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주한국불교계에서는 미주한국불교의 기원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미주한국불교의 출발점을 언제로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논쟁은 도미(渡美) 연도가 빠른 서경보스님과 미주한국불교의 시스템을 건설한 숭산스님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집약된다. 이에 대해 이종권 조계종 국제포교사가 숭산스님을 미주한국불교의 창건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글(본지 2998호)을 보내온 바 있다. 이 글이 게재된 후 김형근 미주현대불교 발행인이 서경보스님을 기원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
불교가 전래하지 않은 지역에서 불교의 시작을 어느 시점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대부분의 국가에서나 불교사적으로 대체적으로 스님의 입국과 활동을 시작으로 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미주한국불교사를 기술하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것을 모두 잘 살펴보고 정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누가 언제 미국에 입국하였으며 그가 불교신앙공동체를 만들어 불교신앙활동을 하였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법맥이 이어지거나 신앙공동체가 유지되고 있는가. 이 두 가지를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에 처음 등장한 한국스님은?
2003년 간행된 미주한인이민 100년을 정리하는 책들에서 도안스님과 삼우스님에 의해 미국에 등장한 최초의 스님은 도진호스님이다. 그러나 도진호스님의 일생 행적에 대해 밝혔다기보다는 1930년 하와이에서 열린 정토진종에서 개최한 ‘범태평양대회’에 참가했다는 것을 알리는 수준에 머물렀다.
한편 2013년에는 하와이대학에서 강의하던 성원스님이 <미주현대불교>에 투고한 ‘미주한국불교의 역사적 배경과 비판적 고찰’이라는 글을 통해 도진호스님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서술하였다.
도진호스님은 1925년에 일본대학 미학과를 졸업한 쌍계사 출신으로 개화기 일제하에서 많은 활동을 한 지식인 스님이었다. 도진호스님은 단지 미국에서 열린 행사에 한번 참석한 스님이 아니고 다시 하와이로 입국하였고 하와이와 로스엔젤레스에서 수십 년간 살다가 끝내는 미국에서 사망하였다.
성원스님 글에서 왜 도진호스님을 미주한국불교의 기점으로 볼 수 없는가에 대해 잘 서술하였다. 그리고 서경보스님을 미주한국불교의 출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도진호스님은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하와이에서 ‘고려선사’라는 사찰을 건립한 증거가 없다.
1964년 미국에 첫 발을 디딘 서경보스님은 할동상은 적지 않은 출ㆍ재가 제자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사진은 1965년 샌프란시스코 조계선원에서 신도들과 참선하고 있는 서경보스님. 불교신문 자료사진 |
사찰을 건립하고 이를 토대로 활동한 구체적 증거가 없고 도진호스님의 계보를 잇는 스님이 미국에 없다. 1970년대 말까지 살았던 그는 또한 정확한 년도는 모르지만 결혼하였고 개종하였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것이 홍명희 씨 집안 출신으로 마곡사 출신의 스님이다. 법명과 속명 모두 알 수 없는 스님이었는데 1940년대 초 도쿄(東京) 유학 후 하와이에서 포교활동을 하다가 미국의 하버드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2년 후 가난과 병으로 죽었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만약에 하와이에서 이 두 스님이 신앙공동체를 건설하여 법회를 하였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미주한국불교계는 하와이 이민사에서부터 미주한인사회 건설에 동참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앙공동체를 건설한 근거도 없고 법을 잇는 사람도 없어 이 두 스님을 미주한국불교사의 출발선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다.
‘첫 美 입국’ 도진호스님은 활동 근거도 계보도 없어…
1964년 입국 서경보스님은 ‘조계선원’ 열어 대중포교 나서
뉴욕 백림사 워싱턴 한국사 등 계열 사찰만 해도 4곳…
대연불보정사는 한국사찰 중 현지인 신자 가장 많이 확보
이후에 등장하는 스님이 서경보스님이다. 서경보스님은 1964년도 8월말에 미국 입국 사실이 국내 신문에 보도되었다. 스님은 이 해에 뉴욕의 컬럼비아대학교로 유학 왔다가 다음해에는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조계선원’이라는 신앙공동체를 열어 대중포교를 하였다. 1966년 가을학기에는 필라델피아 템플대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여기에서 공부도 하면서 ‘조계선원’을 열어 포교를 병행하였다. 이후 1969년 1월에는 이 대학에서 ‘조당집을 통해 본 한국선 연구’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필자는 2004년에 서경보스님이 필라델피아에서 ‘조계선원’을 운영하던 시절에 이 선원에 다녔던 사람들을 만나 당시에 ‘조계선원’이 있던 건물을 찾아내 미주현대불교에 보도를 한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서경보스님 계열을 잇는 사찰이 뉴욕의 백림사, 워싱턴DC 지역의 한국사, 디트로이트 무문사, 코네티컷 주의 대연불보정사 등 4개가 된다.
이 사찰 중의 하나인 대연불보정사는 현재 미주한국사찰 중 미국 현지인 신자들을 가장 많이 확보한 사찰이며 최근 백림사 혜성스님을 계사로 하여 삭발하고 계를 받는 미국인 스님들이 4~5명 된다. 서경보스님의 뒤를 이어 그리고 1967년에 삼우스님, 1969년도에는 박성배 교수, 이장수 법사, 강건기 교수, 무용가 이선옥 박사, 한국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이한상 거사 등이 미국에 입국하였다.
1970년에는 현재도 메릴랜드주에서 한국사 주지로 있는 고성스님이 입국하였다. 이 뒤를 이어 1972년에 뉴욕불교의 토대를 닦은 법안스님과 숭산스님이 입국하게 된다.
‘숭산스님이 출발선’이라면…
최근 숭산스님의 업적을 과장하여 미주한국불교 출발선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국의 불교계 언론에서 보도되었다. 하지만 글에서 주장한 시카고 불타사만 해도 숭산스님이 창건한 것이 아니다. 창건한 신자들이 다 생존해 있다. 필자는 1972년 입국한 숭산스님을 미주한국불교의 출발선으로 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첫째는 숭산스님 이전에 미국에 입국한 스님과 교수, 법사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들의 면면을 보자. 서경보스님은 지금도 그 법맥이 이어지고 있다. 삼우스님, 고성스님은 현재도 사찰을 운영하며 활동하고 있다. 박성배 교수는 대학교에서 불교를 연구하며 기회 되는대로 한국불교를 알렸고 수십 년을 뉴욕주립대 교수로 있다.
이장수 법사는 1969년에 불교연구원을 개설하여 불교활동뿐만 아니라 한인커뮤니티에서 통역 등 많은 봉사활동을 하였고 여기에서 비구니 영주스님이 활동하다가 현 시카고 봉불사를 개원하였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거사 중의 한 사람인 이한상 거사는 캘리포니아에 삼보사를 건립하였다. 이선옥 씨는 뉴욕대학교에서 무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선무용으로 미국사회에서 크게 활동하였다.
1972년 숭산스님이 출발점이라면
그 이전 이민사회 불교역사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고
한국불교 이민사 8년 늦어져
서경보스님을 출발선으로 해도
미주불교에서 큰 족적 남긴
숭산스님 공적은 훼손되지 않아
이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활동이 모여 미주한국불교의 물결이 퍼져나갔다. 이들은 단지 불교계 내에서만 활동한 것이 아니라 미주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학계, 예술계, 복지활동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만약 숭산스님을 미주한국불교의 출발선으로 보면 이들의 활동은 어떻게 할 것인가.
둘째는 미주한인이민사에 큰 문제가 생긴다. 앞에서 필자가 미주한인사회와 종교계와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기독교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들이 한인사회에서 한 역할을 강조하고 심지어 교회만이 한인 이민자들의 안식처를 제공하였다고 주장한다.
미주한국불교계는 1964년부터 서경보스님 이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불교활동을 하면서 미주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활동하였으며 한국문화를 알린 엄연한 사실이 있는데 1972년 입국한 숭산스님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그 이전의 불교활동을 통해 이민사회에 공로한 역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다. 즉 110년의 이민 역사에서 1964년이 아닌 1972년부터 이바지 한 셈이 되어 8개월도 아니고 8년을 늦게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서경보스님으로부터 출발선으로 하여도 미주에서 한국불교 포교에 큰 족적을 남긴 숭산스님의 공적이 훼손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 불교계 내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미주한인이민사에 관련된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불교계 밖에서도 오래 전부터 미주한국불교의 시작은 1964년으로 본다. 역사의 시작을 공적이 많은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는 없다.
50주년을 맞으며 우리가 할 일
미주한국불교역사가 50년을 흐르는 지금 미주한국불교계는 역사적으로 뚜렷한 흔적과 공적을 남기면서 시작한 미주한국불교사의 출발을 가지고 소모적인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지금 미주한국불교계는 이민자가 오지 않아 신도들의 고령화되고 새로운 신도확보에 큰 문제가 생겼다.
미주한국불교 전법 50주년이 되는 올해 미주한국불교는 50주년 기념행사를 하면서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고 미주한국불교계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김형근 미주현대불교 발행인 |