고 부처님이자 정신적인 스폰서”라며 “지금도 그때와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종교란 마음에 휴식을 주어야 하지 않나요? 연예인 신도를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어서야 그게 무슨 종교입니까? 불교는 제게 넉넉하고 푸근한 쉼터나 다름없습니다.”

두 아들 이름 지어주며 희망과 평온 전해준 ‘멘토’

방송 줄이고 절에 자주 가 종교활동 적극 펼치고파

유재석 강호동에 이어 차세대 MC로 각광받고 있는 이수근은 지난달 방송된 KBS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지독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내와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둘째 아이 이야기를 어렵사리 털어놓았다.

“숨긴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니까 더 좋아질 거라 믿는다”며 “사랑하는 내 가족이 없다면 나도 없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큰 아들 태준이와 둘째 태서의 이름 역시 스님이 지어줬다. 크게(太) 빼어나고(俊), 크게(太) 상서롭게(瑞) 살아가라는 의미가 깃든 이름이다.

“지금은 둘 다 다섯 살 세 살배기라 아직 어리지만, 둘째가 쾌유하고 조금 성장하면 꼭 극락사에 보내서 템플스테이를 시켜볼 계획입니다. 스님이 계신 극락사에서 지옥으로 떨어질법 했던 내 삶이 극락과 같은 희망으로 변했듯이, 내 두 아들도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채워서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스님이 이수근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더니, 유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올해도 연예대상 최고상을 타서 우리 절 극락사 이름 다시한번 불러줄래요?” 그러더니 뭐하나 묻겠다는 스님. “수근씨, 개콘에 요즘 잘나가는 김원효씨, 이름이 원효인데, 불자에요 아니에요? 궁금해~” 이수근 왈 “아이고! 우리스님 때매 못살아!”

   
 

■ 이수근이 털어놓은 웃음 ‘뒤’ 이야기 

형 손잡고 ‘엄마 찾아 삼만리’

◇ 데뷔 이래 30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는 루머

이수근은 데뷔 이래 30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는 루머를 바로잡았다. 그는 “사람들이 내가 출연한 광고 대리운전 회사가 내 소유인 줄 안다”며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또 유명 프랜차이즈 술집 소유권에 대해서도 “그 술집은 친구가 사장이라 프랜차이즈 사업을 한다기에 잘되면 모델료를 받기로 하고 아직 돈도 못받았고 이름만 빌려줬다”며 “만약 그게 다 내거라면 300억 정도는 오히려 서운하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재산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상암동 32평 아파트 한 채와 자가용이 있고, 아이들 학원비 꼬박꼬박 내면서 저축을 하고 있다.” 그는 300억 수입설에 대해 “기분좋은 평가였다. 저 정도 벌겠구나 라고 생각해주신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노력한 결과라고 본다”고 했다.

그가 개그맨 지망생 시절 친구 김병만과 함께 옥탑방에서 살면서 며칠을 굶다 돈이 조금 생겨 족발을 먹고 남은 뼈로 사골국을 끓여먹었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 시절에 비하면 그는 지금 300억이 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 병마와 싸우는 아내 위해 입원실에서 쪽잠

이수근의 아내 박지연씨가 임신중독증으로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임신중독증은 의학용어로 자간전증이라고 하며, 임신중기 이후 발생하는 고혈압 질환의 일종이다. 특히 모성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힐 만큼 위험한 질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 부부는 결국 10달을 채우지 못하고 둘째 아이를 낳았고, 이 때문에 아이가 뇌 손상으로 오른쪽 팔과 발을 못썼는데 지금은 재활로 많이 좋아져서 걸을 수도 있게 됐다고 한다.

이수근은 “아이가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너무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이수근은 현재 5개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한 프로그램당 최소 촬영시간이 10시간. 날마다 강행군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새벽인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내가 있는 병원에 가서 쪽잠을 자기 일쑤다.

최근 아내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나 염치없고 이기적일지 몰라도 당신만 지치지 않는다면 당신 옆에서 평생 열심히 살래요. 죽어라 살래요”라는 글을 남겨 네티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 유년시절 내내 그리웠던 무속인 어머니

이수근은 최근 어머니가 무속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어린시절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셨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었는데 알고보니 신병이라고 하더라”며 오랜 고생 끝에 신내림을 받게된 어머니의 사연을 털어놨다. 어머니가 무속인이 된 이후 이수근은 양평에서 아버지 손에 자라왔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보고싶은 마음에 초등학교 5학년인 형과 손잡고 전라북도 군산에 있는 어머니 집을 찾아갔다. 9시간이 넘도록 버스를 타고 40분간 배를 탄 뒤 도착해 바라본 어머니의 집은 매우 처참했다. 이수근은 아직도 그 집의 기억이 생생하다며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렸다. 지금은 여주에 사는 어머니도 자주 뵙고 부모님이 좋은 관계를 유지해 모두 행복하게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